2015. 10. 30. 09: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동방예의지국” 한국에서 “디스전쟁”?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힙합 대국’이라는 사실, 아시나요? 옆나라 일본만 해도 우리보다 먼저 힙합이 수입된 나라지만, 힙합이 먼저 자리잡은 것은 오히려 우리나라였습니다. 20년 동안 다른 나라보다 꾸준히 우리말로 된 힙합 앨범이 나오고, 힙합 문화의 일부인 패션이나 춤도 완전히 정착 되었지요.
최근 방송중인 텔레비전 방송 <쇼 미 더 머니>, <언프리티 랩스타>가 화제가 되면서, 논란도 시작됐습니다. 가장 큰 논란은 <쇼 미 더 머니>에서 발표한 곡 중 일부가 감정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거나, 여성혐오적인 가사라는 논란이었습니다.
“디스=힙합?” 디스가 먼저냐, 힙합이 먼저냐?
이에 반박하는 사람들은 본래부터 미국의 힙합은 사회비판적이며, 여성혐오적인 부분도 있었고, 또한 상대를 비방 하는 “디스(Diss)”를 통해 대립각을 세우는 “퓨드(fued)” 혹은 “앵글(angle)”은 미국의 힙합 문화의 중요한 현상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디스”란 영어의 “디스리스펙트(disrespect)”에서 나온 말로 상대방을 비방하고 조롱해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 대립각이 서는데 이를 “퓨드”나 “앵글”이라고 합니다. 퓨드는 원래 두 세력 간의 대립을 이르는 말이고, 앵글은 특정한 사건의 인과관계, 사실관계, 혹은 인간 관계를 이르는 말입니다.
최근 안방 예능에 등장한 힙합 / 출처_언프리티랩스타 홈페이지메인 캡처
과거 미국의 래퍼들은 서로 편을 갈라 디스를 날리며 퓨드를 세우고는 했습니다. 이 과정에 몇 명은 의문의 죽음을 맡기도 했지요. 분명 디스, 퓨드, 앵글이나 사회비판적인 가사, 여성혐오적인 가사는 힙합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랩의 간략한 기원
본래 시는 음악적으로 읊는 노래와 사촌형제였고, 힙합을 이루는 흐름 중에는 시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과거에는 유럽의 대학생들은 술집에서 “즉흥 시”를 읊으며 상대를 조롱하고 자신을 추켜세우며, 내가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과시하고는 했습니다. 현대 래퍼들이 “프리스타일 랩”으로 상대방을 “디스"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서양 뿐 만이 아닙니다. 일본어로 우리말의 “시(詩)”는“노래”라는 뜻의 “우타(歌)”로 읽습니다. “시(詩)”를 “시”라고 읽으면 우리말의 시, 혹은 가사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판소리나 시조는 본래 노래하는 것을 전제로 만들었지요.
같은 흐름은 아닐 지라도, 천년 전에도 프리스타일 랩 배틀이 있었다. / 출처_주간경향
(사진 요청: 영화 <8마일(8 miles)>의 프리스타일 랩 대결 장면)
(같은 흐름은 아닐 지라도, 천년 전에도 프리스타일 랩 배틀이 있었다.)
현대의 랩은 다양한 흐름이 뒤섞여 탄생했습니다. 읊는 시의 전통, 음악적인 미국 남부 목사의 설교에 영향을 받은 R&B나 재즈, DJ가 음악을 트는 사이사이 하던 진행 멘트(그래서 래퍼를 MC라고도 부릅니다.) 등 다양한 기원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영향을 준 선배 가수가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입니다.
제임스 브라운으로 시작된 두 흐름: “사회비판”과 “재미"
10살짜리 마이클 잭슨은 제임스 브라운의 성대모사와 춤을 따라해 기획사 모타운의 오디션을 통과했습니다. 그만큼 제임스 브라운은 흑인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임스 브라운은 미국 흑인음악과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사진은 그의 전기영화 <겟 온 업(Get on up)>으로, 이 영화를 보면 미국의 근현대사의 단면을 알 수 있을 정도다. / 출처_네이버영화
그의 목사의 설교처럼 내지르듯 외치는 그의 창법은 그 자체로 랩이었지요. 랩을 하려면 “비트(bit)”가 있어야 하죠. 초창기 랩의 비트는 제임스 브라운이 창시한 감각적이고 흥겨운 리듬의 훵크(Funk)라는 장르의 음원을 샘플링해 만들었습니다.
훵크는 초기부터 “엔터테인먼트”와 “메시지”가 합쳐져 있었습니다. 이 중 엔터테인먼트의 흐름은 훵크를 간략화 한 디스코를 거쳐 초창기 랩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최초의 랩 앨범이라 꼽히는 슈가 힐 갱(Sugar hill gang)의 <래퍼의 즐거움(Rapper’s Delight)>은 “나는 부자라 컬러TV도 있어서 집에서 뉴욕 닉스 경기도 볼 수 있지” 하고 자랑하는 내용의 노래였습니다.
한편 제임스 브라운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정치적 메시지를 훵크에 담았습니다. 흥겨운 비트 덕분에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이었지요. 대표적으로 <외쳐! 내가 흑인인 게 자랑스럽다고! (Say it loud! I’m Black & I’m Proud!)> 같은 노래가 있지요.
“디스”는 흑인 하층민의 “리얼리티”에서 나온 것
미싱링크처럼 훵크의 “메시지”는 한동한 초기 힙합에서는 찾기 힘들었습니다. 디스코의 영향이 남아있어서 클럽에서 트는 앨범에 맞춰 DJ가 읊조리는 랩은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를 돋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경제적 상황이 어려운 흑인 하층민 출신 래퍼들은 “리얼리티 랩” 혹은 “갱스터 랩”이라고 해서, 하층민으로서 혹은 갱스터로서 빈궁한 삶이나 부당한 대우를 직설적인 말로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콤튼(Straight outta compton)>은 당시 대표적인 갱스터 래퍼 그룹 N. W. A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콤튼>에는 당시 “갱스터랩”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 출처_위키피디아
갱스터로 살아야만 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기에, 그들의 가사에는 욕설, 비방, 조롱, 여성혐오(그들 중 일부는 기둥서방이나 포주기도 했습니다.), 반체제, 저항 등이 뒤섞였습니다. 그들의 현실과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가 뒤섞였지요. 힙합에서 사회비판은 분명 존재합니다. 이를 비판한 사람들이 대다수 갱스터였기에, 독하고 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가사와 함께 그들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삶의 단면도 같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지요.
힙합을 즐기는 데 유용한 팁 “머리와 가슴을 분리해서 들어라”
제가 제안하는 것은 머리(신피질)와 가슴(구피질)을 구분해서 듣는 것입니다. 음악을 즐길 때는 가슴으로 최대한 흥겹게 감정을 움직이며 듣되, 가사의 내용은 머리로 잘 음미해서 (이전 기사에서 말씀드린) 지관하시기를 바랍니다.
힙합은 할아버지인 훵크처럼 흥겹게 즐기기 좋은 비트 때문에 가사가 쉽게 마음 속 깊이 들어옵니다. 노래를 즐기는 것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느끼는 흥이 가사를 모두 정당화 하지는 않습니다. 미국의 힙합에서 독한 가사는 그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메시지가 뒷받침 되었기에 어느 정도 정당화 된 면이 있었지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힙합 가사 중 독한 가사가 정말 그런 뒷받침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는 섣불리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판단하기에 앞서 음미해야 합니다. 즐길 것은 즐기되, 가사는 머리로 곱씹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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