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16. 14: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11월호>에 실린 스토리캠프 대표 김해원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죄인들에게도 기회를 주는구나…! 인터넷이니까….”
“형, 왜 여기서 MC를 하려고 해? 여긴 인터넷이잖아!”
-‘신서유기’ 1, 2회 중에서-
tvN이 제작한 '신서유기'는 TV채널이 아닌 온라인플랫폼 네이버 TV캐스트에서만 독점 방영되는 웹 전용 드라마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TV캐스트)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은 그들의 표현대로 “매일 아침 댓글로 욕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던, 이른바 ‘좀비’ 연예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2015년 여름, 드디어 부활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무대는 이름하여 ‘인터넷’. 이곳은 모든 잡탕 문화가 뒤섞여 소용돌이치는 B급의 고향, 떠돌이들의 안식처입니다. ‘신서유기’는 과연 구원을 위한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요? 사실 출연자들은 얼굴마담일 뿐, 진정 구원받고자 하는 자는 ‘전통(legacy) 방송 사업자’ 자신입니다. 웃음으로 포장된 ‘신서유기’는 올드 미디어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그들의 말 그대로 ‘리얼 막장 모험활극’입니다.
콘텐츠와 미디어의 분리
tvN을 비롯한 케이블TV 방송사들의 정식 사업자명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입니다. 케이블TV가 도입된 초기 PP가 만든 프로그램은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통해서만 방송됐습니다. 지금 보면 단순하게 보이는 PP-SO 구도는 위성방송사업자(SkyLife)와 IPTV의 출현으로 다소 복잡한 양상으로 발전했습니다. PP는 SO뿐 아니라 위성방송과 IPTV 등 복수의 플랫폼에 채널을 입점할 수 있는 포지션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PP의 콘텐츠는 항상 ‘채널’이라는 장소에 묶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콘텐츠와 채널, 콘텐츠와 미디어는 늘 한 몸이었습니다.
1995년 방송된 SBS의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는 당연히 SBS 채널에서만 볼 수 있었고 본방을 보기 위해 직장인들이 퇴근 후 일찍 집에 들어갔다고 해서 '귀가시계'로 불렸다. (이미지 출처 - SBS홈페이지)
‘모래시계’의 시대에서 20년을 건너 뛰어와 보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PP인 tvN의 콘텐츠, ‘신서유기’는 자신의 채널이 아닌 다른 채널, 심지어 TV가 아닌 온라인 플랫폼 네이버 TV캐스트에서 독점 방영됐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론칭만 네이버에서 하고 TV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온라인 독점 콘텐츠라는 점입니다. 이제 ‘신서유기’는 케이블TV 채널이라는 ‘장소’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마치 육체를 벗어난 영혼마냥, 콘텐츠는 채널과 분리되고, 장소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자유를 구가하는 듯합니다.
네이버 TV캐스트나 유튜브 등의 OTT 플랫폼은 개인 PC나 스마트폰 앱으로 존재하며, 개별 콘텐츠들은 개인 이용자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개인 이용자의 플레이 리스트에 따라 재생됩니다. ‘신서유기’를 보다가 ‘모래시계’를 볼 수도 있고, ‘신서유기’에 대한 다른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페이스북 ‘신서유기’ 페이지로 넘어갔다 올 수도 있습니다. 1회를 보다가 맨 마지막 회로 넘어갈 수도 있고, 마지막 회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즉 콘텐츠가 획득한 자유는 이용자의 자유로 치환되는 것입니다.
웹 콘텐츠의 새로운 수익 모델
tvN의 도전과 모험은 일단 성공으로 평가되는 듯합니다. 신서유기 방영 후 “광고만으로 순익 실현” “5,000만 클릭으로 일일 연속극 수익 얻어” “웹 콘텐츠 NEW 수익 모델 부상” 등 경제 효과에 초점을 맞춘 기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광고가 줄어들고 있는 방송 시장, 그리고 뾰족한 수익 구조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던 온라인 콘텐츠 시장에서 ‘신서유기’의 선전은 자본의 유입과 시장 활황을 견인해줄 오아시스처럼 여겨집니다. 수익 측면뿐 아닙니다. TV를 떠나간10~30대 시청자들을 어떻게 다시 잡아와야 할지 갈팡질팡하던 레거시 시스템에게 ‘신서유기’의 성공은 한 줄기 희망이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나영석 PD (이미지 출처 - YTN)
사실 나영석 PD는 ‘신서유기’가 기존 방송 프로그램과는 ‘다른’ 콘텐츠가 되리라 강조했습니다. 형식적, 내용적 제약을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콘텐츠, 경계를 넘나드는 콘텐츠가 될 것을 꿈꾸었습니다. 실제로 ‘신서유기’는 몇 가지 면에서 차별점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콘텐츠의 ‘길이’면에서 다릅니다.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이 80분 내외의 길이로 구성됐다고 하면, ‘신서유기’는 한 클립당 8~12분 내외로 짧고 가볍습니다. PC나 모바일 시청에 최적화된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편성 면에서도 차별화됩니다. 기존의 방송 프로그램이 일정한 요일과 시간에 반복됐다면, ‘신서유기’는 금요일 오전 10시로 고정된 상태에서 기습 편성 등의 변주를 두었습니다. 정해진 편성 시간에 앞서 콘텐츠를 공개하는 것은 온라인 유저들의 ‘피드백’에 부응하는 유연한 대처일 수 있겠습니다. 온라인 문화는 스타와 팬, 팔로이(followee)와 팔로어(follower) 사이의 ‘상호작용’ 속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신서유기’팀은 이런 문화적 특성을 잘 반영해 내었습니다. 세 번째, 방송에서는 규제받을 언어적 표현, 브랜드 노출 등이 ‘신서유기’에서는 어느 정도 거리낌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네이버 TV캐스트에서의 '신서유기' 재생 화면 (이미지 출처 - 네이버 TV캐스트)
‘신서유기’ 성공 답습은 안 돼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이후의 콘텐츠들이 ‘신서유기’의 공식을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디지털 생태계 속에서 인기를 구가하는 콘텐츠의 특성을 뽑아낸 프랭크 로즈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몰입’을 꼽으며, ‘몰입’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갖춰야 할3요소(ECD)를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이는 ‘비어 있는(empty)’, ‘궁금증을 유발시키는(curious)’, ‘깊이 팔 거리를 제공하는(deep)’ 속성입니다(Rose, 2011). 많은 이들이 ‘홀릭’이 될 정도로 애정하고, 지인에게 자신 있게 공유하고, 스스로 홍보대사가 될 정도의 콘텐츠가 되기 위해서는 보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밥에 반찬에 국까지 말아서 입에 떠먹여주는 공중파 프로그램이 온라인에서 그대로 먹히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무언가 비어 있어서 유저들이 스스로 채우게끔 하는 콘텐츠, 지속적으로 궁금증을 유발시켜서 함께 퍼즐을 맞춰가도록 동참시키는 콘텐츠, 그리고 콘텐츠를 보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유저들 스스로 검색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는 정도의 탐구거리를 마련해 주는 콘텐츠가 몰입을 이끌 것입니다. 레거시 방송 사업자만을 구원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콘텐츠 전체 시장을 이끌어 줄 제2, 제3의 ‘신서유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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