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 이소룡, 최배달과 <주먹쥐고 소림사 여자편>은 어떤 관계?

2015. 11. 18. 09: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1. <주먹쥐고 소림사 여자편>은 달마대사나 무협소설 속 소림권과는 관계 없다?


(매주 토요일 6시 10분, SBS에서 방송중인 예능프로그램 <주먹쥐고 소림사> 사진출처:SBS 홈페이지)


“소림사” 하면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특정한 그림을 떠올립니다. 이마에 동그란 흉터를 찍은 우락부락한 승려들, 소림사 주방장, 소림사 출신인 영화배우 이연걸, 창시자 달마대사와 제자 혜가 사이의 에피소드, 깨달음을 얻으려 한쪽 팔을 자른 혜가를 기리기 위해 한 손으로 합장하는 소림승려들의 온갖 무협소설에 나온 신묘한 무공과 화려한 발차기 등등……. <주먹쥐고 소림사 남자편>에도 소개되었던 소림사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공유하는 “공통기억”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방영중인 <주먹쥐고 소림사 여자편>은 달마대사의 소림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왜냐고요? 달마대사가 창시했다는 소림무술로 유명한 소림사는 중국 북부 숭산에 있는 북소림사입니다. <남자편>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여자편>의 소림사는 중국 남부 복건성에 있는 남소림사입니다. 게다가 지금 남아있는 남소림사는 과거부터 내려온 절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전설 속에만 남아있었던 절로, 방송에 나오는 절은 근래 새로 지은 절입니다. 두 소림사는 거리도 상당히 떨어져 있지요. (방송을 보신 분이라면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2. 전설 속 복건성 남소림사는 남파권법의 뿌리?


중국 쿵후는 주로 북파권법과 남파권법으로 나뉩니다. 단순히 구분하자면, 북파에는 소림권, 번자권, 팔극권, 당랑권 태극권, 팔괘장, 형의권 등이 있고, 남파에는 홍가권, 영춘권, 백학권, 채리불권 등이 있으며, 각각 북소림사와 남소림사 중 어디에 뿌리를 두느냐로 나눕니다. 그런데 남소림사는 실제로 존재 했는 지 불분명한 절입니다. 북소림사에 남쪽에도 소림사가 있다는 문헌도 존재하고, 명대에 거대한 사원이 있었다는 유적발굴 결과도 있습니다만, 그 절이 소림사고 북소림사처럼 무술이 발달 했다는 근거는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남파는 대부분 그 기원을 남소림사에 둡니다. 왜 다양한 무술이 전설상의 사원인 남소림사를 기원으로 두고 있을까요?


(<무예도보통지>에 소개된 권법총도)


현대에 전해지는 권법 위주의 쿵후는 대부분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에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그 전에도 권법은 있었으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술을 보조하고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이었고,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나라의 <무예도보통지>에서도 권법은 비중이 낮지요. 명나라가 몰락하고 청나라가 서는 혼란의 시기, 청나라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 게릴라’들이 자신들의 무기로 휴대하기 쉬운 권법과 검을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파 권법을 구사하는 권사들이 쿵푸를 형성하면서 청을 부정하는 “상상적 신화화”를 통해 남소림사라는 전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3. 홍콩 영화계와 남파권법과 가라테(空手)의 관계?


과거 유행했던 홍콩 무술/무협영화에 나오는 무술은 대부분 남파권법에서 유래했습니다. 대만과 홍콩에는 거리가 가까운 남파권법이 주로 전달되었고, 특히 영화계에서는 홍가권사들이 꽉 잡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홍금보의 추천으로 홍가권과 친척인 영춘권, 그리고 한국의 합기도가 더해진 것이 홍콩 무술/무협영화의 쿵푸였습니다. (홍금보는 합기도 유단자고, 1972년에 홍콩 영화 <합기도>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홍콩 무술배우는 대부분 홍가권-영춘권을 은막 위에서 구사했습니다. 세계적인 무술배우 이소룡도 남파권법인 영춘권을 기본으로 삼아 자신의 무술 절권도를 만들었지요. 최근 영화 <엽문> 시리즈로 유명해진 엽문이 이소룡의 영춘권 스승입니다. 홍금보는 이소룡 주연의 <용쟁호투>에 단역으로 출연해 대련을 한 적이 있는데, 사사로운 다툼이 있어 이소룡과 영춘권으로 대련을 한 적이 있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후에 <엽문 2>에서는 홍가권사로 등장하여 영춘권사 엽문과 대결을 벌이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흔히 일본 무술로 알려진 가라테도 남파권법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래 가라테는 일본 무술이 아니라 오키나와, “류큐 왕국”의 무술입니다. 독립왕국이었던 오키나와가 중국 남부와 교류하면서 남파권법의 영향을 받아 만든 무술이 바로 가라테입니다. 그래서 본래 이름이 중국(=唐)에서 넘어온 무술(=手)이라고 “가라테(唐手, 당수)”였지요. 오키나와가 일본에 합병된 뒤, 같은 발음의 불교용어인 공(空)을 차용해 “가라테(空手, 공수)”로 바꾼 것이지요.


(영춘백학권의 자세. 출처: 中国武術WEB)


(한국 태권도 시범단에게 지도를 하고 있는 최배달의 자세. 출처: 대한뉴스 제 653호 [1967.12.15])


가라테는 남파권법 중에서도 영춘백학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영춘권에 영향을 받았으나, 어디까지나 백학권입니다.) 최배달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대만의 영춘백학권사와 최배달은 서로 비슷한 자세를 취합니다. 최배달은 현대적인 격투기 스타일로 유명한 쿄쿠신칸(極真会館) 가라테를 창시한 사람입니다만, 자기 자신은 전통적인 가라테 자세였습니다. 쿄쿠신칸 카라테는 일제 강점기 때 재일교포가 대학에서 많이 배운 고쥬류(剛柔流) 가라테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고쥬류 가라테는 오키나와 테라 불리는 남파권법의 영향을 받은 전통적인 오키나와 방식의 카라테를 체계화하였습니다. 최배달의 자세에는 남파권법의 흐름이 담겨있는 것이지요.


4. 무술동작에 담긴 국제교류의 역사와 낭만


고립되어 독자적으로 발달한 것 같은 무술, 그러나 그 동작 속에는 국제교류의 역사와 낭만이 담겨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키나와 카라테는 한국의 태권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고, 최배달 또한 한국 태권도에 많은 지원을 한 바 있지요. 후에 최배달에서 독립한 류파에서 국제적인 격투기 대회인 K-1을 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의 무술이 이렇듯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지요. 홍콩 무술영화와 재일교포의 삶, 한국의 근현대사, 국제적인 이벤트가 모두 하나의 흐름 속에 들어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정보와 내용이 <주먹쥐고 소림사>에 소개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합기도와 태권도를 수련한 김병만이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남소림사로 가서 권법을 익힌다는 사실에 장대한 역사가 깃든 낭만을 느낀다면, 조금 과장이 심하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