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다시 노래로 흘러가는 목소리

2015.11.24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시, 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리는지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죠. 뭐가 떠오르세요? 

언어영역, 노래, 문학, 예술, 재미없는 것, 낯선 것.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겁니다. 모두 맞는 말이에요. 시는 언어영역에 속하고, 노래이자 문학이고 예술이며 때로는 재미없고 낯선 것입니다. 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어요. 문학에서 가장 오래된 것도 시예요. 시는 먼 옛날에는 노래와 한 몸이었다가 점차 떨어져 나와 오늘날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어요. 인간의 꼬리뼈처럼 시에 남아 있는 노래의 흔적을 찾는다면 그걸 운율이라고 부를 수 있을 거예요.


외재율, 내재율,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건 저도 다 잊었고 여러분도 잊었거나 잊고 싶을 테니까요. 저는 먼 옛날, 종이와 인쇄가 발달하기 전의 시대로 돌아가 보려고 해요. 그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서 울려나오던 어떤 이야기들을 웅얼거렸을 거예요. 그리고 어떤 이야기는 아주 길어서 서사시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거예요. 그 안에는 전쟁과 영웅이 나왔겠죠.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처럼요.



요즘에 시를 외우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사실 저는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시 한 편을 끝까지 외울 수 있나요? 외울 수 있다면 다행이군요. 저는 못 외워요. 하지만 노래 한 곡을 외우는 사람은 많죠. 오늘은 노래와 분리되었던 시를 다시 노래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여기, 트루베르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트루베르는 음유시인을 뜻하는 프랑스어예요. 2007년 1월에 윤석정 시인과 래퍼 퍼티컬(Ptycal)이 함께 결성했고, 지금은 나디아와 DJ TAMA도 함께 활동하고 있어요. 이 팀은 우리와 동시대를 살지 못한 시, 동시대를 사는 시를 노래로 옮겨놓는 일을 해요. 제가 처음으로 들었던 트루베르의 노래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였어요. 아니, 제가 처음 외웠던 노래였어요.



저는 이 노래를 듣고, 외우고, 흥얼거리다가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내내 확신하지 못했던 어떤 미묘한 지점을 발견했어요.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라는 싯구 말이죠. 더러워서 버리는 것인지, 더러워져 버린 것인지 저는 늘 헷갈렸어요. 그런데 노래로 불러 보니 알겠더군요. 더러워서 내가 세상을 버린다는 걸요. 적어도 트루베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다음으로 외운 노래는 김소연 시인의 시인 ‘너를 이루는 말들’ 이었어요. 그 다음은, 그 다음은… 노래방에 가서 부를 수는 없지만 많은 노래를 외웠어요. 트루베르는 문학 콘서트 같은 곳에 자주 초대가수로 와요. 그래서 문학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동안, 트루베르를 자주 봤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웹툰이 드라마화 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저는 제가 좋아하는 시가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5분 이내의 노래를 듣고, 걸으며 그 시를 흥얼거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종이와 인쇄가 없었던 먼 옛날처럼요. 시가 시인지도 몰랐던 때처럼요. 


최근에 제가 아주 좋아하는 시인의 시가 트루베르의 노래로 만들어졌어요. 성동혁 시인의 시예요. 성동혁 시인은 아주 다정하고, 여리고, 예쁘게 노래하는 사람이에요. 서늘하지만 부드럽고 예쁜 손마디를 갖춘 손 같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의 시 <난 너희 옆집에 살아>가 트루베리의 노래로 나왔어요. 지금 저는, 굉장히 기뻐요.


같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