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만 외치는 불협화음 시대 '착한 이들의 소나타'

2016.01.19 14: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위 내용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5년 12월호>에 실린 MBN 교양제작2부 PD 김구환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9월 17일부터 매주 한 편씩 방송된 이번 프로그램은 8부작 다큐멘터리 ‘MBN 협동 프로젝트- 신(新) 부자수업’으로 협동조합이라는 주제를 다뤘습니다. 한국 협동조합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하기 위해 1년 동안 8개국 35개 도시에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8부작 중 2편만 다양한 사례 위주로 구성하고 나머지는 포맷을 다르게 하기로 했습니다. 한국 협동조합의 메카로 불리는 원주와 풀뿌리 농촌 협동조합의 모범이라 불리는 홍성 풀무촌을 각 1편으로 소개하되, 재연드라마를 가미한 성공 스토리 포맷으로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실제로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2개의 프로젝트를 각 2편으로 구성했습니다. 두 프로젝트 모두 장기간 촬영으로 변수가 많은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다행히 잘 진행됐고 두 개의 협동조합이 성공리에 만들어졌습니다.


협동조합 결성 과정 따라가기


1년 여간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한 뒤 “협동조합이 한옥을 짓는 데 어울리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참우리 건축 협동조합’의 조합원들.


다양한 사례를 다루는 편에서는 최대한 지역별, 업종별로 겹치지 않으면서 책, 방송에서 다뤄지지 않은 협동조합들을 선정했습니다. 2015년 8월 현재 전국 협동조합의 수는 7,759개, 취재를 시작한 올해 초 기준으로도 6,600개가 넘었습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지만 책과 논문에서 다루는 사례들은 한정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체 리스트를 출력해 의미가 있거나 시청자들이 흥미를 느낄 법한 협동조합들을 추리고 연락을 했습니다. 연락 자체가 안되는 협동조합, 아직 아무 사업도 시작하지 않은 협동조합들이 꽤 있었습니다. 이러한 ‘개점휴업 협동조합’을 제외하고 제작진은 두 달 동안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를 돌며 사전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장에서의 어려움과 열정이 담긴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해외 취재의 경우에는 협동조합으로 유명한 스페인 몬드라곤, 이탈리아 볼로냐, 캐나다 퀘벡 세 지역을 비롯해 핀란드, 독일, 스웨덴, 일본의 협동조합을 취재했습니다.


오해와 편견, 그리고 진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협동조합은 착한 경제, 소규모의 친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대안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착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하고 있을까요? 사전 취재와 촬영을 거치면서 “협동조합은 선하다”는 명제는 거짓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협동조합은 선한 사람들의 친목 모임 같은 게 아니라, 현실에서 돈벌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고민 끝에 선택한 답이었습니다. 시장경제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수익을 내야 하는 치열한 경제 영역이 협동조합입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비즈니스 모델이 확실치 않으면 존재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 역시 이 부분을 뼈저리게 느끼며 확고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었습니다.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 후 공부를 하다가 1년 후에야 신중하게 협동조합을 결성했다는 한옥 장인 협동조합의 한 조합원은 “협동조합이 한옥을 짓는 데 어울리는 시스템일 거야, 하고 진행을 했고, 여전히 실험은 진행 중입니다”라는 말로 비즈니스 영역으로서의 협동조합을 소개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부자들


대구의 한 아파트촌에서 개업해서 2년 만에 월 매출 3,000만 원을 올릴 정도로 자리 잡은 반찬가게 협동조합 ‘달콤한 밥상’의 조합원들. 이들은 협동조합의 가치를 동네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소박한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정부의 지원을 바라거나 큰돈을 벌고 싶으신 분들은 협동조합 하지 마세요.” 8부에 소개된 대구의 한 협동조합 인터뷰에서 나온 말입니다. 변두리 아파트촌에서 개업해서 2년 만에 월 매출 3,000만 원을 올릴 정도로 자리 잡은 반찬가게 협동조합.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협동조합의 가치를 동네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소박한 삶의 방식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동네의 반찬 봉사모임에서 시작해 회원제 반찬가게로 성공한 이들은 여전히 동네 안에서 뭘 더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취재한 거대 규모의 협동조합들 역시 지역과 함께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취재한 협동조합들은 지역사회에의 기여라는 원칙 이외에도 개방적인 제도, 민주적 관리, 협동조합 간 협동 등의 가치를 지키며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협동조합은 선하다”라는 말은 편견인 동시에 진실일 수 있습니다. 협동조합을 지루하거나 덜 치열한 무엇으로 파악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편견일 수 있지만, 많은 협동조합들이 자신만의 밥벌이를 넘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선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쟁만이 옳은 길이라고 모두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이 불협화음의 시대에, 한국의 협동조합들이 연주하는 ‘선한 사람들의 소나타’ 1장이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신 부자수업’이라는 프로그램 타이틀에 대해서 몇몇 출연자들이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협동조합이 낯선 시청자들이 자칫 협동조합을 돈벌이에만 연관시키지 않겠느냐는 지적이었습니다. 일리가 있었습니다. 세속적인 개념의 ‘부자’라는 단어를 무턱대고 빌려오는건 강변일 뿐이라는 걸 제작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협동조합은 돈을 벌어야 하는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부자’를 사전적인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8편의 시리즈 동안 제작진들이 시청자들과 같이 나누고자 한 부자의 의미는 ‘협동으로 함께 잘 사는 새로운 부자’였습니다.


“그렇게 쌓인 관찰들이 비로소 저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었던 겁니다.”


흔히 협동조합 운동의 성공에 필요한 요소는 리더의 존재라고 말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희생을 감수하며 조합을 이끌어가는 리더는 당연히 필요합니다. 국내외 사례에서도 협동조합을 만들고 유지시킨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협동조합을 더욱더 건강하게 만들어나가는 건 리더를 관찰하고 같은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평범한 조합원들입니다. 또한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 한 협동조합이 성공할 경우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성공을 관찰한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탄생하기도 합니다. 


이번 프로그램의 특징은 평범한 사람들이 실제로 협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을 영상 속에 담아냈다는 점이다. 은퇴한 시니어들의 유치원 강사 협동조합 결성을 목표로 한 ‘하빠 프로젝트’와 경남 함안 강주마을의 해바라기 축제 협동조합 만들기 과정인 ‘해바라기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배우 우현 씨(사진 왼쪽)와 안내상 씨는 각각 ‘하빠’와 ‘해바라기’ 프로젝트에 함께 하기도 했다.


15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의 협동조합에 비해 한국 협동조합의 역사는 아직 짧습니다. 그리고 협동조합에 우호적인 제도와 문화를 가진 세계 각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 협동조합의 환경이 그리 녹록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성공 사례가 나오고 협동조합 생태계 자체가 건강하게 발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읍니다. 그러기 위해맞춤형 금융 지원체계나 협동조합연합회의 활성화 등 제도적인 보완과 함께 협동조합의 활용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얻으려면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명제를 진리처럼 알고 살던 우리에게, 함께 사는 삶을 추구하는 이타적 인간, 상호적 인간의 존재는 아직 신선합니다. 제작진은 본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이 아닌 협동의 원리로도 시장경제하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협동조합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하나의 현실적인 대안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8부작이라는 다소 긴 구성에 미흡한 점과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협동조합이 조금이라도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오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