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28. 14: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UFC의 뿌리는 브라질의 ‘발리 투두’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알고 계시나요? 들어 본 적이 있거나, 경기를 본 적이 있는 분이 꽤 많을 것입니다. 보통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 MMA(Mixed Martial Arts)라 불리는 데, 어쩌면 과거에 방송을 많이했던 단체 프라이드(PRIDE)로 알고 계신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UFC에 대항해 만든 이 단체는 현재 해체되었습니다.)
이종격투기는 과거 서로 다른 무술이 겨룬다는 의미에서 시합을 “이종(異種) 격투기 전(戦)”이라 부른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현재는 아예 경기 룰에 맞추어 독자적으로 발전해서, 종합격투기=MMA(Mixed Martial Arts)라고 주로 부릅니다. UFC는 1993년 처음 개최되었고, 초기에는 말 그대로 누가 제일 센지를 결정하기 위해 “체급 차이도 무시하고 눈 찌르기, 깨물기를 제외한 모든 공격이 허용”되는 과격한 룰이었습니다. (급소를 때려도 괜찮았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많은 개량을 거쳐, 체급제도 도입하고 여러 위험한 기술을 금지해 스포츠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 부상 위험도 많이 줄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종합격투기(MMA)의 인기를 몰고 온 UFC
한국 선수의 활약도 UFC에서 돋보입니다. 요새는 사랑이 아빠로 더 유명한 “섹시야마” 추성훈(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 선수, 유도 출신임에도 예리하고 강한 팔꿈치 타격으로 “스턴건”이란 별명이 붙은 김동현 선수, 맞아도 맞아도 쓰러지지 않는 맷집과 근성으로 “코리안 좀비”라는 별명이 붙은 정찬성 선수 등등 많은 선수가 활약하고 있어, 국내에도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정찬성 선수는 2011년 UFC에서 처음으로 “트위스터”라는 관절기로 승리해 6천만원 상당의 보너스를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전 프로레슬링에서 “코브라 트위스트”라 불리던 기술인데, 누워서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 UFC라는 대회가 미국에서 열리게 된 계기는 브라질에 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다혈질인 데다가,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이 각 나라를 대표하는 무술을 가르치며 세력 다툼이 생기는 바람에, 누가 제일 센지를 결정하기 위해 최소한의 규칙만 정해놓고 싸우는 ‘발리 투두(Vale Tudo)’라는 경기가 열리곤 했습니다. 브라질의 카포에이라(capoeira), 일본의 가라테(空手), 미국의 레슬링, 멕시코의 루타 리브레 등등 말 그대로 “무규칙 이종격투기”였던 셈입니다. 이 발리 투두에서 두각을 나타낸 무술이 그레이시 가문의 ‘그레이시 주짓수(Gracie Jujitsu)’였습니다. 그레이시 가문은 캘리포니아에 도장이 있었고, 도장생이던 아트 데이비가 “미국에서도 발리 투두를 열어보자”는 아이디어로 그레이시 가문의 도움을 받아 연 게 UFC였습니다. 그리고 무규칙, 무체급이었던 1회와 2회 대회, 190cm가 넘는 킥복서, 180킬로그램의 스모선수를 제치고 우승한 사람이 175cm, 78kg의 호이스 그레이시였지요.
그런데 이 그레이시 주짓수, 혹은 브라질 유술(柔術)이라 불리는 이 무술은 이름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유도(柔道)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어로 유술을 ‘쥬쥬츠’라고 하는데, 1900년 초기에는 영어로 ‘jiu-jitsu’라고 표기했습니다. 이걸 브라질 포르투갈어 식으로 ‘jiu-jit-su’라고 읽은 게 ‘그레이시 주짓수’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브라질에 일본의 유술(유도)이 전수되어, 발전되었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남자 (The Toughest Man Who Ever Lived)
그레이시 가문에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한 유도기술을 전수한 마에다 미츠요 / 출처_The Toughest Man Who Ever Lived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남자 (The Toughest Man Who Ever Lived)라는 별명이 붙은 일본인이 있습니다. 쾌활하고, 명량하며,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고, 누구보다 싸움을 좋아하는 남자였지요. 나중에 링네임이었던 “콘데 코마(코마백작)”로 브라질에 귀화한 일본인 마에다 미츠요(前田光世)입니다. (스페인어로 ‘콘데(Conde)’는 백작이고, 코마는 그의 입버릇이었던 곤란하다는 뜻의 “코마루(困る)”에서 유래했습니다.)
유도가 모습을 막 갖춘 1897년, 19살 마에다 미츠요는 유도에 몰두합니다. 1904년, 유도사절단이 미국으로 가 유도를 알리는 활동을 하게 되는데, 4단이 된 마에다도 사절단에 참가하여 미국으로 향합니다. 사절단은 활동적인 테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앞에서 유도시범을 보이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도 4천왕 중 한명이기도 한 사절단 단장 토미타(富田)가 160kg나 나가는 거한 레슬러에게 지고 맙니다.
명예 회복을 하겠다고 나선 마에다는 제 멋대로 사절단을 나와 영화 <갱스 오브 뉴욕>에 나오는 것처럼 암흑도시로 변해있던 뉴욕 한복판에 일본 전통 옷인 하카마를 입고, 머리엔 커다란 실크해트를 쓰고, 목에다는 영어로 “나는 마에다 미츠요다. 나랑 싸워 이기면 1000달러를 주겠다”고 팻말을 걸고 다녔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한 뉴욕에서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고 164cm에 70kg로 일본인 치고도 작았지만, 마에다는 길거리 싸움에서 덩치 큰 미국인들을 물리쳤지요. 그 뒤로 그는 전 세계를 유랑하며 싸움에 몰두했습니다. 나중에 최배달(본명 최영의, 일본명 오야마 마스타쓰)도 마에다를 본받아 세계를 떠돌며 실전경험을 쌓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브라질에 뿌리내린 초창기 유도
브라질에 정착한 시절의 마에다 미츠요 / 출처_http://www.ndl.go.jp
그렇게 떠 돈 끝에 정착한 곳이 브라질이었습니다. 1917년 마에다는 싸움박질에 열을 올리던 청년 카를로스 그레이시(Carlos Gracie)에게 ‘주짓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합니다. 카를로스는 스코틀랜드 이민 혈통인 정치가 가스타온 그레이시(Gastão Gracie)의 장남으로, 가스타온은 미국의 서커스 단에 투자자였고 마에다는 이 서커스 단에서 “이기면 현상금을 주는” 시합에 출전하는 선수였습니다. 초창기 유도는 지금과는 모습이 많이 다릅니다. 타격도 ‘아테미(当身)’라고 해서 남아있었고, 굳히기나 꺾기 같은 누워서 하는 기술이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게다가 마에다는 도복을 입지 않고 싸우는 레슬링 시합에도 자주 출전해, 힘으로 제압하는 기술도 강했습니다. 여기에 길거리에서 쌓은 실전 경험까지 더해져 마에다의 유도는 점점 “무도” 보다는 “격투기”에 가까워졌습니다.
카를로스는 유도를 배우며 점차 성정이 바르게 변했습니다. 덕분에 가스타온은 크게 감사했다고 합니다. 1921년 재정문제로 가스타온이 투자를 그만두고 리우 데 자네이루로 돌아가면서 가르침은 그레이시 가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1925년에는 “가문 외에 가르침을 넘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도장을 열게 됩니다. 마에다가 가르친 기술은 이후 ‘그레이시 주짓수’로 발전해 전 세계에 퍼지게 됩니다. 그 외에도 마에다는 브라질에서 유도를 가르치게 되는데, 소위 마에다 파는 브라질 유도 창세기 사대 파벌 중 하나였습니다.
브라질의 그레이시 가문. 뒷줄 맨 왼쪽이 UFC 1, 2회 우승자 호이스 그레이시, 맨 오른쪽이 이복형이자 400전 무패의 사나이 힉슨 그레이시다. 앞줄 가운데가 둘의 아버지인 엘리오 그레이시 / 출처_http://o.canada.com
당시 브라질에는 가난을 피해 이민 와 농장에서 일하는 일본인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브라질에는 “닛케-브라질인(日系ブラジル人)”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재일교포처럼 타향에 사는 일본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이민자가 몰려왔었고, 치안이 상당히 좋지 못했습니다. 마에다는 그들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사회활동을 시작했지요. 1930년에는 귀화 해서 링네임 콘데 코마를 이름으로 사용했고, 프랑스 대사의 딸과 결혼도 했습니다.
1941년, 아마존에서 그는 사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유도복을 가져와 다오, 고향 물이 마시고 싶구나” 였습니다. 석회성분이 많은 브라질의 식수로 내장에 병이 생긴 것이 사인 중 하나였습니다. 사후 유도의 본가 고도칸(講道館)으로부터 2단을 수여받아 7단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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