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만'의 전쟁 아닌 '우리 모두'의 전쟁을 위해

2016. 3. 11. 15:11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최삼호 SBS 시사교양본부 PD의 글입니다.

 

 

나는 여자야, 엄마야?”

 

 

작년 여름, 신년 특집의 테마를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내게 아내가 던진 질문이었다. 기획을 한다는 명분으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러다 보면 한두 잔이 너덧 잔으로 늘어나 결국 만취하는 날들이었다. 그전부터도 집안일이며 두 아이 키우는 일은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위임돼 있긴 했지만, 그즈음에는 아내의 넋두리도 제대로 못 들어주고 있던 터였다. 뜬금없는 질문에 답을 머뭇거릴 때 아내가 다시 물었다. “당신한테 나는 여자야, 엄마야? 내가 보기에 당신은 나를 여자가 아니라 엄마로 생각하는 것 같아. 굳이 매기자면 91 정도. 엄마 9, 여자 1.”

 

 

엄마는 평생 전쟁을 하며 산다. 2부 '캥거루맘의 비밀'에서는 자기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뿐 아니라
자식의 자식까지 돌보느라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하며 황혼 육아에 지친 현실을 고발했다.
<방송 화면 캡처>

 

  

여자일까, 엄마일까?

 

아내로 말할 것 같으면, 나와 같은 대학 같은 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을 다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대기업의 해외영업부서에 취업했다. 전공 따라 러시아에도 2년 파견을 다녀왔고, 그 바닥에서 나름 인정을 받았는지 미국계 무역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나와 결혼하던 2000, 그러니까 그녀 나이 29살 언저리에는 연봉도 나보다 많았으니 거칠 것 없는 소위 알파걸이었다. 그런 아내가 가정을 세 번째 직장으로 삼은 사연은 새삼스러울 게 전혀 없는 스토리다. 첫째를 낳고 출산휴가에 이어 육아휴직을 했다. 1년을 다 못 채우고 복직하면서 첫돌도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는데 밤늦게 퇴근할 때마다 혼자 어린이집에 남아 엄마를 기다리는 큰 녀석의 눈망울이 죄책감으로 하루하루 쌓이던 와중에 둘째를 임신하니 더는 선택을 미룰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빠인 나는 철저히 배제돼 있었다. 야근, 철야, 휴일 없음 등 장시간 노동으로 따져 보면 방송국 PD는 한국사회 직장인 중 최상위권에 속하기 때문이다.

 

여자냐, 엄마냐. 당연히 답은 여자였다. 왜냐면 아내는 여자임을 확인받고 싶어서 그 질문을 던졌을 테니까. 물론 논리적으로도 백 퍼센트 여자가 맞다. 엄마는 어느 순간 주어진, 혹은 선택한 역할이지만, 여자는 존재 그 자체를 뜻한다. 누군가 내게 남자냐, 아빠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때와 장소에 따라 아빠 역할을 하기도 하는 남자라고 답할 것이므로 아내라고 별 다를 게 있겠는가. 그런데 그날따라 심사가 뒤틀렸는지, 나는 아내에게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당신은 여자야, 엄마야?”

 

그날 나는 실로 오랜만에 아내의 눈물을 보았다.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아내는 조용히 속으로 울고 있었다. 갱년기 증상이라고 허허 웃어넘겼지만 그날의 기억은 결국 신년 특집 3부작 엄마의 전쟁으로 돌아왔다. 사실 2부 후반에 등장하는 고려대 노문과 92학번 졸업 후 이력 추적조사는 내 아내와 그 동기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네덜란드에 정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행복을 찾았다는 한국 엄마 중 하나는 아내의 절친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내가 촬영하고 편집해야 할 현실은 복잡 미묘했지만 기획 의도는 단순했다. 왜 아내는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자신의 존재 증명을 두고 아파해야 하는가. 왜 아내는 나는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여자냐, 엄마냐하는 우문에 눈물을 지어야 하는가. ‘엄마의 전쟁은 올해로 44살이 된 내 아내 같은 여자들의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기획된 다큐멘터리이다. 공부도 잘 했고, 사회에도 일찍 진출한 여자들은 왜 취집(집에 취업)’을 하는가. 자식에 올인한 그들은 어떻게 공교육에 개입하고 사교육 시장을 장악(?)하는가. 이제껏 나 몰라라 해놓고, ‘맘충이니 캥거루맘이니 손가락질 해대는 한국 남자들의 마음은 어디서 왔는가.

 

 

'엄마'가 일평생 치르는 전쟁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는 남자들의 변화를 위해 '엄마의 전쟁'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을 실시했다. 3부 '1m의 기적은 일어날 것인가'에서 일명 '개미와 베짱이 부부'가 1m짜리 밧줄을 서로의 몸에 묶고 48시간 동안 함께 생활을 하는 모습
<방송 화면 캡처>

 

 

엄마를 전쟁으로 내모는 국가

 

다 아는 얘기잖아. 요즘은 아빠들도 많이 바뀌었던데.”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답은 찾았어?”


엄마의 전쟁을 제작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전해들은 우려와 질문은 이 두 가지였다. 정말 다 알까. 정말 아빠들은 달라졌는가. 물론 달라졌다. 나 역시 그 누구보다 양성평등주의자이고 틈나면 뭐라도 하나 도와주려고애를 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도와주는 것이다. 출산-육아-교육-입시-취업-결혼-다시 육아로 이어지는 엄마의 전쟁 결국 그녀들의 몫일 수밖에 없으며 난 그저 옆집 남자보다 좀 더 도와주려고애쓸 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굵고 길게 가고 싶어. 그래서 내가 성공하는 게 우리 가족에 이득이 되는 것이니, 결국 다 가족을 위한 것이잖아. 모성 충만한 당신이 좀 이해해주면 안 될까.” 1부에 출연했던 한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아내에게 종종 쓰는 표현이다. 아마도 많은 남편들이 이런 식으로 오늘도 가정 내 위기(?)를 넘기고 있을 것이다. 요즘 남자들의 이말은, 대놓고 남녀유별을 외쳤던 옛날 남자들(3부의 출연자이기도 하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어찌 보면 남녀유별의 논리가 더 정교해진 것은 아닌가. 나 같은 남편들의 마음을 세밀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모성을 여자의 본능으로, 남자들은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잉태하는 자 고유의 지고지순함으로 한껏 추켜세워 놓고, 자신은 쏙 빠져나가는 나 같은 남자들을 교묘하게 비틀어보고 싶었다.

 

답은 어디에 있을까. 이거야 말로 모두가 아는 얘기다. 바로 2015년 최대 화두인, ‘헬조선이다. 엄마를 전쟁의 최전방에 세워둔 채, 이제는 얼마 안 되는 예산을 두고 전업맘과 직장맘을 편 가르고 싸우게 하는, 낳기만 하면 길러주겠다 해 놓고 예산을 떠넘기고 있는 국가다. 그리고 그 국가는 곧 남자다. 엄마가 일평생 치르는 전쟁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없으면서 다 아는 척 하는, 그래서 그 전쟁에 함께 출전할 생각은 전혀 없는 나 같은 남자들이다. 내가 달라져야 한다! 그들이 변해야 한다!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된 3부작은 결국 용두사미로 끝이 났다. 예상치 못했던 출연자 통편집 사태를 겪으며 시작부터 이야기가 꼬였다. 18년차, 산전수전 공중전 다 거쳤다 자부해왔지만, 방송 당일 통편집은 PD 생활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1부 도입 25을 할애했던 내 아내 같은 전업주부, 나 같은 남편이야기가 통째로 날아가고, 2부로 준비했던 에피소드가 급하게 내레이션도 없이 1부로 들어오면서 길을 잃어버렸다. 변화의 시도는 어설펐고 의미는 모아지지 않았다.

 

 

어제와 달라진 오늘의 나

 

방송 후 온라인서는 수많은 공감과 분노가 펼쳐졌다. 그중 상당수는 남성중심적 사고에 갇혀 있는 제작진을 향한 것이었다. 하나하나를 놓고 따져보면 제작진으로서 억울하지 않은 것도 없지만, 총론적으론 왜 엄마만의 전쟁이어야 하는가, 제작진 역시 엄마만의 전쟁을 기정사실로 하고 프로그램을 만든 것 아닌가에 대한 지적이었다. 가슴 아프게 받아들였다. 프로그램의 모태였던 아내 역시, 당신 마음속에 남자인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여자인 엄마의 문제로 상정하고 관찰자로 빠진 면이 있다고 질책하는 걸 보면, 분명 모성 뒤에 숨어버린 한국 남자의 비겁함이 내 안에 숨어있는 것이리라.

 

그래도 다행인 건 방송을 보고 수많은 부부들이 엄마와 아빠의 역할에 대한 크고 작은 논쟁을 벌였다는 점이다. 대부분 나와 대동소이할 남자들은 아마도 자의든 타의든 설거지 한 번, 청소기 한 번 더 돌리는 것으로 논쟁을 정리했을 터이니, 그것도 발전이라면 발전일 것이다. 어찌됐건 엄마의 전쟁을 통해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모성 본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한 발자국은 앞으로 뗀 것이 아닐까 위안을 삼는다.

 

인간은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제기한다는 말이 있다. 일단 수면 위로 떠오르면, 어떻게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리라. 문제 제기자로서 오늘의 나는 분명 어제의 나와는 다를 것이다. 2016년 새해 결심 1순위로 수첩에 적어 둔다. 그리고 엄마의 전쟁이 그녀들만의 전쟁이 아닌 우리 모두의 전쟁이 되는 그날을 기다린다.

 

 

 

출처 :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방송 2016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