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를 바꾼 두 가지 보도

2016.03.14 02:00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 학부 교수 이재경 교수의 글입니다.

 



그 사람은 참으로 특별한 존재였다. 그 어떤 방송기자도 다시는, 회사 안이거나 밖에서나에드워드 머로우(Edward Murrow)가 쌓아 올린 명망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핼버스텀의 말이다.

1960, 70년대 미국 언론의 거장들을 인터뷰해 쓴 군림하는 권력(The Powers That Be)’이라는 책에서다.

 

 

방송기자의 롤 모델


[각주:1]에드워드 머로우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나는 1996년 뉴욕의 UN본부에서 열린 미디어 관련 포럼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들었다. 1982년부터 TV 기자를 시작했고, 80년대 중반과 90년대 초에는 미국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공부하며 7년여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미국 방송 저널리즘을 압도하고 있는 그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UN 행사에서 머로우를 소개해준 인물은 당시 20년 가까이 CBS 앵커로 일하고 있던 댄 래더 기자였다. 그는 한 시간 연설을 머로우 이야기로 시작했다. 핵심은 자기가 방송기자가 된 계기가 머로우의 리포트들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자기 세대 대부분의 방송기자는 머로우처럼 되고 싶어 그의 발자취를 따라온 사람들이라고 얘기했다.

 

그 이후로 머로우를 공부했다. 그가 언제 어떠한 일을 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했다.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도 그를 넘어설 기자는 없을 것이라는 핼버스텀의 표현은 정확해 보인다. 더구나 디지털 혁명으로 TV 저널리즘의 힘이 쇠퇴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으로 판단한다.

 

에드워드 머로우는 크게 두 번 방송을 통해 세계역사를 바꾸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첫 번째 방송은 독일이 유럽 대륙을 점령하고 영국 침략을 위해 폭격을 진행하던 19399월부터 매일 저녁 런던에서 진행한 생방송 라디오 리포트였다. “여기는 런던입니다(This is London)”로 시작하는 머로우의 생방송 리포트는 그 이전 신문으로 전해지던 전쟁 보도와는 차원이 달랐다. 매일 저녁 미국 전역의 시민들은 독일군의 런던 폭격을 마치 현장에 함께 있듯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CBS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머로우의 목소리는 당시만 해도 유럽 상황을 남들의 전쟁으로 여기고 있던 미국의 여론을 참전 쪽으로 돌려놓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매일 밤 독일 폭격기에 공격을 당하며 절체절명의 위기를 버텨내던 처칠을 비롯한 영국 지도자들과 런던 시민들에게 머로우는 한 사람의 리포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들의 운명, 영국이라는 나라의 명운을 살려낼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다시 핼버스텀의 말이다. “모든 계층의 영국인들은 머로우의 힘과 영향력을 날카롭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은 도마 위에 놓여 있었다. 그들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들은 다른 어느 사회보다 빨리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미국의 대사나 다른 어떠한 신문기자보다도 머로우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에드워드 머로우는 미국 정부에서 보낸 대사가 아니라 미국 시민들에게 영국 상황을 전달하는 영국인들의 대사였다. 머로우 리포트만의 영향은 아니었겠지만 미국은 2차 대전 참전을 선언하고 결과적으로 독일을 점령하게 된다.

 


공화당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오른쪽)
<출처: 위키피디아> 

 


195439텔레비전 최고의 순간

 

종전 후 뉴욕으로 돌아온 머로우는 매체 환경이 라디오에서 텔레비전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현실을 마주한다. 텔레비전 시대를 맞으며 머로우는 새로운 시사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프로그램 이름은 씨 잇 나우(See It Now)’였다. 1주에 한 번 45분 정도 방송하는 시사 매거진 프로그램의 원조다. 1951년 처음 선을 보인 이 프로그램은 6.25전쟁이 끝날 무렵 당시 미국 정계와 문화계, 지식인 사회를 몰아치던 [각주:2]매카시즘의 광풍을 정면에서 마주하게 된다. 위스콘신주 출신의 젊은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가 주도했던 공산주의자 색출 조사 작업은 전 대륙을 공산주의 공포(Red Scare)’로 몰아가고 있었다. 1950년대 초, 소련의 세력 확장과 중국 대륙의 공산화, 그리고 한반도에서 벌어진 공산주의 세력과의 전쟁 등의 여파는 매카시가 주도하는 공산주의자 마녀사냥이 들불처럼 번지게 하는 구조적 요인들이었다.

 

머로우가 주도하는 씨 잇 나우프로그램은 세 차례 방송을 통해 정면으로 매카시즘의 폭력성과 선동성을 지적한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군에서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고 부당하게 대기발령을 받은 마일로 라둘로비치 중위 문제를 다룬다. 머로우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군의 정직 조치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해 라둘로비치 중위를 복직시키며 매카시즘의 확산에 중요한 일격을 가하게 된다.

 

그리고 195439, 에드워드 머로우는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은 철저하게 매카시의 발언들을 사용해, 그가 증인을 심문하거나 대중연설을 하면서 어떻게 [각주:3]자가당착적인 주장과 사실을 왜곡하는 선전을 일삼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매카시가 주도하는 공산주의자 색출작업이 얼마나 미국 민주주의를 해치고 있는지를 시청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머로우는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의 역사를 아는 사람 가운데, 의회 위원회 활동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없습니다. 법률안을 만들기 전에 현실에 대한 조사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조사와 [각주:4]기소는 전혀 다른 활동입니다. 위스콘신의 젊은 상원의원은 이 경계선을 헤아릴 수 없이 넘어섰습니다. 그는 미국 공중으로 하여금 내적, 외적 공산주의의 위협을 혼동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의견과 반역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혐의 제기는 결정적 증거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죄 결정은 반드시 정당한 법률 절차와 증거에 입각해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195439일의 이 방송은 엄청난 시민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 방송의 프로듀서였던 프렌들리는 회고록에서 CBS에 찬성 의견을 보내온 시민의 수가 매카시를 지지하는 수의 15배를 넘었다고 기록했다. 후세 비평가들은 이 프로그램이 텔레비전 최고의 순간을 대표한다고 평가했다.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영화 'Good nigh and Good luck' 의 포스터
<출처: 플리커> 




통제할 수 없는 머로우의 영향력


이 프로그램을 소재로 2005년 조지 클루니가 만든 영화가 굿 나잇 앤드 굿 럭이다. 이 두 마디는 씨 잇 나우7년간 진행하며 머로우가 프로그램이 끝나는 순간 시청자에게 건네는 클로징 멘트였다. 3주 후 매카시 상원의원은 머로우 팀의 초청에 응해 39일 프로그램을 반박하는 내용의 연설을 방송했다. 그러나 사실을 부인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그 이후 매카시즘은 대중적 지지를 상실하고, 의회에서의 동력도 잃게 된다. 미디어 학자들은 머로우 팀이 제작한 씨 잇 나우프로그램만으로 매카시즘을 잠재운 것은 아니지만 미국 시민의 인식을 전환시키는데 머로우 팀이 기여한 정도는 매우 중요했다고 평가한다. ‘씨 잇 나우는 그 이후 미국 TV 저널리즘에 중요한 영향을 남긴다. ‘CBS 리포트‘60등의 프로그램은 모두 이 프로그램을 함께 제작했던 프로듀서인 돈 휴잇 등이 그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낸 인기 교양 프로그램들이다. 머로우가 만드는 프로그램들의 영향력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머로우라는 기자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하자, CBS의 윌리엄 페일리 회장은 단계적으로 머로우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작업을 시작한다. 1950년대 후반 일이다.

 

1958년 텔레비전의 지나친 상업화가 저널리즘의 가치를 훼손하는 현실에 분노한 에드워드 머로우는 전미 보도국장 연차총회에서 기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요지는 기자들의 정신이 살아있지 않으면, TV뉴스는 그저 사각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전선들과 발광장치들(wires and lights in a box)”일 뿐이라는 내용이다. 에드워드 머로우는 그렇게 30여 년 방송기자의 생활을 정리하고 떠났다




출처 : 한국언론진흥재단신문과방송 2016년 2월호

 

 

 

                  


  1. 에드워드 머로우(1908~1965) 최초의 종군기자로 CBS 유럽 특파원으로 전쟁상황을 현장에서 전한 전설적인 저널리스트로 심층뉴스와 타큐멘터리 개척에 큰 기여를 함 [본문으로]
  2.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반(反)공산주의 미국 위스콘신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R. 매카시가 1950년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한 말 [본문으로]
  3. 자기의 말과 행동의 이전과 이후가 서로 모순되어 일치하지 않음 [본문으로]
  4. 검사가 특정한 형사 사건에 대하여 법원에 심판을 요구하는 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