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일 것인가 낚을 것인가

2016. 5. 10. 15:00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장선화 서울경제신문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Ph.D)


100억대 해외 원정도박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가 연일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필리핀·마카오·캄보디아 등지에 있는 불법도박장에서 원정도박을 한 혐의가 기소 이유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비도덕적인 기업가의 상습적인 도박행위 혹은 그릇된 일탈행위 정도로 치부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연일 터지는 사건사고 중 새로운 것에 관심을 집중하는 언론계의 특성 탓에 이 같은 원정 도박사건은 쉽게 묻히기 십상이다.


그러나 최근 변호를 맡았던 부장판사 출신의 여 변호사에 대한 폭행 혐의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억원 수임료를 키워드로 법조·경찰 로비, 전관예우, 조폭, 범서방파, 브로커, 언론인, 면세점 입점로비 등등 줄기에 달린 땅 속 고구마가 줄줄이 뽑혀 나오듯 관련 사건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연일 새로운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제는 정운호 스캔들이라는 제목으로 법조계와 경찰계의 비리행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관련 기사를 정리해 보자면 해외 원정 도박, 여 변호사 폭행 혐의와 변호사 수임료의 적정성 법조·경찰·기업 전방위 로비 스캔들 네이처리퍼블릭의 상장 정운호의 성공신화 등 대략 다섯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정 대표의 해외원정도박은 이미 2012년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차례 검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매번 무혐의로 풀려났다. 201510월에 딱 걸린 정 대표의 검찰 기소는 이미 예고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도 그는 무혐의로 무사히 풀려날 것을 기대하고 전관예우의 효력이 살아있는 변호사를 선임해 돈으로 해결하려고 여러 가지 불법적인 시도를 자행한 정황이 포착된다.


여 변호사 폭행 혐의는 수임료가 발단이 됐다. 정 대표는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후 착수금을 돌려달라며 변호사와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정 대표가 여 변호사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문제는 착수금 20억원. 변호인 고액 수임료 논란으로 번지면서 화살은 여 변호사에게로 쏠리더니 급기야 법조계의 비리와 부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여기에 정 대표가 브로커를 동원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판결과가 나오도록 전방위로 구명 로비를 펼쳤다는 내용이 떡고물 마냥 추가된 것이다. 총경급 경찰까지 금품로비를 벌인 정황도 드러났다. 결국 지난 2일 정 대표 측의 법조계 브로커와 접촉한 모 부장판사는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면세점 입점로비에 연루된 의혹까지 포착되어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동시다발적 전방위 수사에 나섰다. 곧 정계로 번져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어 경제기사가 등장했다. 상장을 앞둔 네이처리퍼블릭에 관련된 기사로 오너리스크(owner risk)[각주:1]를 해결한다면 주식상장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내용을 다룬 기사다. 유커[각주:2]의 한국 화장품 특수로 매출이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간의 관심은 다시 정운호라는 개인에게 쏠리면서 물거품이 된 그의 성공신화를 다룬 기사가 등장했다. 남대문 시장의 노점상으로 출발해 중저가 화장품업계에 뛰어들어 1,000억원대의 돈을 벌었다는 그의 성공신화는 2005년 즈음 각종 매체에 보도됐다.


정운호 로비 스캔들에 얽힌 기사를 따라가다 보니 마치 잘 만들어진 범죄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 해 오랫동안 씁쓸함이 남을 듯 하다.

정운호 스캔들은 사회지도층이라 할 수 있는 법조계의 부도덕성과 비리관련 사건이 하나 더 추가되어 개운치 않은 채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간간이 터져 나왔던 로스쿨의 부정입학 문제로 불씨가 옮겨 붙었던 것.


최근 교육부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3년 치 입학자료를 전수 조사한 결과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합격자 자기소개서에 부모 및 친인척의 성명, 직장명 등 신상을 기재하여 합격여부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했다는 것. 로스쿨의 투명하지 않은 입시제도를 별도로 떼 놓고 본다면, 조사가 되어도 보도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보도가 된다 해도 단신으로 축소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운호 로비 스캔들로 관련 기사에 대한 여론이 집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법조계의 비리와 로스쿨의 불투명한 입시제도 등을 다룬 기사를 보면서 금수저, 흙수저라는 신조어를 떠올리며 사회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특정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려면 인구의 10%가 이를 인지해야 한다는 사회학 이론이 있다. 이슈화하는데 임계치가 10%라는 의미다. 자칫 묻혀버릴 수 있는 로스쿨의 불투명한 입학제도에 대한 개선은 정운호 로비 스캔들로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이번 로스쿨 입시 청탁 스캔들의 뒤에는 판사 출신인 경북대 신평 교수의 역할이 컸다. 자신의 저서에 입시청탁 관련 내용을 상세하게 다뤄서 교육부의 조사 착수에 큰 역할을 했다. 이처럼 소신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리더가 우리사회에 아직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자칫 감정적 냉소주의적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다면 언론의 낚시질에 걸린 물고기 꼴이 될 수 있다.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따져가면서 문제점을 하나씩 제거하고 본질을 파고드는 미디어 읽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본질을 파고드는 미디어 읽기는 미끼를 덥석 물고 마는 혼돈을 자초하지 않고 자유롭게 헤엄쳐 자신이 가야 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오너리스크(Owner risk) : 오너(총수)의 잘못된 판단이나 불법행위로 인해 기업에 해를 입는 것. [본문으로]
  2. 유커(Youke, 遊客) : 중국말로 여행자를 의미.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에 오는 중국관광객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