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의심하지 않으면 안전은 없다

2016. 5. 25. 16:43다독다독, 다시보기/미디어 리터러시



장선화 서울경제신문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Ph.D)



시시각각 터지는 사건사고 중 언론이 보도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지는 사건일지라도 수면 위로 잠시 떠올랐다가 가라앉아버리기도 하지만, 끈질긴 추적과 항의로 다시 살아나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최근 대한민국을 공포로 내 몬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의 발단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공(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를 최초로 개발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각주:1]가 그 신호탄이다세계 유일의 흡입식 가습기 살균제가 본격 발매되기 시작한지 8년이 지난 20026월 서울에 거주하는 5세 여아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인지 몰랐으며, 질병으로 인한 한 아이의 사망으로 잊혀질 수 있을 법한 사건이었다.


대한소아과학회가 아이들의 급성 간질성폐렴 사망사례가 증가하는 데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다시 4년이 지난 2006. 이때까지도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가 2008년도 간질성폐렴 전국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학술논문에 발표한 것은 2009. 다시 3년의 세월이 지났다. 보건복지부가 역학조사에 나선 것은 학술논문이 발표된 지 2년이 지난 2011년이다.


다시 사건이 터졌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 갑자기 급성 호흡부전을 주요 증상으로 하는 중증 폐렴 임산부 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여성들만 걸리는 병이라도 생긴건지 세간에는 젊은 여성들사이에 괴소문 마저 돌기도 했다. 유례가 없는 환자의 증가를 이상하게 여긴 서울아산병원은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했다. 그 사이에도 가습기 살균제는 대형마트, 인터넷쇼핑몰 등을 통해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 ‘살인 수증기를 내 뿜으면서... 심지어 가습기 살균제가 사망의 원인으로 밝혀진 한 신생아의 경우 밀폐된 공간에서 24시간 살균제가 들어간 가습기 수증기를 쉼없이 마셨던 것으로 밝혀졌다.[각주:2]


3개월에 걸친 질병관리본부의 조사결과(2011.8)는 충격적이었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미상의 폐손상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는 것. 이미 산모와 영유아 6명이 사망하는 등 피해사례가 집계되었다.[각주:3] 질병관리본부가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6종의 가습기 살균제를 수거하라 명령하기까지 또 다시 약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2016119일 기준 환경보건시민단체가 집계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1,282명이며 사망자는 218명이다. 사망자 중 70%가 옥시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다시 올라온 것은 지난 119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장하나 의원의 기자회견에 이어 서울중앙지검이 가습기 살균제 수사팀을 확대(1.26.)하면서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된 기사가 언론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16월부터다. 좀 더 자세한 뉴스기사 분석을 위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인 빅카인즈[각주:4]로 조사해 보았다. ‘가습기+살균제를 키워드로 정하고 검색(기간: 20115월부터 2016518)해 보니 201111월부터 기사가 몰리기 시작했다. 20116[각주:5]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불명의 폐질환 원인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1건 등장하기 시작했고 기사가 대폭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20119월로 112건에 이른다. 201111월에는 350건으로 9월 대비 3배 이상 늘어났다. 이후 보도가 잠잠하다가 보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20163.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의 잘못을 밝히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보도된 후 전국의 언론사는 전방위적으로 기사를 대량방출하기 시작했다. 4월에는 977, 5월에는 한 달의 절반 정도인 17일 동안 무려 2,059건에 이를 정도다. KBS517일자로 시사기획 창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안전공백 17이라는 제목의 탐사보도를 방송했다. 지난 2013820일 방송한 끝나지 않은 고통에 이어 두 번째다.


[그림1] 빅카인즈 키워드 트렌드 분석결과(기간: 2011.5.1.~2016.5.17.)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2002년 이후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되물어야 한다. 언론의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정부와 관련 기업이 시민의 안전은 내팽개친 채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이에 옥시는 서울대와 호서대에 유해성 검증 실험을 의뢰했고, 실험 결과 중 데이터 일부만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서울대 교수의 실험조작설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기업은 대형로펌을 동원해 큰 손실 없이 빠져나갈 궁리에 여념이 없었다. 2003년 심상정의원이 보도자료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의 주요 화학성분인 PHMG를 흡입할 때 독성이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한 그 시점에 언론이 주목을 했다면 피해는 줄어들지 않았을까.


다국적기업인 옥시는 래킷벤키저코리아의 또 다른 이름. 피해자 가족이 지난 4월 런던에 위치한 래킷벤키저 본사에 항의방문을 했을 때, 최고경영자 레카시 카푸어는 주주총회에서 유감(profoundly regret)이라고 언급하고, 피해자들을 만나서는 개인적으로 '미안(personally sorry)'하다고 했다. 뒤늦게 영국 언론사에는 피해자 가족들을을 만나 '사과(apologize)'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공분을 샀다고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증기처럼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시민단체의 힘이 컸다. 사명감이 없으면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장기전을 끝까지 물고 늘어진 시민단체 중 대표 격은 바로 환경보건시민센터(소장 최예용). [그림 2]의 워드클라우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비중있는 키워드 세번째로 자리하고 있다.


[그림2] 빅카인즈 분석결과 가시화-워드클라우드(Word Cloud)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홈페이지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주요일지 및 피해사례를 연도별로 정리해서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 놨다. 아울러 석면 등 유해성 환경물질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나가는 활동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2011년 이후 언론계가 대대적으로 보도를 다시 시작한 것은 올 3월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는 시기와 맞물려있다. 뒤늦게 취재에 들어간 언론계도 유아와 어린이 그리고 산모의 피해가 컸던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다.

사건의 실체를 자세하게 보도하기 시작한 언론계는 최근 섬유탈취제에 대한 유해성으로 관심을 확산시키면서 갑자기 바빠졌다. 각종 화학제품에 대한 유해성을 경고하느라 연일 관련 기사는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시민들은 이제 화학제품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이게 되었다.


바르르 끓었다 식어버리는 냄비근성. 정보화 사회에는 이득이 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초고속 인터넷망이 삽시간에 깔리고, 하루 만에 택배가 배달되는 편리함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온 국민이 경악하고 있는 이 같은 사건에 대한 검찰의 조사로 시시비비가 명확해지고 기업과 정부관계자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사건이 이렇게 커진 데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언론 모두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증기를 통한 흡입의 안정성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가습기 살균제를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판매하도록 내 버려둔 대담한 정부,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 기업, 그리고 지속적으로 의심하지 않은 언론의 책임회피의 우열은 가리기 어려워보인다.


개인이 일상생활을 위해 쓰는 상품이나 물건 중에 화학물질은 얼마나 될지 정확히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화학물질이 가져다주는 편리성 뒤에는 유해성이라는 그늘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새로 개발된 화학물질에 대한 인체의 유해성을 검증하는 데 의외로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국가라면 그리고 그 국가의 시스템을 감시하는 언론이 살아있다면 화학물질로 이윤을 창출해내고자 하는 기업은 이 지난한 시간을 순순히 따를 것이다. 아울러 기업의 경쟁력 강화라는 선물이 따라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1. 2016.5.15. 정철운. ‘가습기 살균제 인체무해, 22년 전 언론보도 보니’(http://goo.gl/EEAa2y). 미디어오늘. [본문으로]
  2. 2016. 5.17. KBS 시사기획 창. ‘가습기 살균제 안전공백 17년’ [본문으로]
  3. 환경보건시민센터(http://goo.gl/fLDHOo), 가습기 살균제 사건 주요일지, 피해사례목록 [본문으로]
  4. 빅카인즈 : 한국언론진흥재단이 개발한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으로 KINDS가 보유하고 있는 25년간의 뉴스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플랫폼 [본문으로]
  5. 환경보건시민센터(http://goo.gl/fLDHOo), 가습기 살균제 사건 주요일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