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5. 16:2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요약] 여러분이 생각하는 ‘16 리우올림픽 명장면은 무엇인가요? 저는 남자 마라톤 은메달리스트 페이사 릴레사(에티오피아·26)의 ‘X'세리머니를 명장면으로 꼽고 싶습니다. 페이사 릴레사의 ‘X'는 에티오피아 정부를 향한 목소리였습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탄약을 사용하는 등 무력으로 반정부 시위대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릴레사는 이를 묵인할 수 없었고,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 진압을 반대하는 의미로 ‘X'세리머니를 펼쳤습니다.
#세계인을 향한 세리머니
지난달 21, 리우올림픽 마지막 경기인 남자 마라톤에서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가 두 팔을 머리 위로 교차시켜 ‘X'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 마라톤선수인 페이사 릴레사(26)로 시상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 때도 기자회견장에서도 ‘X'세리머니를 했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만든 ‘X'는 무슨 의미였을까요?
출처: 뉴스1
페이사 릴레사는 이 ‘X'세리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9개월 동안 1천 명 가까운 오로모 부족을 죽인 에티오피아 정부에 대한 항의 차원입니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을 반대합니다. 나는 평화적인 시위를 펼치는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합니다.” 또한 “이제 나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내가 에티오피아에 가면 죽거나 수감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릴레사는 이 세리머니를 통해 죽음에 이를 수도 있고, 정치적 의사 표현을 금지한 올림픽 헌장을 어겨 메달을 박탈당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X'표시를 계속해서 한 것은 에티오피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최근 9개월 동안 오로모족 500명 이상이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발을 통해 전 세계인이 에티오피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안전을 위해 성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개설된 후원금 사이트는 하루 만에 1억 원 가까운 성금이 쌓였습니다. 미국에 있는 에티오피아인들도 릴레사를 돕기 위한 법률 자문팀을 꾸려 브라질 리우로 보냈습니다.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인식했는지 에티오피아 정부는 “릴레사의 정치적 견해를 존중하여 체포할 이유가 없다”라고 밝혔으며 “릴레사는 에티오피아의 영웅이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에티오피아에서 어떤 문제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릴레사는 에티오피아에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다행히, 그의 메달도 박탈되지 않았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은메달 박탈 등의 중징계 대신 경고 처분만을 그에게 내렸습니다.
#올림픽의 정치적 세리머니
페이사 릴레사 외에도 올림픽에서 정치적 세리머니를 한 선수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故 손기정 선수(이하 고 손기정)입니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는 일장기를 달고 뛰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인해 우리나라의 국권이 침탈되었기 때문입니다. 고 손기정은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후 월계관을 쓰고 시상식대에 올랐습니다. 당시 금메달리스트에게는 히틀러의 화분이 주어졌는데 고 손기정은 이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렸습니다. 그와 함께 마라톤 경기를 나가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수는 당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던 그 화분이 금메달보다 부러웠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시상대에서 웃지도 않고 고개를 떨군 채 비통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는 육상 남자 200m 결승 시상식에서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고개를 숙인 채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내뻗는 일이 있었습니다. 두 선수가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로 뻗은 이유는 미국 내 흑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경례 방식이었습니다. 흑인 인권 운동이 태동하면서 흑백 갈등이 더욱 심화되던 시기, 두 메달리스트의 세리머니는 미국 내 흑백 갈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널리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에서 정치적인 표현은 금지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약 이러한 정치적 행위가 만연하게 된다면 올림픽이 어떠한 의도로 활용될지 예측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정치적 세리머니를 한 이들이 격려와 박수를 받는 이유는 이들의 행동이 스포츠인으로서의 위치와 명예를 포기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현실을 알리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참고기사]
연합뉴스, 또 에티오피아 반정부 세리머니…제2의 릴레사 등장, 2016.08.30.
뉴스1, [올림픽] ‘반정부 세리머니’ 릴레사, 에티오피타 귀국 거부, 2016.08.24.
미디어스, 릴레사의 X 세레머니, 故 손기정 옹의 침묵시위와 같다, 2016.08.24.
JTBC, IOC, ‘반정부 세리머니’ 마라토너 메달 박탈 안해, 20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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