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존엄성,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2016. 9. 5. 10:4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박효진, 국민일보 디지털뉴스센터 온라인팀 기자


[요약]  '생리대 살 돈 없어 신발 깔창, 휴지로 버텨내는 소녀들의 눈물' 생리를 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축복이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소녀들에게 매월 '그날'은 큰 상처와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비참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리하는 딸을 지켜보며 생리대조차 마음껏 못 사주는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5월 국내 유명 생리대 업체인 유한킴벌리가 가격인상 소식을 발표했다. 유한킴벌리는 신제품의 가격을 기존 제품 대비 7.5%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오버나이트 제품은 20.2% 인상안을 발표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전면 백지화했다. 하지만 신제품의 가격인상은 강행키로 해 논란이 커진 상황이었다. ‘생리대 가격이 또 인상된다고?’ 개인적인 관심 때문에 관련기사들을 읽어 내려갔다. 온라인팀 기자다 보니 기사 밑에 달린 독자의 댓글을 살피는 것도 중요한 업무다.



#여성 복지 사각지대


네티즌 대부분은 정부가 생리대를 생활필수품으로 지정해 부가가치세를 10% 감면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생리대 업체들이 지나치게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 온라인 기사 밑에 달린 수백 개의 댓글 가운데 내 심장을 저격한 글이 있었다. “생리대 인상이라니요?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매일 집에 두고 왔다고 하면서 보건실에서 받아 쓰곤 했어요.”, “저희 학교 선생님 제자분은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생리하는 일주일 내내 결석하고 수건 깔고 누워 있었대요. 선생님이 문병 갔다가 알게 되고 제자분이랑 선생님 엄청 우셨다고 합니다.”, “저 어릴 때 집이 가난하고 편부 가정이라 신발 깔창으로 대체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 얘길 들었을때 받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등 생리대와 관련된 직·간접적인 경험담이 올라왔다.


댓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이게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청소년 시기에 가난을 경험했다. 하지만 생리대를 사지 못해 곤란을 겪은 적은 없다. 또한 밥을 굶는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선뜻 취재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생리’와 ‘생리대’는 여성인 나조차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럽고 어려운 일인데 기사를 쓰기에는 다소 민망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집에서 남편과 이 댓글 내용을 갖고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남편이 며칠 전 자신이 겪은 일화를 내게 들려줬다. 섬기고 있는 교회에 노숙자 한 분이 찾아와서 남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분은 “밥값은 괜찮습니다. 제 아내를 도와주세요. 제 아내가 생리 중인데 생리대 살 돈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이건 단순히 복지 차원 문제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존엄성이 위협받는 인권 문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한 생리대 회사의 가격 인상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들.
필자는 댓글을 
읽다가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여학생들이 있다는 내용을 접하고
충격을 
받아 취재를 시작했다. <사진 출처-필자 제공>



다음 날부터 댓글을 단서로 취재를 시작했다. 2015년 국가통계포털 기준으로 국내 저소득층 가정의 여학생은 약 10만 명으로 추산됐다. 매월 10만 명을 웃도는 여학생이 생리대 때문에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2004년 여성 생활필수품인 생리대의 가격 안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가가치세(10%) 면세 품목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생리대 가격은 꾸준히 올랐다.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0년부터 2016년 4월까지 소비자물가지수는 10.6% 상승한 반면 생리대 가격은 25.6%나 올랐다. 지자체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생필품은 지원하고 있지만, 여성의 필수품인 생리대는 지원 대상 품목에서 제외돼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소녀들의 생리대 용품 지급에 관한 실태 파악과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고 있는 듯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녀들은 생리대 대체품으로 신문과 휴지를 돌돌 말아 사용하고 있었다. 또한 생리대를 아끼기 위해 오랜 시간 교체하지 못한 아이들은 비위생적인 환경과 각종 질병에 노출되는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뒤늦게 허둥대는 대한민국 복지


생리를 한다는 것은 여성에게 축복이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소녀들에게 매월 ‘그날’은 큰 상처와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비참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리하는 딸을 지켜보며 중형 사이즈 36개들이 1만 원가량 하는 생리대조차 마음껏 못 사주는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복지의 부끄러운 현실 앞에 미래를 꿈꾸어야 할 아이들이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기자이기 전에 한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국민일보가 저소득층 소녀들의 실태를 인터넷에 처음 보도하자 대한민국은 ‘생리대’로 발칵 뒤집혔다.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들의 생리대 문제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치부였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와 시민이

‘깔창 생리대’ 사연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존엄성과 인권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사회에 표출되며 생리대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생리대 후원을 진행해온 소셜 벤처기업에는 창업 이후 가장 많은 후원 전화가 걸려 왔다.


지방자차단체 중에는 가장 먼저 성남시가 포문을 열었다. ‘깔창 생리대’ 사연을 전해 들은 이재명 성남시장이 페이스북에 “요즘 세상에 생리대도 못하다니, 저소득층 청소년 생리대 지원 사업, 성남이 먼저 시작한다.”는 글을 올리고 담당 부서에 ‘저소득층 미성년자 생리대 지원사업’ 검토를 지시했다. 이후 성남시청에는 일회용 생리대와 후원 물품이 쇄도했다고 한다. 이어서 전주시, 인천시, 서울시 등이 저소득층 여학생 현황을 파악해 생리대 무상 지원을 시작했다. 또한 여성가족부와 시민사회단체, 기업 등 각계각층에서 저소득 가정 여학생들의 생리대 지원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전국 곳곳에서 생리대 기부가 늘어나자 생리대 가격 인상의 본질은 외면한 채 판매 업체들이 때 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생리대 지원 법안도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은 학교에 학생의 신체 발달에 필수적인 기구를 비치하도록하는 법안을 제시했다.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은 여성 청소년들의 보편적 건강권 보호를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 단체가 생리대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단순히 보여주기 식의 법률안 발의에만 그치지 않고 관련 입법이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청소년의 존엄성과 인권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리대 가격 인상으로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유한킴벌리도 153만 패드의 생리대를 학교와 소녀돌봄약국에 무상 지원했다. 올 하반기에는 중저가 생리대를 출시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일단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임시방편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국민일보의 일명 ‘깔창 생리대’ 기사에 많은 독자와 시민들이 눈물을 흘리며 생리대 후원을 시작했다.

각 지자체들도 생리대 후원에 동참했으며 일부 의원들은 생리대 지원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사진 출처-필자 제공>



#우리나라만의 이슈 아니야


‘깔창 생리대’ 이슈에 국민안전처의 ‘생리대 꼼수’도 발각됐다. 국민 안전처는 지난 4월 ‘재해구호법 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하며(7월 8일 시행) 국가 재난 발생 시 남성에게 지급되는 1회용 면도기는 유지한 반면 여성에게 지급되는 생리대를 제외했다. 안전처에 따르면 “생리대는 활용도가 낮은 데다 활용 연령대도 14~50세로 제한적이고 제품 선택 등 개인 취향의 문제가 있어 오래 보관할 경우 변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비난이 일자 안전처는 “재난구호물품에서 생리대를 제외하기로 한 적은 없다.”며 “응급 세트에서는 생리대가 제외되지만 필수 지급품인 개별 구호물품에는 지급된다.”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취재 결과, 지난 4월 입법예고한 ‘재해구호법 시행규칙’에는 개별구호물품 추가 항목에 ‘모포 2장’만 포함됐을 뿐 생리대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았다. 이후 안전처는 국민에게 ‘말바꾸기식 행정’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과거에는 쉬쉬하고 넘어갔을 일들도 ‘깔창 생리대’ 이슈로 인해 사회적으로 드러나게 됐다.


지난 7월 3일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한복판에 ‘피’ (붉은색 물감) 묻은 생리대가 벽에 나붙었다. 이른바 ‘생리대 퍼포먼스’로 불린 이 프로젝트에서 여성들은 생리에 대한 인식 개선과 가격 인하를 촉구하고 나섰다. 벽면에는 ‘생리대가 비싸서 신발 깔창을 써야 하는 학생들’, ‘임신과 출산은 고귀하지만 생리는 숨겨야 할 부끄러운 일입니까?’, ‘학창 시절, 생리대는 마약 밀거래처럼 은밀하게 주고 받아야 했다. 대체 왜?’, ‘우리나라 절반이 여성인데, 왜 이렇게 비싸?’ 같은 문구가 적혔다.


▲ 이번 기사로 대한민국은 ‘생리대’로 발칵 뒤집힌 셈이었다.
서울 한복판 에선 피 묻은 생리대가 벽에 나붙었고,
이른바 생리대 퍼포먼스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진 출처-필자 제공>



생리대 시위를 둘러싼 논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영국의 한 여성용품 회사는 붉은 피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를 내보내 관심을 모았다. 프랑스에서도 생리대와 탐폰(체내 삽입형 생리대)에 붙은 세금을 인하하라는 시위에서 생리혈이 묻은 팬티를 전시했다. 또한 국내보다 비교적 생리대 가격이 저렴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각국에서도 생리대 문제를 여성의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구매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뉴욕 시의회는 관내 공립학교와 교도소, 노숙자 쉼터 등지에서 생리대와 탐폰 등 여성 위생용품을 무료로 주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한국 여성은 생리대에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보다 더 비싼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다. 정부가 생필품인 생리대를 부가가치세 면세 품목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동안 생리대 면세 혜택은 국민이 아닌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최근 공정거래 위원회가 생리대 값 거품 논란을 빚고 있는 유한킴벌리 등을 상대로 조사를 검토하고 나섰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실질적 대책이 세워지길 기대한다.



#온라인 뉴스도 세상을 변화시킨다!


지난 5월 ‘깔창 생리대’ 첫 기사가 나간 이후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소득층 소녀들을 위한 작은 기적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던 소녀들이 따뜻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밝고 건강하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이제 소녀들에게 매달 찾아오는 생리가 눈물 대신 축복이고 기쁨이 됐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온라인 뉴스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깔창 생리대’를 통해 온라인 기사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발화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온라인 뉴스의 가치와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온라인 기자들이 소명의식을 가지고 도전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사회의 약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기자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깔창 생리대’ 보도 이후 마련된 대책들이 제대로 시행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도 기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생리대 이슈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속 매섭게 지켜볼 생각이다.




[활용 자료]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2016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