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세요

2016. 9. 27. 12:0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요약] MS 워드와 컴퓨터 자판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 사이에서 필사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과거 필사의 목적이 암기력 향상이나 문장력을 기르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최근에는 필사로부터 '치유''힐링'을 찾는 것이 달라진 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로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시인 윤동주의 생애와 사촌지간으로 한집에서 태어나 옥사하기까지 함께한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동주>가 올해 초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윤동주 시인의 시집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개봉 즈음해 출간된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월 중순부터 한 달 넘게 베스트셀러 10위권(한국출판인회의 집계)를 유지했습니다. 또한, 윤동주 시인의 시를 그대로 베끼는 필사책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글을 그대로 베끼는 필사책은 왜 인기를 끌었을까요?

 

 

#필사, 왜 인기일까.

 

인터파크도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필사 관련 도서 판매는 전년대비 4.1배나 증가했습니다. 서점가에서는 명시와 명문장을 모은 마음필사’, ‘행복과 긍정 메시지를 담은 필사책’, ‘오늘, 행복을 쓰다등의 필사책이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습니다.


필사책은 20대 여성 등 젊은 층을 주축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키보드에 가장 익숙하고 디지털화된 세대가 역설적이게도 필사의 매력에 빠진 것입니다. 이들이 필사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그 이유를 치유라고 말합니다. 따라 옮겨 적는 단순 작업을 통해 자신을 괴롭혔던 생각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좋은 글귀들을 따라 쓰면서 글에 감정이 이입돼 감동과 함께 격려와 용기를 얻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필사는 뇌 기능 활성화에도 도움을 줍니다. 연필을 들고 글씨를 쓰는 행위 자체가 뇌에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언어기능을 관장하는 전두엽, 두정엽 등을 활성화합니다. 필사를 통해 만족감, 성취감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페이지를 다 베끼거나 시 한편을 다 쓰고 나면 나만의 것이 생기고, 스스로 무언가를 완수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디톡스'의 한 방안으로 필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디지털 디톡스'란 디지털에 해소하다라는 뜻의 디톡스(detox)가 결합한 말입니다. 단식으로 몸에 축적된 독소나 노폐물을 해독하듯이 디지털 기기 사용을 잠시 중단함으로써 정신적 건강을 회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트가 말한 하이테크-하이터치원리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우리의 삶에 더 많은 하이테크(첨단기술)를 도입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하이터치(높은 감성)를 갈망하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필사,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필사에 정해진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몇 가지 팁은 존재합니다.


필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 선택입니다.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10~15분만 지나도 팔이 저리기 시작합니다. 눈으로 1~2분 읽을 분량을 쓰기 위해서는 20분 넘게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필사가 처음이라면 아무리 읽고 써도 질리지 않을 만한 책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필기구는 편한 펜을 골라야 합니다. 장시간 글을 써야 하기에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부드럽게 써지는 펜을 써야 손의 피로감을 덜 수 있습니다. 꾹꾹 눌러 써야 하는 유성펜이나 볼펜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필은 특유의 부드러운 필기감을 느낄 수 있어 필사족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아이템입니다.

 

필사할 때는 굳이 책 한 권을, 한 페이지를 다 베낄 필요가 없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부분, 감명 깊은 부분을 골라 적어도 괜찮습니다. 또 글씨가 예쁘지 않다고 지우고 다시 적을 필요도 없습니다. 필사는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압박감으로 필사를 하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을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안정을 주는 필사, 매번 반복되는 하루에 지치고 힘드시다면, 잠깐 마음에 드는 글귀 또는 시 한편을 필사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