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1. 12:00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요약] 지난 7월, 터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터키 정부는 6시간 만에 쿠데타를 진압했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나고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지 3개월, 터키 당국은 국가비상사태 연장을 거론하며, 쿠데타를 빌미 삼아 반대파를 제거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쿠데타 후폭풍에 휩싸인 터키를 조명합니다.
#이슬람주의 강화한 현 정부에 대한 반발
터키 군부의 쿠데타는 왜 일어났을까요?
터키 군부의 쿠데타는 이슬람원리주의와 세속주의의 충돌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터키군은 세속주의(정교분리)의 수호자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이는 현대 터키 건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케말 파샤, 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군사령관 출신인 케말은 1923년 오스만제국의 술탄 시대를 끝내고 터키 공화국 수립을 선언하며 정교분리의 세속주의를 헌법에 명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치지도자 술탄제 폐지(1922년), 1종교지도자 칼리프제 폐지(1924년), 일부일처제 확립(1926년), 여성 선거권 부여(1930년) 등의 개혁 조처가 이어졌습니다.
터키 군부는 무스타파 케말의 세속주의를 수호하면서 이슬람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쿠데타를 일으켜 왔습니다. 군이 1960년, 1971년, 1980년에 일으킨 쿠데타들도 모두 ‘세속주의나 민주주의, 공화국, 케말주의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진행됐습니다.
지난 7월, 36년 만에 발생한 이번 쿠데타도 집권 이후부터 이슬람주의를 강화해 온 에르도안 대통령의 통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는 경제 발전과 친(親)이슬람주의를 바탕으로 3번이나 총리로 선출됐으며, 2014년에는 헌법까지 바꿔 대통령에 당선돼 14년째 장기 집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권 내내 이슬람 근본주의 통치를 강화하면서 터키 건국 이래 지켜져 왔던 세속주의 이념을 약화해 왔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쿠데타가 일어난 것입니다.
#쿠데타와 무관한 범위까지 영향
쿠데타는 6시간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그 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비상사태선포가 선포되면 3개월 동안 국민의 기본권은 제한되는 반면 대통령은 입법권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 칙령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됩니다. 터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반대파에게 쿠데타 동조 혐의를 씌워 대량 해고 등의 후속 조치를 이어갔습니다.
시민단체들은 터키 정부가 비상사태를 이용해 법치를 파괴하고 있다고 하면서, 에르도안의 대규모 숙청이 쿠데타에 따른 정당한 대응이 아니라 쿠데타를 빌미로 자신의 반대파까지 한꺼번에 제거하는 의도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터키 당국은 쿠데타 배후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의 지지자들을 막을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습니다. 귈렌은 한때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였으나 사이가 틀어진 뒤 반역죄로 기소될 위기에 처하자 1999년 미국으로 자진 망명하였습니다.
에르도안이 자신의 반대파를 모두 숙청해 권력이 더욱 공고해질 경우 터키가 세속주의 국가에서 이슬람 신정국가로 급선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습니다. 실제로 터키 정부가 이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자 세계 각국 언론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를 이슬람 국가로 바꾸려 하고 있다.”라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현재 터키는 국가비상사태 만료 시한이 다가오자 연장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AFP 통신 등은 터키의 국가안보위원회(MGK)가 성명을 통해 국가비상사태 연장을 권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국가비상사태가 쿠데타와 무관한 분야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언론이 그 표적입니다. 지난 9월 28일 쿠르드어 TV 방송을 중단시켰고, 터키 자로크TV 등 쿠르드계 TV 채널 10개의 방송도 중단되었습니다. 정부는 쿠르드계 단체의 테러 선전을 전파한다는 혐의로 폐쇄를 명령한 한 방송사를 급습해 생방송 도중 송출이 중단됐습니다. 당국이 방송을 중단시킨 채널 10개 중 4개는 쿠르드어 전용 방송이며, 3개는 터키어·쿠르드어 공용 방송입니다. 나머지 3개는 터키어 방송이지만 친(親)쿠르드계로 분류됩니다. 쿠르드어 라디오 채널 2곳도 송출 중단을 당했습니다. 터키 곳곳에서는 결국 정부를 옹호하는 언론사만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 쿠르드계 분리주의 무장조직 '쿠르드노동자당'(PKK) 연계 혐의로 교사 약 2만 명이 정직을 당했습니다. 베키르 보즈다 법무장관은 쿠데타 시도 이후 7만 명이 조사를 받았고 이 중 3만 2천 명이 여전히 구금 중이라며 추가 체포가 있을 수 있다고 NTV 방송에 밝혔습니다. 터키 제1야당 케말 클르치다로을루 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국가비상사태가 터키 전역에서 희생자 백만 명을 양산했다”며 당국의 쿠데타 진압 이후 가장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터키 정부는 지난 8월 4일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귈렌에 대해 쿠데타 지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체포영장에는 귈렌이 터키 정부 전복과 기능 마비, 대통령 암살, 터키 의회 파괴, 터키 국민의 자유 박탈, 헌법 질서 파괴 등을 모의했다고 적시됐습니다. 터키 정부는 미국 정부에 귈렌의 추방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증거를 내놓으라며 추방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귈렌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지금 터키와 에르도안 대통령은 독재로 치닫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 일간지 '자만'의 경영진 및 고위 언론인 47명에도 귈렌과 연관이 있다는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메블류트 차부숄루 터키 외교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쿠데타 가담 용의자들의 구금 상태와 가혹행위 등에 대해 우려스러운 보도를 언급하면서 "신뢰할 만한 증거가 신속하게 사법부에 전달되고 법정에서 결정이 나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터키 쿠데타의 후폭풍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터키 정부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됩니다.
[참고기사]
문화일보, 터키, 귈렌 체포영장 발부···美에 추방 압박, 2016.08.05
연합뉴스, 터키, 국가비상사태 연장 예고···쿠데타후 3만2천명 구금중, 2016.09.29
연합뉴스, 터키, 쿠르드계TV 10곳 방송 중단시켜···쿠데타 비상조치 적용, 2016.09.29.
- 칼리프(Caliph, 정치와 종교의 권력을 아울러 갖는 이슬람 교단의 지배자를 이르는 말)에 의하여 왕이 정치와 종교의 권력을 갖는 제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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