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활동 후기

2019. 2. 5. 12:00수업 현장

아웃박스는 고양시 소재 초등학교 교사들의 젠더교육 연구모임이다. 아이들의 성 고정관념을 깨고 ‘여자답게 남자답게? 아니 나답게!’라는 슬로건을 통해 젠더감수성을 길러주는 수업을 만들고 있다. 그중 미디어교육과 결부시켜 진행한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활동을 소개한다.




황고운 일산 강선초등학교 교사


“응, 니 애미.”

교실에서 심심치 않게 들렸던 유행어다. 엄마를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단어가 가벼운 농담이 되고 있다는 건 교실에서 보내는 SOS 신호였다. 단어의 의미를 물어보면 아이들은 금방 멋쩍어했다. “앙~기모띠” 역시 일본 포르노에서 온 유행어지만 알고 쓰는 아이들은 많지 않았다. 어디에서 그런 말을 들었냐고 하면 역시 열에 여덟은 TV와 유튜브라고 답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초등학생의 90%는 모바일로 콘텐츠를 소비하며, 넷 중 하나는 1인 미디어를 시청한다.[각주:1] 아이들은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로부터 성 고정관념을 습득하기 시작해서, 미디어를 소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체화한다. 혐오와 차별은 주로 유머의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에게 심한 상처가 되는 줄 모르고 그것을 사용한다. 그 ‘해맑은 차별’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지 마라”고 말한다면 물론 교실에서는 사용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한다.

아이들에게는 백신이 필요하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에 물음을 던지고, 약자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를 거부할 줄 알고, 일상 속에서 더 좋은 콘텐츠를 고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아웃박스’는 이런 부분에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어른들의 모임이다.


젠더교육과 미디어리터러시, 둘이 만나 배가 되다

처음부터 미디어리터러시를 염두에 두고 젠더교육 수업을 시작했던 건 아니었으나, 하다 보니 많은 수업이 결국 미디어리터러시를 강조하고 있었다. 그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던 네 개의 수업을 소개한다.


1) 이모티콘 속 성차별 인식하기

5학년 국어 5단원 ‘매체로 의사소통해요’는 인터넷 매체를 이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과 매체가 우리에게 주는 긍·부정적 영향을 알고, 매체 의사소통의 특성을 공부하는 단원이다. 2, 3차시 수업을 하면서 실제적이지 않은 교과서 속 제재들이 아쉬웠다. 이에 아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메신저를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했고, 수업의 일부로 카카오톡 이모티콘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활동을 했다.

카카오톡에는 ‘오피스 라이프’라는 이모티콘이 있다. 네오는 명품 가방을 들고 퇴근만 기다리며, 화장과 요가가 취미인 여직원, 프로도는 열성적으로 일하며, 과로와 회식에 지친 남직원으로 등장한다. 라인 스티커 ‘직장 여성 코니의 회사 생활’과 ‘샐러리맨 문 대리’의 직장생활 모습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온라인에서 제2의 언어처럼 쓰이는 이모티콘이 아이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런 성 고정관념을 그대로 재생산할 수 있다. 아이들 세대에는 이런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예민함을 길러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이 이모티콘을 쓴 대화를 보여주고 문제점을 찾게 했다. 이모티콘 속 캐릭터들의 성별을 물어본 아이들은 활발하게 토의한 뒤 <표1>과 같은 문제점을 찾아냈다. 





아이들은 성차별적인 이모티콘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이런 문제점을 그대로 전파하는 일이며, 이러한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심도 매체를 올바르게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성평등 이모티콘 ‘스쿨 라이프’를 자유롭게 만들어보고, 가상의 대화창에서 활용해 보는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실제로 카카오와 라인에 해당 이모티콘의 문제점을 건의했고 개선하겠다는 담당 이사의 피드백을 받았다. 이것도 아이들에게 공유하면서 ‘미디어 이용자들의 요구를 기업도 관심 두고 발 빠르게 반영하고 있으니, 좋은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표현이 정말 중요하다’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찾아낸 문제점을 기업이 인식하고 변화를 약속했다는 사실에 무척 감명했다. 이제 학생들은 이모티콘뿐만 아니라 광고 속 성 고정관념도 스스로 찾아보며, 찾을 때마다 선생님에게 달려와 알린다.



 

아이들이 만든 젠더리스 이모티콘 ‘스쿨 라이프’ <사진 출처: 필자 제공>



2) ‘상어 가족’ 속 성 고정관념 찾기

아이들이 좋아 따라 부르는 대중가요 속에서 성차별적 가사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 돼(트와이스, ‘Cheer up’)”, “남자라서 애써 눈물을 삼키죠(엠투엠, ‘남자라서’)” 등의 성차별 가사가 담긴 대중가요를 즐겨 부르는 사이 아이들은 이런 인식을 내면화할 수 있다. 노래 속에 숨어 있는 성 고정관념을 찾아낼 줄 아는 비판적 사고력을 가지면 다른 노래를 들을 때도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상어가족 속 성 고정관념 찾기’ 활동을 계획했다.

작년에 저학년 아이들이 교실에서 가장 많이 부른 노래는 단연 ‘상어 가족’이다. ‘어여쁜 (핑크색의)엄마 상어, 힘이 센 (하늘색의)아빠 상어’라는 가사에 고정관념이 숨어 있는 건 그리 큰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더 나은 상상을 해 보면 좋지 않을까.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고정관념을 찾아내 바꾸고 싶어 했다. “상어 가족 그림에도 고정관념이 있어요. 여자는 약하게, 작게, 분홍색으로 그리고 남자는 강하게, 크게, 파란색으로 그렸어요.”, “가늘고, 

높은 여자 목소리,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가 고정관념이에요. 남자 목소리가 굵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기로 시작해서 할아버지가 마지막에 나오는 건 나이가 어린 순서로 나오는 거잖아요. 

그런데 엄마는 아빠보다 먼저 나오고, 할머니는 할아버지보다 먼저 나와요. 여자가 남자보다 어려야 되는 게 아닌데 고정관념이 있어요.”

아이들은 상어 가족의 구성원별 특징을 고민하고 찾아내, 다양한 성격을 수식어로 붙여보았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미디어 속 이미지를 뒤틀어보는 경험은 다른 곳에서도 ‘새롭게 생각해보기’ 연습을 하도록 도와주리라 기대한다. 


3) 불법촬영, 일명 ‘몰카’ 속 인권침해 이해하기

최근 스마트폰 보급과 생활용품으로 위장한 몰래카메라의 확산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그 수법 또한 다양해져 누구나 피해자가 되기 쉬워졌다. 일단 불법으로 촬영된 영상물이 온라인을 통해 유포되면, 빠른 속도로 전파되기 때문에 원본을 삭제하더라도 완전한 삭제가 어려워 단기간에 피해를 회복할 수 없다. 즉, 디지털 테러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불법촬영 및 불법촬영물 유포 행위는 매우 쉽게 이루어져서 범죄 의식이 낮고, 실질적인 처벌 수준이 경미한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자극적인 내용에 자주 노출된 10대들은 몰카 촬영과 유포를 심각한 범죄라고 여기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디지털 성범죄 예방 교육을 하면서 동시에 정보화 사회에서 미디어를 올바르게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 토의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은 문제를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니 ‘찍는 것은 범죄인데 보는 것은 범죄가 아닌’ 현행법을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퍼지는 범죄의 무서움에 대해 공감하면서, 온라인으로 개인정보가 퍼지는 것과 그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의 심각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은 그동안 TV 예능 방송에서 쉽게 접하던 ‘몰카’나 ‘야동’이라는 가벼운 단어들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했다. 무심코 친구들 사진을 찍어 동의를 구하지 않고 클래스팅이나 학급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을 짚어내고 서로 사과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수업 후 만든 학급공동실천서약서 <사진 출처: 필자 제공>



4) 혐오, 차별, 욕설, 폭력 없는 유쾌한 유튜브 방송 만들기

유튜버가 꿈인 아이들의 이야기가 가끔 기사로 난다. 유튜브에 자기만의 콘텐츠를 편집해 올리는 친구도 각 학급에 4, 5명씩 된다. 아이들은 모든 정보를 유튜브에서 얻고 있는데, 정작 어른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모른다. 뉴스에서 나오는 기사를 보며 걱정만 쌓아가고, 시간을 정해놓고 유튜브를 최소한만 보게 하는 등의 조치가 전부다. 필자를 비롯한 교사와 어른들은 아이들이 재밌어 하는 콘텐츠를 이해할 필요가 있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우려를 잠재울 만큼 ‘건강하게 유튜브 이용하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그래서 6차시 분량의 프로젝트 수업을 계획했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방송을 즐기는 동안에도 ‘이번 편은 욕설이 많이 나오고,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별로 좋지 않다’고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인기 있는 유튜버들의 방송을 6, 7개 보여주며 장단점을 찾아보게 했는데, 아이들은 곧잘 판단했다. 그런 뒤에 아이들이 스스로 ‘좋은 유튜브 방송의 기준’을 세웠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필자는 학생들 스스로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혐오와 욕설 없이도 유쾌한 방송’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관심사별로 팀을 짜고 5분짜리 짧은 분량을 준비시켰는데, 방과 후에도 남아서 아이디어를 짤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

방송을 직접 해 본 소감은 다양했다. 그동안 좋아했던 유튜버를 언급하며 ‘○○님의 방송 중에 어떤 건 거르고 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남을 놀리거나 조롱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는 방송에 대해 아이들은 이제 따분하고 불쾌하다고 여길 수 있지 않을까.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줄임말 퀴즈’ 등을 주제로 유튜브 방송을 기획·진행했으며, 

옆 교실에서는 함께 모여 친구의 방송을 시청하고, 참여했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건강한 미디어 세상으로 가는 첫 걸음

우리가 진행한 수업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해서 더 많은 학생이 미디어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블로그에 수업 과정을 게시해 선생님들이 활용할 수 있게 했고, 이를 엮어 책으로 만들었다. 또 수업을 모아 한겨레신문 교육 지면에 ‘초등교실 속 젠더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매주 연재하고 있다. 우리가 한 수업들이 미디어를 타고 생산되는 과정을 보며 학생들은 다시금 자신이 배운 내용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나눈다. 미디어 이용자가 아니라 생산자로 클 가능성이 더 큰 지금의 학생들이 만들어갈 미디어 세상은 이로 인해 조금 더 건강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성차별과 혐오를 익숙하게 생산하던 TV 프로그램, 애니메이션, 유튜브 방송들이 젠더감수성 높은 학생들 눈치를 보게 하고 싶다. 앞으로는 학생들의 언어로 젠더교육, 성교육하는 영상 콘텐츠를 유튜브에 발행할 계획이다. ‘젠더감수성 있는 딸, 아들 키우기’를 주제로 한 학부모 대상 팟캐스트를 준비 중이기도 하다. 수요자가 존재하는 곳에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젠더교육을 이어나가려는 노력이 통했으면 좋겠다. 

초·중등 교과서에선 앞으로 점점 더 폭넓고 깊이 있게 미디어리터러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 안에 젠더감수성이 충분히 녹아들 수 있도록 이 콜라보 프로젝트의 꾸준한 행보를 이어가겠다. 





  1. 1.한국언론진흥재단(2016).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