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에 지쳐 잊고 있었던 꿈을 다시 찾는 방법

2011. 10. 13. 09:2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읽기에 몰입한 건 아주 뒤늦은 때였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그 이전에 위인전이나 세계명작동화 같은 걸 읽지 않은 건 아니지만, 별로 깊은 인상이 남지 않았고, 당시 읽은 심훈의 『상록수』가 기억에 또렷합니다. 국어 교과서에 본문 일부가 나왔는데, 국어 선생님께서 전편을 읽어보라고 하셨죠. 물론, 읽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친하게 지내던 반 친구가 아주 재미있으니까 한번 보라고 하더군요. 때는 1984년. 시골에서 자연을 벗하고 살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대구로 나온 때였습니다. 친구도 별로 없고, 쓸쓸하고 외로운 자취생활을 하던 어느 일요일. 당시 한참 인기를 끌던 성룡의 <프로젝트 A>란 영화를 친구와 함께 동네 극장에서 보면서 시간을 죽이던 때였습니다. 

그렇게 어슬렁거리다 집 근처 동네서점에 들렀는데요. 당시의 삼중당 문고로 나온 심훈의 『상록수』를 골라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농촌 계몽운동을 다룬 소설인데, 나도 모르게 주인공들의 사랑과 줄거리에 빠져들었습니다. 

삼중당 문고는 그 때만 해도 세로쓰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즈음 막 가로쓰기를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질이 누런 색깔이었는데, 이건 아이보리색으로 산뜻했습니다. 


 


그렇게 두껍지도 않은 그 소설을 밤새워 읽다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의 기쁨은 아직까지 잊지 못합니다. 뿌듯함과 함께 가슴이 벅차 오르던 느낌. 아마 소설의 감동보다는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었다는 만족감이 더 컸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부터 제 독서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저에게 읽어보기를 권했던, 형 같은 친구의 권유에 따라 이후에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신문기자 출신의 헤밍웨이는 아주 간결한 문체를 쓰기 때문에 독서 초심자에게는 안성맞춤인 작가였습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미국인 남자 로버트 조던과, 스페인 처녀 마리아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야기. “키스할 때 코는 어디로 둬야 하나요?”라는 대사도 희미하지만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는 대학 1학년 때 새로운 계기를 마련합니다. 이문열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사람의 아들』로부터 시작해 그의 중단편까지 모든 책을 섭렵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별로 되고 싶은 목표가 없었습니다. 『영웅시대』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방황하던 청춘의 시절에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생각만 하고, 삶이 불투명할 때마다 그 탈출구를 책에서 찾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영웅시대 소설 속 인물, 헌책방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삶에 대해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어떤 책이 좋은지 권하거나 삶의 방향에 대해 조언하는 멘토 아저씨였죠.

그 때 이후, 제 꿈은 어렴풋하게 동네서점 주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는 그 꿈을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대기업에 취직을 하고 한 5년을 지내다, 2001년 벤처 열풍의 막차를 타고 5년의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가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었던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 내가 책을 좋아했지.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면, 후회도 덜하겠지.’ 

2년여 동안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도 못한 채 출판계를 어슬렁거렸습니다. 막무가내로 출판사에 일하고 싶다고, 무보수로라도 써달라고 떼를 써보기도 하고, 저자 강연회 취재를 다니면서, 또 출판 강좌를 들으면서 새로운 일을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책사부. 그렇습니다. 동네서점이 여의치 않다면 누군가에게 좋은 책을 권해주고, 삶의 멘토 역할을 해주는 일이라면 정말 보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회사를 꾸렸습니다. 뜻이 맞는 독서광과 함께 말이죠.

책을 글로 정리하는 서평 쓰기를 사서를 대상으로 한 강의를 시작하고, 독서토론 프로그램을 도서관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와 글쓰기, 독서토론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며 바로 책으로 통하는 사람, ‘책통자’라는 네이밍도 지었죠.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서평가로 잘 알려진 장정일 작가는 ‘동사무소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는 것’을 소망했다면, 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더 겸손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기를 바랍니다. 책을 자신의 성공만을 위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공부는 닫힌 생각과 마음까지도 여는 소통이다. 상처가 치유된다. 중심을 잡지 못한 인생에 목표가 생긴다. 교만하던 자신을 낮추게 만드는 것이 공부다. 성장과 변화는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공부다. 나를 넘어서는 과정을 겪어야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제 몫의 쓸모를 발견하고 묵묵히 해내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다. 

-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김병완, 다산에듀) 중에서 



여기서 ‘공부’라는 단어 대신에 ‘책’이나 ‘독서’를 넣어봅니다. 학교교육이 진정한 공부의 가치와 기쁨을 주지 못하는 시대, 그나마 책이 탈출구를 마련해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억지로 시험을 위해 암기하는 책이 아니라 호기심과 재미, 성장과 변화, 교양과 지혜를 위해 해야 하는 진짜 공부, 바로 독서입니다.

물질이 풍요로워질수록 정신의 황폐함은 더욱 짙어갑니다. 흔들리는 유혹과 나태해지는 정신을 다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책입니다. 책과 소통하는 사람은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어린 나이에 이런 책을 접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책을 좀 더 일찍 만나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서 더 큰 축복일 것입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놓치기도 합니다. 혹시 어릴 때부터 꿈꿨던 작은 꿈들을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가요? 어릴 적 꾸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아무리 말려도 하고 싶었던 꿈을 혹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이 가을, 더 늦기 전에 책을 통해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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