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5. 17:57ㆍ포럼
과열 입시와 사교육 폐해,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
JTBC 드라마 ‘SKY 캐슬’이 종영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그에 대한 열풍은 여전히 식지 않았으며, 세간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SKY 캐슬’은 학교 현장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의미와 원리를 교수·학습하는 데 유용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원리를 바탕으로 ‘SKY 캐슬’을 분석해 봤다.
황치성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 언론학 박사 |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SKY 캐슬’이 종영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그에 대한 열풍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20부작 최종회의 시청률 23.8%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그에 대한 세간의 반응도 호평 일색이다. ‘입시에 목매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풍자한 다큐멘터리 같은 드라마’, ‘짜임새 있는 대본’, ‘실력파 배우들의 열연’, ‘세련된 영상미’ 등등. 1
이렇듯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SKY 캐슬’은 학교 현장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의미와 원리를 교수·학습하는 데 유용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우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만큼 학생들은 이 드라마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 학생들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원리를 바탕으로 ‘SKY 캐슬’을 분석해 봤다.
학생·교사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
미디어 리터러시는 ‘미디어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분석,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참여하는 능력’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일반적인 교수·학습은 아래 표와 같이 다섯 개 핵심 원리와 질문들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2 이 글에서는 다섯 개의 핵심 질문 중 세 번째와 네 번째 핵심 원리만 적용해서 ‘SKY 캐슬’을 분석해 보기로 하겠다.
[표] 미디어 리터러시의 핵심 원리 및 핵심 질문
핵심 원리 |
핵심 질문 |
1. 미디어 메시지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
1. 누가 이 메시지를 만들었는가? |
2. 미디어 메시지는 수용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나름의 규칙과 언어 혹은 설득기법을 사용한다 |
2. 이 메시지는 어떤 언어적 기법 혹은 설득기법을 사용했는가? |
3. 사람들은 같은 메시지를 다르게 지각한다 |
3. 사람들은 같은 메시지를 어떻게 달리 지각하는가? |
4. 미디어 메시지는 특정의 가치나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 |
4. 이 메시지에는 어떤 가치나 관점이 강조되고 있는가, 혹은 빠져 있는가? |
5. 미디어 메시지는 돈, 권력 등 특정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
5. 이 메시지는 왜 만들어졌는가? |
미디어 리터러시의 세 번째 핵심 원리, 즉 ‘사람들은 같은 메시지를 다르게 지각한다’에 기초해서 ‘SKY 캐슬’에 적용해 볼 수 있는 질문은 ‘드라마에 표상되는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는가’다. 드라마도 하나의 예술작품인 이상 다양한 현실을 표현할 수 있지만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잘못 그려낼 경우 그들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상을 심어줄 수 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SKY 캐슬’이 그려낸 집단 이미지에서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우선 학생들에 대한 묘사다. ‘SKY 캐슬’에서 비치는 학생들의 모습은 최상위 계층의 신분을 유지 혹은 갈구하는 학부모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다. 미래의 진로 설정은 물론, 공부 방법에서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부모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하는 종속형 인간으로 묘사된다.
두 번째는 교사들의 이미지 문제다. 교육 문제를 논할 때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할 집단은 학생과 교사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지언정 교사와 학생이 교육의 중심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SKY 캐슬’에서 교사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교사들이 나오는 장면도 극히 적었지만, 그마저도 SKY 캐슬의 탐욕스러운 교육열의 동조자이거나 ‘인터넷 강의’를 틀어주며 대충 수업을 때우려는 모습이 전부였다. 드라마 역시 예술작품인 이상 허구적 요소를 사용할 수 있겠지만 이는 현장 교사들에 대한 도를 넘는 왜곡일 뿐만 아니라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더욱 심화시킬 여지가 있다.
흙수저는 더 탐욕스러운가?
세 번째는 흙수저 출신의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SKY 캐슬 입주자 중에서도 최상위 계층에 대한 욕망이 가장 강한 인물은 한서진(염정아 분)과 차민혁(김병철 분)인데, 이 두 사람은 흙수저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서 엄마 한서진은 명문가 출신의 우아한 사모님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알코올 중독자인 도축업자의 딸로 신분 상승을 위해 성씨 개명도 불사하는 욕망의 화신이다. 차민혁은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 최연소 차장검사를 거친 주남대 로스쿨 교수이지만 가난한 세탁소집 아들로 태어난 전형적인 흙수저다. 차민혁은 또한 집안에 특대형 피라미드를 들인 뒤 자식들에게 “친구를 짓밟고서라도 꼭대기에 올라갈 것”을 주문처럼 되뇌는 학벌지상주의자다. 결과적으로 ‘SKY 캐슬’은 ‘흙수저 출신은 더 탐욕스럽다’는 고정관념을 심어주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네 번째 핵심 원리는 가치 혹은 관점의 문제다. 미디어 메시지는 본래적으로 구성된 것들이기 때문에 최소한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나 관점이 어떤 형태로든 텍스트에 반영된다.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작가의 전반적인 세계관을 포함해 ‘SKY 캐슬’에서 어떤 관점이 지배적인가 혹은 어떤 관점이 빠져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SKY 캐슬’은 한국 사회에 내재해 있는 교육 문제를 바탕으로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해 재구성한 픽션이다. 유현미 작가는 “본인 자식의 입시 경험에 더해 대학 진학 압박으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을 다룬 여러 기사들을 보고 ‘이 드라마를 통해 한 가정이라도 살릴 수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본을 작성하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3 이러한 의도 하에 유현미 작가는 드라마 전편을 통해 ‘과열된 입시 경쟁과 사교육의 폐해가 심각하고 그 한편에는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입시 제도의 문제가 있다’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또 이러한 관점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2015년에 있었던 ‘천재소녀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동시 합격 사기사건’, 그리고 ‘2018년의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과 같은 실제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SKY 캐슬’의 역설
어떤 면에서 보면 ‘SKY 캐슬’은 한국 교육 현실의 한 단면은 잘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애초에 의도한 대로 ‘한 가정이라도 살릴 수 있을 만큼의 어떤 시사점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다. 한국의 교육 문제는 보다 중층적이고 구조적인데도 불구하고 개인이 욕망을 내려놓고 과도한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드라마가 현실 문제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암시나 시사하는 부분은 있어야 했는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 드라마는 작가가 밝힌 대로 과열된 입시 경쟁과 사교육의 폐해를 고발하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강남 학원가에는 입시 컨설팅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늘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사교육에 대한 관심을 더 높였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4 물론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람들에겐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위화감을 조성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는 저소득층의 입장이나 관점을 간과했다.
- 매경이코노미(2019.1.28.). “‘SKY 캐슬’에 함몰된 한국” 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9&no=56489 [본문으로]
- 황치성(2018). 《미디어 리터러시와 비판적 사고-디지털 세강에서 자기주도적 삶과 학습을 위한 지침서》. 서울-교육과학사. [본문으로]
- https://youthassembly.or.kr/bbs/board.php?bo_table=B66&wr_id=41197295 [본문으로]
- 중앙일보(2019.1.16.). “‘우리 애도 예서처럼’…‘SKY 캐슬’ 인기에 학원가 컨설팅 문의 급증”. https://news.joins.com/article/23290107 [본문으로]
'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디어 바로 알고 이용하기’, 이 책 한 권이면 OK! (0) | 2019.04.29 |
---|---|
미디어교육 필요성·대입 연계성 입증, 교과 자격 확보해야 (0) | 2019.03.11 |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제작기 (0) | 2019.02.21 |
[연재] 미디어리터러시와 비판적 사고 Ⅳ (0) | 2019.02.07 |
[연재] 미디어 리터러시와 비판적 사고 Ⅲ (0) | 2018.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