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 21. 12:00ㆍ포럼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 30분에 방송되는 KBS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우리 사회의 언론 관련 이슈를 파헤치기 위한 기자들의 취재와 전문가 패널의 신랄한 토크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한국 저널리즘의 문제를 가감 없이 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제작진의 제작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정연우 KBS 기자
KBS는 지난해 역사상 가장 긴 파업을 벌였다. 140일 이상 지속한 파업은 일선 취재 현장의 기자들에게 취재의 의미와 소중함, 그리고 갈증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한 KBS는 보도·시사 프로그램의 정상화와 강화를 가장 먼저 내걸었다. 이러한 기치 아래 공영방송의 새로운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시작할 수 있었다.
KBS는 ‘미디어포커스’, ‘미디어비평’, ‘미디어인사이드’ 등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KBS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은 최근 몇 년간 축소를 거듭했고, 지난 2016년을 끝으로 결국 모두 폐지됐다. 파업 당시 KBS의 구성원을 포함한 안팎에서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가 잇따랐다. 부당한 언론 권력과 우후죽순 생겨난 언론 매체의 난립으로 미디어에 대한 감시 역할이 공영방송에 필수적으로 요구된 것이다. 이러한 요구에서 출발한 <저널리즘 토크쇼 J>는 ‘기레기, 가짜 뉴스 퇴치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라는 도발적인 기치를 전면에 내세우며, 지난 6월 17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아래는 <저널리즘 토크쇼 J> 론칭 당시 보도자료다.
KBS가 새로운 정규 주간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를 6월 17일 론칭한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새로 출범한 KBS 경영진이 약속했던 공영방송 회복의 출발점이다. KBS 경영진은 지난 4월 취임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공영방송을 바로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담아 ‘새로운 저널리즘 프로그램’을 기획·방송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때 KBS는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공영 미디어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기자들은 취재 현장에서 ‘기레기’라고 손가락질 받았고, 광화문 촛불 시위를 취재하던 KBS 중계차에는 “너희도 공범이다”라는 낙서가 나붙었던 가슴 아픈 과거사를 가지고 있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공영방송의 소임을 다하는 길이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저널리즘의 구현에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
‘미디어비평 토크쇼’에 적합한 출연자를 찾아라
안팎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언론사에서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다시 출범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KBS는 파업 뒤 다소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인력 확보에도 한계가 있었다. 외부의 높은 기대와 평가 잣대 역시 고민스러운 점이었다. 이러한 조건들을 놓고 최선의 형식을 고심한 끝에 <저널리즘 토크쇼 J>팀은 ‘미디어비평 토크쇼’를 선택했다. 무엇보다 기존에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 가지던 ‘기자 취재-비평’의 단순하고 무료한 형식을 탈피하고자 했다. 그래서 최근 시사 프로그램의 트렌드를 반영해 토크쇼 형식을 선택한 것이다.
전문가 패널의 토크에 기자의 취재 내용을 더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전문가 패널의 구성이 프로그램의 성패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토크쇼에 참여할 수 있는 방송 능력을 기본으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전문성, 미디어비평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수용자들에게 쉽게 풀어줄 능력, 그리고 객관적 비평을 위한 정치인의 배제 등이 주요 기준이 됐다. 이에 따라 프로그램 론칭 당시 출연자는 진행을 맡아줄 정세진 아나운서, 팩트에 기반한 비평을 담당할 최강욱 변호사, 저널리즘 전문가 정준희 중앙대 교수, 재미를 더할 팟캐스트 진행자 최욱, 외부인의 시선으로 한국 언론을 바라봐 줄 안톤 숄츠 독일 공영방송 ARD 기자로 정해졌다. 지금은 최강욱 변호사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발탁이 되면서 고정 패널에서 빠졌고, 그 빈자리를 각 회차별로 주제에 맞는 전문가 패널이 채워주고 있다.
(왼쪽부터)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출연자 정세진 KBS 아나운서, 최욱 팟캐스터, 정준희 중앙대 교수, 안톤 숄츠 ARD 기자
<사진 출처: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공식 홈페이지>
기계적 중립 아닌 가치 판단 통한 방향 제시
본격적인 제작기를 설명하려면 가장 핵심적인 ‘주제 선정’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이다 보니 다른 일반 시사 프로그램보다 주제 선정에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주제가 미디어와 관련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선정의 폭이 좁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스포츠 이벤트로 인한 결방이 아니면 차질 없이 매주 방송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만큼 미디어 분야에 국한하더라도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가 결코 작지도, 드물게 일어나지도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주제를 선정할 때는 ‘시의성’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최근에 일어난 일이거나 혹은 진행 중인 우리 사회의 핫한 이슈에 대한 언론 보도를 우선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다. 시의성이 다소 지났더라도 우리나라 언론의 이른바 ‘흑역사’ 또는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할 이슈,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슈가 있다면 이를 다시 비평해 시청자들에게 전하기도 한다. 큼직한 토크 주제 외에도 패널들의 비평적 대화에 더해, 사회 이슈의 본질을 왜곡하는 ‘오보성 기사’에 대한 현장 추적을 취재 기자들이 진행한다. 주요 이슈 또는 인물을 직접 초대해 의견을 들어보는 것도 주제 선정 과정에서의 주요 고려사항이다.
주제 선정 이후에는 내용에 있어 <저널리즘 토크쇼 J>가 가지는 방향성이 반영된다. KBS는 오랜 시간 언론의 전문적 시각과 가치 판단을 배제한 채 기계적 중립을 추구해 왔다. 공영방송의 지위에 따라 ‘국민의 다양한 의견과 요구를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얽매여 있었다. KBS가 취재하고 판단해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양쪽의 의견을 모두 소개하고, 판단을 국민에게 맡기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질적·양적·기계적 균형을 통해 외부로부터 오는 비판과 논란을 피하고자 했던 면피 의식도 작용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저널리즘 토크쇼 J> 제작진은 고착화된 KBS의 관행을 깨고자 했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찬성과 반대라는 이슈별 프레임에서 벗어나며, 기계적 중립으로 판단을 시청자에게 맡기기보다는 취재와 비평을 거쳐 사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언론 보도에 어떤 내용이 담기는 것이 옳은지, 어떤 보도가 잘못된 것인지, 누가, 어떻게, 무엇을 왜곡하고 있는지 분명히 짚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해당 매체나 기자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고, 프로그램의 비평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시청자층에서도 비판이 나온다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이런 방향성에 대해 지금까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지지하는 목소리가 훨씬 크다.
“언론은 서로를 비판하지 않는다는 카르텔을 통해 해자를 만들어 스스로를 성역으로 보호해왔다. 돈과 권력에 지배당하거나 혹은 자발적 굴종을 통한 선택적 정의의 태도를 숨겨왔던 것도 그 카르텔을 통해 가능했다. <저널리즘 토크쇼 J>가 언론이라는 성역의 해자를 건너려는 첫발을 뗀 것이다.” - 2018.07.02. 미디어스 ‘<저널리즘 토크쇼 J>를 계속 지켜볼 이유’ |
촌스럽지 않게, 기자도 할 수 있다
현재 <저널리즘 토크쇼 J>는 매주 수요일 오후에 스튜디오 녹화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정세진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고, 고정 패널로 정준희 교수, 팟캐스트 진행자 최욱, 독일 기자 안톤 숄츠가 출연한다. 그리고 주제별로 특별 초대되는 전문가 패널과 J 소속 취재기자가 녹화에 참여한다. 미디어비평 내용만으로 계속할 수 있을까 했던 당초 우려와 달리 20회가 넘어가면서 이제는 패널 간에 역할 분담이 되고, 전문적 내용과 웃음을 끌어낼 수 있는 예능적 요소가 어느 정도 화학적 결합까지 이루어내고 있다. 처음 목표했던 새롭고 지루하지 않은, 재밌게 볼 수 있으면서도 전문적 내용을 다루는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모습들을 갖춰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송 콘텐츠의 완성에는 주제 선정과 취재, 녹화만큼이나 포스트-프로덕션 작업, 후작업에 대한 공이 절대적이다. 본방송이 일요일 밤 10시 반에 방송되는데, 수요일 녹화 후 일요일 방송 직전까지 치열한 후작업이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3∼4시간의 긴 녹화 분량을 50분이라는 시간 안에 압축적으로 녹여낸다. 열 대가 넘는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들이 화면 편집 과정을 거치고, 이해와 재미를 더하는 그래픽과 자막, 음악이 덧입혀진다. 취재 기자와 작가는 물론, 후작업에 참여하는 다양한 제작인력들이 밤새우며 작업에 몰두한다. 방송에서 모습을 비추는 진행자와 패널, 기자 외에도 20명이 넘는 인력들이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 그래서 <저널리즘 토크쇼 J>의 엔딩 크레딧은 함께하는 제작진의 모습으로 채워진다.
이 덕분에 외부에서는 <저널리즘 토크쇼 J>를 기자들이 만든 프로그램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형식 면에서는 예능적 편집·제작 기법을 도입한 토크쇼이고, 내용 면에서는 시사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시사 PD 제작 프로그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 기자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딱딱하고 심심하며, 지루하고 뻣뻣하다는 편견을 깨나가고 있다는 점도 <저널리즘 토크쇼 J> 제작진에게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디지털 플랫폼 통한 송출로 화제성 UP
<저널리즘 토크쇼 J>의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디지털 콘텐츠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프로그램의 론칭부터 <저널리즘 토크쇼 J>는 방송과 디지털 플랫폼의 동시 송출을 고려한 멀티 퍼블리싱 개념을 도입했다. 이 때문에 론칭 당시 보도자료에서도 디지털 콘텐츠 부분을 아래와 같이 크게 강조했다.
공중파 방송과 디지털 플랫폼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본격 멀티 플랫폼 콘텐츠의 동시 배포, 즉 듀얼 퍼블리싱을 통해 플랫폼을 넘나들면서 KBS-1TV 주요 시청자층은 물론 SNS로 프로그램을 보는 젊은 시청자들도 즐겨 보는 실험적인 유통방식도 본격 시도한다. 반응이좋은 코너는 플랫폼에 맞는 다양한 영상을 제작해 퍼트릴 예정이다. |
<저널리즘 토크쇼 J>는 특히, 최근 트렌드인 유튜브에 집중했다. 본방송 외에도 예고 영상, 본방송 내용을 짧게 요약한 영상, 반대로 본방송 내용을 압축하기 전 무삭제 영상, 핵심 부분만 골라낸 영상, 뒷이야기를 담은 비하인드 영상, 그리고 본방송과는 다른 내용과 형식으로 실시간 진행하는 <J라이브> 방송 등을 디지털 전용 콘텐츠로 제공했다. 이 같은 노력 속에 <저널리즘 토크쇼 J>는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를 모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프로그램과 관련된 다양한 게시물이 업로드되며, 이른바 ‘짤방’이 생성되기도 한다. 시사 프로그램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 토크쇼 J> 유튜브 영상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 클립은 21만 뷰(2018년 11월 20일 기준)를 넘어섰다.
특히, 듀얼 퍼블리싱을 실현한 <J라이브>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본방송 외에 별도의 노력과 시간,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J라이브>가 무사히 자리를 잡으면서 본방송을 포함한 프로그램 전체가 연착륙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J라이브>는 누적 조회수 1회 8만 뷰, 2회 4만 5천 뷰, 3회 6만 3천 뷰, 4회 7만 7천 뷰, 5회는 4만 2천 뷰(2018년 11월 20일 기준)를 기록하며, 시청자와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노력의 바탕에는 방송 채널에만 머물러서는 미래가 없다는 <저널리즘 토크쇼 J> 김대영 팀장의 강한 의지가 깔려있다. 멀티 플랫폼 시대를 맞이하였으므로 단순히 지상파 고정 시청자층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더 이상 TV 보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제작진이 시청자를 찾아가는 방송, 시청자 영역을 확장하고 개발하는 방송을 지향하고 있다. 그 결과 지상파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특히 KBS 방송 프로그램 중에서는 눈에 띄는 인터넷 지표상 성과를 도출해냈고, 앞으로 더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예고&티저, 본방 풀영상을 비롯해 본방을 2분으로 요약한 ‘J훅’, 방송 뒷이야기를 다룬
‘비하인드 J’ 등 다양한 콘텐츠를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있다. <사진 출처: ‘저널리즘 토크쇼 J’ 공식 유튜브>
미디어 생존의 길은 카르텔이 아닌 감시와 견제
다매체 시대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TV 앞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유롭게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방송을 즐기고, 심지어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다매체를 넘어 이제 개인 미디어가 시청자들의 가장 주요한 콘텐츠 소비 창구가 됐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저널리즘 토크쇼 J>의 가장 큰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폐지됐던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부활, 그리고 그것을 통한 언론 권력의 감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언론 사이의 암묵적 카르텔 형성과 이를 통한 권력화. 이것을 언론이 서로 감시하고 견제하지 않고서 더 이상 수용자들은 언론과 미디어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생존이 걸린 일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이러한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선의를 바탕으로 언론에 대한 비평과 비판을 가감 없이 그리고 거침없이 담아낼 것이다. 또한, 규모와 체계를 갖춘 기성 언론에서 출발한 만큼 더 양질의 콘텐츠와 깊이 있는 문제의식, 바람직한 시선을 수용자들에게 제공할 것이다. <저널리즘 토크쇼 J>는 론칭한 지 이제 5개월 남짓 지나 막 걸음마를 뗀 프로그램이다. 더 가다듬고 발전해 우리 사회 미디어 지형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으로 남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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