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5. 18:11ㆍ특집
혐오표현 대응 가이드라인(안)과 미디어교육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확산되는 혐오표현은 빠르고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특히 더 유해하다. 따라서 미디어교육에서는
미디어와 언론의 전파력과 파급력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혐오표현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겠다.
글 이은진 (서울 발산초 교사)
“여러분, 여가 시간에 주로 뭐해요?”
“유튜브 봐요!”
학생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스마트폰이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가 시간의 활용으로 유튜브 시청을 제일 먼저 꼽았다.
“그러면 유튜브에서 여러분이 주로 보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이 갑자기 입을 다물고, 대답을 꺼려 한다. 서로 눈치만 보던 중, 한 아이가 용기 내어 대답한다.
“선생님, 모르는 게 나아요. 알면 귀 썩어요!” 아이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지는 않았지만, 이미 서로 짐작하고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학생들이 접하는 유튜브나 1인 인터넷 방송의 내용 중 상당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표현으로 뒤범벅된 것들이 많다.
학생들은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는 혐오표현들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저 ‘재미’로 보고 ‘유행어’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미디어교육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교육적 접근과
혐오표현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인권위, 가이드라인(안) 발표
혐오표현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평등의 정신과 인권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특히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혐오표현은 학생들의 건강한 인격 성장을 방해하며, 안전하고 포용적인 교육 환경을 조성함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된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자신들이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이런 표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학생들도 이미 그런 표현들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재미’로 본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 들은 표현을 일종의 ‘유행어’처럼 사용한다. 소수자 당사자에게 직접 사용하지 않고, 그저 재미있으니까 유행어로 사용할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미디어교육에서 혐오표현에 대한 교육적 접근과 혐오표현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올해 초, 공공기관, 초·중·등학교, 대학, 언론 등의 영역에서 적용해볼 수 있는 ‘혐오표현 예방 및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한 바 있다. 가이드라인은 ①문제 현황, ②가이드라인의 목적, ③법적 근거, ④적용 범위, ⑤혐오표현의 개념과 판단 기준, ⑥구성원의 책임과 역할, ⑦예방, ⑧사건 처리 원칙과 절차, ⑨검토 이렇게 9개의 내용 요소로 구성된다.
이 중, ①문제 현황 ②가이드라인의 목적은 오늘날 혐오표현 확산에 따른 해악과 문제점을 밝히고, 혐오표현 예방과 대응의 필요성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혐오표현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의 이 부분은 미디어교육에서 혐오표현을 다뤄야 할 필요성과 교육의 목표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기성 언론과 1인미디어 등은 혐오표현을 확산시키는 부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반대로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차별과 혐오표현의 해악과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인식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 동시에 혐오표현에 대한 대항표현1)을 구성하고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미디어교육은 혐오표현에 의해 왜곡된 미디어와 언론을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며, 동시에 대항표현의 개념을 알고 실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혐오표현이 ‘표현의 자유’?
③법적 근거, ⑤혐오표현의 개념과 판단 기준은 세계인권선언 및 각종 인권 규약, 헌법 등에 근거해 혐오표현의 개념과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혐오표현은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인종,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이나 집단에게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표출하거나, 멸시·모욕·위협하는 행위, 혹은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선동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한다. 다만 가이드라인에서는 구체적인 특정 낱말이나 표현을 혐오표현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으며, 특정 표현이 발화되고 사용되는 맥락 속에서 혐오표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혐오표현은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향해 수치심과 모욕감, 두려움을 야기하고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어떤 말과 표현이 혐오표현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어떤 말과 표현이 사용됐는지를 넘어 발화자의 의도, 발화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관계, 표적집단(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파급력과 전파력, 지속성과 반복성 여부 등을 고려해 혐오표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전파되고 확산되는 혐오표현은 빠르고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특히 더 유해하다. 따라서 미디어교육에서는 미디어와 언론의 전파력과 파급력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혐오표현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겠다.
가이드라인의 나머지 부분, ④적용 범위, ⑥구성원의 책임과 역할, ⑦예방, ⑧사건 처리 원칙과 절차 부분에서는 각 기관별 구성원 전체가 혐오표현의 예방과 대응에 있어 일정한 책임과 역할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나 이용자들이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오해하여 방치하지 않아야 하며, 혐오표현 예방과 대응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긴다.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고 있는 예방과 사건 처리 원칙 등을 바탕으로 미디어에 나타난 혐오표현을 대항표현으로 바꿔보거나, 혐오표현 대응 캠페인을 기획해 실행해보는 방식으로 미디어교육과 접목시킬 수 있다. 이 외에도 언론과 미디어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묘사할 때의 적절한 표현 방식에 관해 함께 논의해보는 것 역시, 미디어교육의 좋은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점점 심해지는 미디어에서의 혐오표현
‘혐오표현 예방 및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법률적 구속력이나 강제력을 갖지는 않지만,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문화와 인식 제고를 기대하는 자율 규제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2016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2) 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94%, 여성의 83%, 장애인의 79%가 온라인 및 미디어에서 혐오표현의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혐오표현 시정 요구가 이루어진 건수가 2013년 622건에서 2016년에는 1,359건으로 급속하게 증가3) 하는 등, 온라인·언론·미디어에서의 혐오표현 문제는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교육은 혐오표현 예방과 대응을 핵심적인 교육 의제로 삼고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으며, 이 과정에 ‘혐오표현 예방 및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혐오표현을 주제로 한 미디어교육에 상당 부분 지침이자 기준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혐오표현 예방 및 대응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내용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혐오표현에 문제의식을 갖고 충분히 논의하고 자율적인 규제 방식을 결정하고 규범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야말로 혐오표현을 가장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에서 소개한 혐오표현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단순히 복사하기보다는 정보를 생산하고 이용하는 입장에서 자체적으로 혐오표현을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볼 때, 혐오표현과 관련한 가장 이상적인 미디어교육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대항표현이란 혐오표현에 대해 ‘표현으로서 맞대응함으로써 혐오표현을 무력화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에 대한 혐오표현 발화 중 하나인 ‘특수학교 out’에 대해 ‘장애인의 교육권을 보장하라’는
표현으로 맞서는 것이다. 이런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의 피해자인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자력화(empowerment)’될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혐오표현 발화자를 고립시킴으로써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2. 홍성수 외 (2016).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 방안 연구》, 96~100쪽. 소수점 이하는 버림하여 나타내었다.
3. 조소영 외 (2016). 《인터넷에서의 혐오표현 (hate speech) 규제 개선 방안 연구》, 90~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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