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10. 09:25ㆍ수업 현장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혁신안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고? 초중고의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은 청소년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 함양이 목표인 반면, 대학생, 특히 커뮤니케이션 전공자를 위한 수업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혁신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서울의 한 대학에 신설된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속으로 들어가 본다.
글 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수강생들이 동의한 리터러시 교육 개혁 방향은 ‘강의가 아닌 활동을 통한 깨달음’이었다.
즉 학생들 스스로 이용, 활용, 제작을 체험해 보고 문제점을 스스로 깨달아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사항들을 도출해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열리면서 시공간 제약이 완화되고 방대한 양의 정보가 쏟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콘텐츠를 소비만 했던 일반인들이 생산과 유통을 담당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의 일상은 디지털 기기, 기술, 그리고 콘텐츠와 분리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런 이유에서 교육 현장에서도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초·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을 학습의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관심이 높은 반면, 대학에서는 청소년 혹은 일반 성인들을 상대로 강의를 담당할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에 관심이 높다.
전공과목 ‘미디어 리터러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2019년 1학기에 전공 선택과목 ‘미디어 리터러시’를 신설했다. 학생들은 매주 특정 주제에 맞춰 국내·외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교육 방법에 대한 보고서와 도서를 각자 먼저 읽은 뒤, 강의실에서 이에 대해 분임토론을 하고 이 결과를 전체 학생들에게 발표했다. 이렇게 분임토론 그리고 전체토론의 두 과정을 매주 반복하면서 학생들은 현재 운영 중인 교육 방법의 문제와 한계를 인식하게 됐다. 또 획기적인 변화를 주지 않는 한 청소년들에게 리터러시 교육의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동의한 리터러시 교육 개혁 방향은 ‘강의가 아닌 활동을 통한 깨달음’이었다. 즉 학생들 스스로 이용, 활용, 제작을 체험해 보고 이 과정에서 문제점을 스스로 깨달아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사항을 도출해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미디어 리터러시 활동 교육 과정의 세 가지 기준이 마련됐다.
첫째,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조작된 환경이라 인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실제 뉴스 소비 환경과 유사해야 한다.
셋째, 재미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러한 세부 기준에 맞춰 4~5명으로 구성된 4개 조에서 총 8개의 실천 활동을 제시했다. 이 중에는 3일에 걸친 캠프 활동도 있었고, 지역의 여러 학교가 연합해서 진행하는 활동도 있었지만 다수는 학급 단위로 진행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이 가운데 두 가지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와 의견에 둘러싸이게 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 현상을 경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기 위한 활동이다. 두 번째는 정보와 뉴스의 올바른 선택 기준을 갖도록 유도하는 활동이다.
◆교육안1: 어떤 영화 좋아해? (보드게임 ‘루미큐브’ 응용)
(1) 수업목표
최근의 콘텐츠 제공 인터넷(OTT) 서비스는 이용자들의 행동 기반 데이터를 분석하여 맞춤형 콘텐츠들을 제공한다. 자신이 시청한 콘텐츠들을 바탕으로 큐레이팅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장르의 작품을 추천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외의 다른 작품들은 추천받기 어렵다는 문제점 역시 존재한다. 이런 문제가 심화되면 확증편향은 물론 필터버블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도록 보드게임 ‘루미큐브’를 응용한 활동을 기획했다. 이 게임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현재 자신에게 제공되는 콘텐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 방향으로 치우치게 됨을 인지하고, 나아가 콘텐츠 선택의 폭을 넓혀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도록 스스로 노력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2) 준비물
10가지 장르 영화 제목이 적힌 루미큐브 조각 120개(장르: 액션, 애니메이션, 코미디, 범죄, 다큐멘터리, 판타지, 누아르(noir), 스릴러, SF, 로맨스)
(3) 활동 과정
1) 루미큐브 조각이 모두 앞면을 향하고 있는 상태에서,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가 적힌 큐브 12조각씩을 가져간다. 이때 게임의 규칙을 알려주지 않는다.
2) 모든 참가자가 조각을 가져가면 규칙을 알려준다. 루미큐브처럼 조각을 내려놓되, 서로 다른 장르 조각 3개 이상만 한꺼번에 내려놓을 수 있으며, 이런 패가 없으면 자기 차례를 패스한다. 시간이 지나도 게임이 끝나지 않으면 장르가 다른 2가지를 한꺼번에 내려놓을 수 있도록 규칙을 완화한다.
3) 가지고 있던 모든 조각을 제일 먼저 내려놓은 참가자가 승리한다.
4) 승리한 학생의 영화 선택 기준과 가장 늦게 조각을 소진한 학생의 선택 기준을 비교해본다. 다양한 장르를 시청하면 생길 수 있는 결과와, 한 장르만 봤을 때 생길 수 있는 결과에 관해 이야기해 본다.
5) 진행자(강의자)가 경기 결과를 필터버블 현상과 연관시켜 설명한다.
6) 게임 내용과 연관시켜 필터버블 현상의 문제점에 관해 토론해 본다.
7) 영화 외 다른 어떤 장르에서 필터버블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교육안2: 어떤 뉴스 좋아해? (뉴스 구독 여권 만들기 활동)
(1) 수업목표
이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정보와 뉴스를 소비할 때 각자의 선택 기준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인터넷과 모바일 미디어의 홍수 속에 사람들은 정보와 뉴스가 범람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기준으로 정보와 뉴스를 선별하고 이 중 일부만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떤 기준에 따르는지 본인조차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뉴스를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 가짜 뉴스와 같은 잘못된 정보가 선택되고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청소년들이 스스로 평소 어떤 기준으로 정보와 뉴스를 선택하는지 돌아보고 자신만의 올바른 선택 기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기획됐다. 구체적으로 해외여행 시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기 위한 서류 역할을 하는 여권처럼 자신이 어떤 뉴스를 읽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뉴스 구독 여권’을 만드는 놀이 형식의 활동이다. 실제로 여권에는 다른 나라의 이민국 직원이 입국을 허락할지 말지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뉴스 구독 여권에는 [그림]처럼 자신이 뉴스를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 정보가 무엇인지를 기록할 수 있다. 이 활동을 통해 참가자들이 정보·뉴스를 선택하고 전달하는 기준의 중요성을 스스로 인식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이 활동에서는 페이스북 피드 형식으로 뉴스를 제공하는데, 청소년의 경우 모바일 미디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며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는 것에 익숙하다는 점을 반영했다.
(2) 준비물
모조 여권(뉴스 구독 여권), 스마트폰 또는 태블릿 PC
(3) 활동 과정
1) 같은 주제를 가진 뉴스 콘텐츠를 페이스북 피드 형식으로 제공한다. 각 뉴스는 게시자, 제목, 썸네일, 게시글 본문, 좋아요 개수, 댓글 수, 출처에 차이를 둔다.
2) 참가자들은 위의 뉴스 콘텐츠 중 자신이 읽고 싶은 뉴스를 하나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콘텐츠에 대한 뉴스 구독 여권을 만들어본다.
3) 각자 자신이 선택한 뉴스를 보면서 자신의 선택 기준을 뉴스 구독 여권에 기록한다.
4) 다른 참가자들과 서로 여권을 비교해보며 각자의 뉴스 선택 기준의 적절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5) 각자의 기준에 따라 선택된 뉴스들에 어떤 문제점이 있을지 이야기해 본다.
6) 진행자(강의자)가 허위 정보의 특징을 설명한다.
7) 두 명씩 짝을 지어 각각 상대의 여권에 적힌 기준을 따를 때 허위 정보를 잘 걸러낼 수 있을지 진단하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를 상대방에게 설명한다.
8) 뉴스 이외 정보 콘텐츠의 진위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본다.
수업 참여 유도 중요
불과 1~3년 전까지도 고등학교를 다녀 그때의 기억을 대부분 잘 기억하고 있는 대학생들과 함께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청소년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관해 토의하고, 또 그들의 교육 기획안을 보면서 가르쳤다기보다는 많이 배웠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에게 교육 효과를 이끌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참여 유도’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보다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은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핵심 동력이 ‘재미’라는 점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많은 연구 논문과 보고서의 주제는 교육의 내용과 교육 결과의 측정 방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관심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이번 수업은 더 나은 교육 효과는 더 나은 방법에서 나오고, 더 나은 방법은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함께 머리를 맞댈 때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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