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1. 16:13ㆍ수업 현장
학생들이 원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Ⅱ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빈번한 요즘, 어린 학생들도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자신이 올린 사진이 악용되지나 않을까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때문에 온라인에서 개인정보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출되는지 정확히
아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명 ‘디지털 발자국’을 주제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본다.
글 박미영 (한국NIE협회 대표)
지난 봄, 학생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수업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물어봤습니다. “Whaaaaaaaaaaaaat?” 아마 스티브 잡스라면 이렇게 소리쳤겠죠. “소비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이유로 아이팟, 아이폰 등을 출시할 때 소비자 조사를 한 적이 없다는 ‘혁신가 잡스’이니까요. 그래도 학생들에게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학생들은 제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었죠. ‘우클스샷 방지법, 모자이크 하는 법, 초동법’1) 등을 배우고 싶다고요. 일부는 이미 수업한 내용이었고, 일부는 학생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빨간 창에서 ‘How to~?’로 검색하면 다른 디지털 원주민이 업로드 한 수십 개의 동영상이 친절하게 설명해 줄 테니까요.
곳곳에 흔적 남기는 개인정보
조금 다른 각도로 살펴보다가 요구사항 중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약간의 두려움’이었습니다. 누가 ‘내’ 자료를 퍼 가면 어쩌나, ‘내’ 사진을 악용하면 어쩌나, ‘내’ 지문을 도용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래서 ‘내 정보’ 관련 수업을 계획했습니다. 학생들은 “창체시간에 개인정보 어쩌구 이런 걸 배우긴 하는데, 아는 내용이어서 자는 애들이 많다”2) 고 답했으나, 실제로는 온라인에서 내 개인정보가 언제 만들어지는지, 어디로 유출되는지 모르는 듯 보였거든요. 그래서 초중고 학생들과 동일한 주제로 다음과 같이 또 한 번 별도의 수업을 계획했습니다.
[표1] 학생들이 원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Ⅱ
◆초등 수업
∙소중한 내 정보
후다닥, 우당탕 쿵쾅. 교실에 들어가니 남학생 두 명이 책상 사이를 빠져나가며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자기 뒷모습 사진을 찍었으니 지우라는 학생, 찍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안 찍었다는 학생. 얼마나 뛰었던지 에어컨 나오는 교실에서 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우선 핸드폰 확인을 했습니다. 사진은 없었습니다. 둘을 앉혀놓고 질문했죠. “왜 허락 없이 사진을 찍으면 안 되지?” 옆의 친구들이 더 큰소리로 답했습니다. “초상권 침해죠.”, “개인정보잖아요.”
마침 오늘 주제와 연관됐기에 그 자리에서 수업으로 넘어갔습니다. “무엇이 개인정보인지 말해볼까?”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이름, 나이, 집 주소…” 등을 암기하듯 말했습니다. “개인정보는 왜 중요하지?”, “몸무게 알려지면 창피하니까요.”, “키가 더 창피해!”, “이름이나 집 주소 알려지면 범죄에 악용돼요.”[사진1]
∙탐정놀이
PPT 화면을 띄우고 탐정놀이를 했습니다.[사진2]. 발자국 주인공의 행동을 추측해봤죠.
“범인(?)은 팥빙수 가게, 화장품 가게, 노래방에 갔어요.”
“빵가게 앞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들어가지 않았어요.”
“범인은 화장품에 관심이 있어요.”
“범인은 책읽기엔 관심이 없어요.”
“그것을 어떻게 알았지?”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발자국이오!”
“그럼 발자국도 개인정보일까?”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고민했습니다.
∙내가 만드는 발자국은?
“발자국이 언제 생기지?”
“비 오는 날이오. 엘리베이터에 신발자국이 생겨요.”, “샤워하고 발 안 닦은 채로 거실에 가면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 맞아요. 마루에 물발자국 생긴다고.”
눈에 보이는 발자국 말고 온라인에서도 발자국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인터넷에 발자국을 만들어요? 아빠 폰을 밟으면 깨질걸요?” 저학년 학생이 말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내가 검색한 것, 내가 올린 사진, 다운 받은 영상, 방문한 곳…등이 나의 발자국이라고 설명했죠. 탐정이 발자국을 보며 사람의 행동을 추측하듯, 누군가는 온라인에서 내가 만든 발자국을 보며 나의 행동을 추측할 수 있다고 설명하자 학생들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평소 온라인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묻는 질문에 학생들은 예상을 벗어난 답변을 했습니다. 수업에 참여한 대다수의 학생들은 ‘엄마 앞에서만’ 잠깐씩 검색이나 게임을 한다고 답한 것이죠. 평소에 무엇을 검색하지? “그림 그리려고 캐릭터 검색해요.”, “숙제 할 때 검색해요.”, “근데 제가 검색한 기록이 다 남아요? 진짜요?”
“유튜브 영상은 뭘 보는데?”
“엄마가 안 보여줘요.”, “쌤, 전 게임만 해요. 하루 30분인데 너무 짧아요.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시간 좀 늘려달라고 해주세요, 네?!”
“아이쿠야, 내가 니네 엄마한테 왜 전화를 해.”
∙엄마 아빠, 조심하세요
“전 폴더폰이어서 톡방에 사진 올리는 것 못해요.”
“근데 쌤, 사진은 내가 아니라 엄마가 올리는데요? 이번 방학 때 계곡에 갔던 사진도 엄마가 올렸어요.”
“내가 잠자는 사진도 막 올리고, 남친에게 고백 받았다는 얘기까지 ㅠㅠ.”
“쌤~ 온라인에서 발자국 조심해야 한다는 거요, 그 얘기 엄마한테 해주셔야 돼요.”
“맞아요, 우리보다 엄마가 별별 것을 다 올리니까요.”
“자녀 일상을 SNS에 공유하는 셰어런팅(Sharenting)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야. 부모님이 자녀 자랑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거든. 부모님께 편지를 써볼까? 내 정보를 조심해서 올려달라고?”
학생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편지를 썼습니다[사진3].
“얘들아, 온라인에서 우리가 찍은 발자국도 개인정보일까?”
“네!!!! 키나 몸무게보다 더 중요한 개인정보인 것 같아요.”, “아무데나 발자국 찍으면 안 되겠어요.”, “그래도 난 토론 주제 검색했으니까, 사람들이 공부 열심히 한다고 생각할거야 ㅎㅎ”
◆중등 수업
∙내가 찍은 디지털 발자국
활발하게 SNS 활동을 하는 중학생들은 스스로 남긴 디지털 발자국이 수집된다는 사실에 긴장했습니다. 먼저 ‘요즘 내가 남긴 디지털 발자국이 무엇인지, 내 디지털 발자국이 나에 대한 어떤 정보를 제공하는지’ 생각했죠.
‘유튜브에서 피아노 연주 영상에 좋아요 누른 것→피아노 연주를 좋아한다.’, ‘청원에 동의한 것→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한다.’, ‘친구 생일선물로 기프티콘 보낸 것→친구와 원만하게 지낸다.’, ‘책 리뷰 검색한 것→그 책을 구입할 의사가 있고, 충동구매 하지 않는 성격이다’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사진4].
∙디지털 발자국이 실감날 때
인터넷 쇼핑몰에서 공주풍의 원피스를 딱 한 번 구경했을 뿐인데 몇 개월 후까지 시도 때도 없이 그 원피스 팝업창이 뜨는 경험을 했습니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우리들의 흔적이 더 잘 기록, 수집, 축적, 보존되기 때문입니다.
“얘들아 ‘내 디지털 발자국이 수집된다는 것’을 언제 실감했지?”라는 질문과 함께, 공주풍 원피스 얘기를 해줬더니 학생들은 너도나도 자기의 경험을 말했습니다.
“어쩐지, 유튜브에서 게임 영상 하나를 봤는데, 계속 그 게임채널 영상이 추천으로 떴어요.”
“친구가 방탄 아미여서 모이기만 하면 방탄 얘기를 하거든요. 빌보드에서 1위를 했다기에 신기해서 유튜브로 영상을 한 번 찾아봤어요. 근데 아직도 맞춤 동영상에 방탄이 리스트업 돼요. 전 방탄한테 별 감정 없는데.”
“정보 유출 때문에 검색도 못 하겠네요.”[사진5].
∙뉴스 속 디지털 발자국을 찾아서
뉴스에서 디지털 발자국을 찾기 위해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호날두 노쇼’ 기사를 보여줬습니다. 학생들은 호날두가 SNS에 올렸다는 ‘런닝 머신 짤’, ‘여친 사진’ 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사회 쌤님도 경기장 가셨대요. 표가 14만 원인데 호날두가 안 뛰어서 화나셨대요.”
“근육이 안 풀려서 경기 못했으면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SNS에 사진을 올렸을까요?”
“호날두가 사진을 올려서 우리가 알게 된 거잖아요.”, “호날두가 디지털 발자국을 잘못 찍은 거죠.”
호날두 입장이 되어 ‘후회되는 일’을 써봤습니다[사진6].
‘선수의 건강이 우선이니 경기 출전하지 못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디지털 발자국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은 후회한다. 내가 왜 런닝 머신 짤을 올렸지?’ 등 호날두 입장에서 후회하는 글을 쓰며, 학생들은 자신들의 발자국을 점검하는 듯 보였습니다.
수업을 마치며 학생들은 ‘내가 온라인상에서 활동할 때마다 나에 대한 데이터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등 수업
∙쿠키 부스러기를 조심해!
퀴즈입니다. ‘웹사이트에 접속할 때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임시 파일입니다. 이 파일과 연결된 인터넷 서버에는 사용자가 검색한 단어, 오래 머물렀던 사이트, 자주 구매한 쇼핑 물품, 이름, 주소, 신용카드 번호, 비밀번호, IP주소 등의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3) 이것은 무엇일까요? 답은 ‘쿠키’입니다.
학생들은 ‘쿠키’라는 말은 들어보긴 했지만 ‘쿠키’에 이렇게 많은 내 정보가 담기는지 몰랐다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쿠키가 무엇인지 모르는 초등학교 쿠.알.못 동생들에게 쿠키에 대해 설명해 주는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동생들에게 안내하는 자료여서인지 《헨젤과 그레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등 잘 알려진 동화나 그림책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습니다. 내용도 ‘정보 하나줄게, 쿠키 하나 다오’, ‘두더지에게 쿠키를 흘린 범인은 바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너!’라는 식으로 아주 쉽게 표현했습니다. 학생들은 자료 만드는 활동을 통해 ‘쿠키’에 대해 더 정확하게 인식했고, 쿠키 정보는 동생뿐 아니라 친구에게도 꼭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사진7~8]
∙빅데이터=빅 브라더?!?
내가 밟는 디지털 발자국마다 데이터 파일인 쿠키가 떨어진다니, 웹 기반 디지털 환경 어딘가에 모여 있을 나의 데이터는 얼마나 방대할까요?
①과연 빅데이터는 빅브라더(정보 독점으로 사용자를 관리, 감독, 통제하는 힘)가 될까요? 함께 생각해봤습니다. 고은이는 ‘디지털 발자국을 따라 빅브라더가 쫒아온다’며 디지털 발자국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글로 표현했습니다[사진9].
②빅데이터화 하는 디지털 발자국이 무섭다고 디지털을 떠날 순 없죠,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지 않는 한 앞으로 디지털 환경은 점점 확대될 것이니까요.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생각한다는 포노사피엔스4) 시대를 살아가는 10대에게 제시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봤습니다. 지유는 ‘좋아요 누를 때 조심할 것, 안 쓰는 어플을 지울 것, 쿠키를 삭제할 것’ 등을 제시하더군요[사진10].
③‘디지털 발자국은 oo다’의 빈칸에 알맞은 낱말을 넣어 디지털 발자국에 대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보민이는 디지털 발자국은 ‘생기부(나의 학교생활이 생기부에 적히는 것처럼 디지털 발자국에 나의 생활이 담기기 때문)’, 다현이는 ‘엎질러진 물(한 번 남긴 디지털 발자국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 채린이는 ‘퍼즐(디지털 발자국을 잘 맞춰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학생들은 디지털 발자국에 대한 이해만으로도 큰 경각심을 갖게 됐고, ‘세상~세상 유익한 주제’였다고 말했습니다.
“소비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스티브 잡스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디지털 발자국’이란 주제가 학생들이 (몰라서 미처) 요구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필요하다고 실감하는 주제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수업보고 끝!!
1) 박미영. “‘윤리적이고 안전한’ 미디어 이용법 알려주세요” 《미디어리터러시》.2019년 봄호. p35
2) 같은 책 p33
3) 네이버 지식백과(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재편집
4) 최재붕. 《포노 사피엔스》. 쌤앤파커스. 2019.
'수업 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학언론 신뢰 하락, ‘팩트체크’가 필요해 (0) | 2019.12.20 |
---|---|
BTS가 선생님, ‘SKY 캐슬’은 수업 교재 (0) | 2019.11.27 |
‘쌤튜버’를 아시나요? (0) | 2019.10.25 |
보드게임처럼 재밌으면 교육 효과도 저절로 (0) | 2019.09.10 |
현직 교사가 알려주는‘Z세대를 위한 미디어교육’ (0) | 2019.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