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만들며 ‘미디어 리터러시’ 저절로 쑥쑥

2019.10.02 10:48해외 미디어 교육

 

영국 BBC와 EBS를 통해 본 청소년 뉴스 교육

 

매주 월~금 오후 5EBS에서 방송되는 뉴스를 보다 보면 가끔씩 조금 어설픈 뉴스가 나온다.

인턴 기자인가? 신입 기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앳된 목소리, 흔들리고 불안한 영상.

빨간색 옷을 입은 고등학생이 긴장된 표정으로 스탠딩 멘트를 한다.

아이템 발제부터 취재, 촬영, 편집까지 청소년이 직접 만드는 뉴스, ‘EBS 스쿨리포트를 소개한다.

 

 한유진 (EBS 방송작가)

 

 


 

‘EBS 스쿨리포트20126월 두 개의 파일럿 방송을 거쳐 8월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시 EBS 뉴스팀은 대대적인 개편을 마치고 국내 유일의 지상파 교육 전문 뉴스로서 EBS 뉴스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빠르고 정확한 교육 소식을 전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무언가 더 필요했다. 국내외적으로 청소년헌장,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청소년의 자율성과 참여를 높여가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지속되고 있었고, 우리 뉴스도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맞는 교육뉴스의 역할을 고민하던 차였다.

 

 


 

 

청소년 제작 뉴스 모델 ‘BBC 영리포터’

 

미디어는 현대사회의 중요한 환경으로,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소통 방식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창조적 미디어 활용 능력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는 중요한 삶의 기술 중 하나가 되리라 판단해 청소년이 참여하는 뉴스를 기획했다. 처음에는 여러 기관에서 운영하듯 평범한 청소년 기자단혹은 청소년 서포터즈의 형태로 생각하기도 했으나, 뭔가 부족했다. 청소년이 조력자(support)’가 아닌 창작자(maker)’가 되기를 원했다. 한편으로는 의심도 들었다. 신입 기자들도 1년 이상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만들 수 있는 뉴스를 과연 청소년이 만들 수 있을까?

 

그때, 가능성에 확신을 준 것이 영국의 ‘BBC 영리포터(BBC Young Reporter)’였다. 전 세계 공영방송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국 BBC2007년부터 11~18세 초··고등학생, 청소년 조직 및 단체가 참여하는 이른바 스쿨리포트를 방송해왔다. 원래 명칭은 ‘BBC 스쿨리포트(BBC School Report)’였던 것을 최근 ‘BBC 영리포터로 바꾸며 학교 내 청소년이 아닌 10대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방송으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유튜브나 SNS를 통해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대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 기회가 많지 않다. BBC는 매년 독자적으로 ‘BBC 스쿨리포트 뉴스데이를 운영하며 영국 전역의 1,000개 학교, 3만 명의 청소년이 참여하는 청소년 뉴스 제작과 행사를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BBC 영리포터로 활동하는 10대들의 활약은 놀라울 정도다. 2007년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해에는 겨우 12~13세 아이들이 당시 영국의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를 인터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00여 개 정도의 학교로 시작한 ‘BBC 영리포터2010700여 개 학교, 25,000명의 청소년이 참여하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됐다. 2012년에는 영국은행 총재였던 머빈 킹(Mervyn King), 당시 교육부 장관 마이클 고브(Michael Gove)를 만나 교육 정책에 대해 취재하는 성과도 올렸다. 그 밖에도 BBC 라디오 팀과 협력하여 청소년들이 BBC 라디오 디제이가 되거나, ‘한 주 동안 소셜 미디어 없이 살아보기라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BBC 영리포터들의 활동은 폭넓고 다양해졌다. 2016년에는 창설 10주년을 맞으며 1,000여 개 학교, 3만여 명에 이르는 청소년이 ‘BBC 영리포터의 일원이 됐다. 참가 학교도 영국 내뿐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 워싱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케냐 나이로비, 인도 델리 등에서도 청소년들이 만든 리포트를 전송해오며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는 청소년 뉴스 네트워크로 변모하고 있다.

 

이렇듯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BBC 영리포터이지만, 막상 아이들이 만든 뉴스를 보면 참 어설프고 한편으로는 놀랍다. 오디오가 듣기 불편할 정도로 제대로 녹음이 안 된 영상들도 간혹 올라온다. 뉴스의 형식도 자유롭다. 최근에는 백색증을 앓고 있는 청소년이 독백으로 인터뷰하는 형식의 뉴스가 나오기도 했고, 기사의 중간이나 마지막에 나오는 기자의 스탠딩 멘트도 어른들이 하듯 딱딱하게 서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화장실에서, 방안에 누워서, 잔디밭에 앉아서 자유롭게 한다.

 

세계 최대의 공영방송 BBC영리포트를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올해 1BBC 토니 홀(Tony Hall) 사장은 직원들에게 전하는 담화문에서 새로운 세대를 위해 공영방송을 재창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BBC는 어린이, 청소년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온라인 서비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등 시청자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왔다. 청소년들의 TV 시청 시간은 감소했지만, 온라인을 통한 TV 콘텐츠 소비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2016BBC10대를 대상으로 하는 BBC 3TV 채널의 지상파 송출을 중단하고, 온라인 서비스로만 제공하는 파격적인 방송 서비스 개혁안을 추진했다. 이러한 조치는 매년 3,000만 파운드의 예산 감축 효과를 내면서도,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지킬 수 있도록 했다.

 

 

2007년 첫 활동을 시작한 ‘BBC 영리포터’는 당시 영 국 총리였던 토 니 블레어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BBC는 어린이, 청소년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온라인 서비스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등 시청자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왔다. 
청소년들의 TV 시청 시간은 감소했지만, 온라인을 통한 TV 콘텐츠 소비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평범한 학생들의 특별한 경험

 

EBS 스쿨리포터는 20121기로 시작해 최근 8기 모집을 마무리했다. 7년 동안 총 468회의 스쿨리포트가 <EBS 뉴스>를 통해 방송됐으며, 전국 680여 개 학교, 3,000여 명의 학생, 700여 명의 교사가 참여했다. 스쿨리포터들은 학교와 지역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교육 소식을 직접 취재하여 아이템을 발제하고, 촬영, 편집을 거쳐 뉴스를 만든다.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자신이 제작한 프로그램이 지상파 뉴스에 실제 방송되는 특별한 경험을 한다.

 

스쿨리포트 팀은 학교별로 학생 3~4명과 담당 교사 1인으로 이루어진다. 때에 따라서는 다른 학교와 연합팀을 구성하기도 한다. 대신 담당 교사가 학생들을 선발하여 지원하는 형식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팀을 구성하고, 선생님께 담당을 부탁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스쿨리포터로 선발된 팀은 매년 1~2회 진행되는 미디어교육 워크숍을 통해 뉴스 제작의 기초를 배우고 취재 아이템을 발제한다. 아이템이 채택되면 사전 취재를 통해 기사를 먼저 작성하고, 현장 취재를 나간다. 현장 취재 시에는 담당 PD 1인이 동행한다. 각 학교의 장비 수준이나 편집 프로그램이 달라서 안정적으로 송출할 수 있는 TV용 포맷을 만들기 위해서다. PD가 동행하긴 하지만 기본적인 촬영, 편집, 인터뷰, 내레이션 등 모든 제작 과정을 스쿨리포터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는 역할이다.

 

청소년들이 만든 뉴스는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스쿨리포트는 <EBS 뉴스>에 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국에 위치한 다양한 학교와 지역 소식을 발굴함으로써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뉴스 아이템이 풍성해졌고, 성인 기자들이 취재할 수 없는 청소년들만의 독창적인 기사를 발굴하고 보도했다. 서울 동명여고 스쿨리포터들이 만들었던 어른들만 모르는 컴싸아라(2012.10.5. 방송)”는 학교에서 화장품 소지를 금지하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아이라인을 그리는 청소년들의 위험한 화장법에 대해 보도했다. 이처럼 어른들은 알기 힘든 청소년만의 시선으로 취재한 스쿨리포트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최근 방송된 다꾸문화 열풍에 대한 리포트도 좋은 예다. 다이어리 꾸미기에 놀라울 정도로 공을 들이는 친구들을 취재해 이른바 다꾸라고 부르는 청소년들만의 문화를 소개한 것이다.

 

스쿨리포트가 방송됨에 따라 <EBS 뉴스>의 시청자 폭도 넓어졌다. 스쿨리포터들은 본인들이 만든 뉴스가 방송되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EBS 뉴스> 홍보대사가 된다. 친구와 가족들은 물론이고 학교 선생님, 교장 선생님, 먼 곳에 사는 친척들까지 연락해 뉴스 시청을 권한다. 뉴스기자와 제작진들은 스쿨리포트로 인해 뉴스 취재에 대한 매너리즘 극복과 아이디어 확장에 도움이 된다는 내부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다꾸’ 문화 열풍‥이유는?” 방송화면(경남외고 스쿨리포터 팀. 2019.6.18. 방송). <사진 출처: 필자 제공>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기본, 자신감은 덤

 

그렇다면, 스쿨리포터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어떤 경험을 얻었을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공감하며 리터러시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교육 단체나 현장은 많다. 하지만 단순히 미디어 리터러시란 무엇인지이론 전달에 그치거나 제작 실습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들에게 미래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꼭 필요한 교육, 하지만 미디어 산업에 대한 이야기, 미디어의 윤리와 법제 등을 주제로 청소년을 이해시키기는 쉽지 않다.

 

스쿨리포터들은 뉴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자연스럽게 함양했다. 적합한 취재 아이템을 발굴하기 위해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학교 내 문제, 지역 커뮤니티의 문제를 호기심으로 바라보게 됐다. 방송 뉴스 기사로 채택 받기 위해 기사를 쓰며 정보를 수집하고 선별하는 능력, 비판적 사고도 키울 수 있었다. 실제 현장에 나가 촬영을 하며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는 중립에 대해 배웠다. 촬영·편집 등 기술적인 역량 외에도 방송에 나갈 기사를 팩트체크하며 가짜 뉴스’, ‘오보에 대한 위험성을 이해했고, 취재원의 보호, 미디어 저작권에 대해 습득했다.

무엇보다 스쿨리포터들이 얻은 가장 큰 변화는 자신감이다. 고등학생일 뿐인 나도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스쿨리포터를 기획하고 1·2기 운영을 담당했던 작가로서 스쿨리포터들이 해 준 이야기 중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흡연을 하는 학생이었는데, 스쿨리포터가 되고 자신이 만든 뉴스가 방송에 나가고 나니 길이나 학교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기가 부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스쿨리포터를 하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주변에 생기는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좀 더 살펴보게 됐다. 항상 모든 일이 위축되어 있었던 나, ‘이건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을 먼저 했었는데, 이제 그런 생각보다는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앞선다. 스쿨리포터를 하면서 나의 삶이 바뀐 것 같다.” 스쿨리포터 1기 하남고 이O온.

 

 

“스쿨리포터는 나를 성장하게 해주었다. 스쿨리포터가 된 후 많은 것을 배웠고, 심지어 촬영이나 편집 등 스쿨리포터가 아니었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나에겐 제2의 학교였던 스쿨리포터를 만나 당당해지고 긍정적인 내가 됐다.” 스쿨리포터 1기 동명여고 김O현.

 

 

“말랑말랑 액체괴물, 알고 보 니 위험한 장난감” 방송화면(이대 병 설 미디어고 스쿨리포터 팀. 2017.10.3. 방송). <사진 출처: 필자 제공>

 

 

EBS 스쿨리포터 로고

 

 


 

 

‘EBS 스쿨리포트’ 운영 철학

 

미디어는 청소년의 비판적 사고력과 시민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BBC 영리포터‘EBS 스쿨리포트가 청소년 뉴스 리터러시 교육의 정답은 아니다. 실제 청소년들을 도와 방송 뉴스를 제작하게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 예산, 인력, 운영 지원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방송사나 다른 지상파 뉴스들과 비교해 예산 규모나, 인력 운용에 있어 자유롭지 못한 <EBS 뉴스>에게도 스쿨리포터 운영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고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BS 스쿨리포트는 세 가지 철학을 가지고 스쿨리포터를 운영, 유지해오고 있다.

 

첫째, 공영방송으로서의 의무다. 청소년들이 미디어를 통해 자기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맞는 민주적 참여 의식을 고양할 수 있도록 한다.

 

둘째, 미래를 이끌 청소년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미래 세대가 지녀야 할 중요한 삶의 기술 중 하나인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키워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 뉴스의 발전을 위해서다. 전국의 학교와 지역 현장에서 교육의 주체인 청소년과 교사가 전하는 뉴스보다 발 빠르고 생동감 넘치는 뉴스는 없다.

 

이제 막 EBS 스쿨리포터 8기의 여정이 시작됐다. 청소년들이 스쿨리포터가 되는 경험을 통해 미디어를 바르게 사용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리터러시 능력을 키울 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소중한 나를 찾아가는 발판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참고자료
http://www.bbc.co.uk/schoolreport/26198076
https://www.bbc.com/news/education-41001549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35578867
https://www.youtube.com/watch?v=oFxhsqFR2To&feature=youtu.be
BBC Young Reporter: “Why I’m glad I have alopecia”
김지현(2017). “실시간 TV 시청 시간 감소와 BBC의 대응”. 《신문과 방송》 2017년 8월호.
https://www.bbc.com/news/live/education-31941889
EBS 뉴스 홈페이지 news.e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