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1. 13:37ㆍ포럼
유튜브 키즈 콘텐츠와 성 불평등
예전에는 ‘초통령’ 하면 애니메이션 주인공 뽀로로나 방송인 유재석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지금은? 유튜버 ‘도티’가 새로운 초통령이다.
그만큼 많은 어린이들이 즐겨보고 사랑하는 유튜브 키즈 콘텐츠들을 젠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글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
라임: “(아기 돌보는 법)엄마한테 많이 배웠거든.”
파랑: “엄마처럼 잘 하고 있어요.”
‘유재석은 몰라도 도티는 안다’는 유튜브 세상.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라임튜브>의 한 장면이다. 라임은 콩콩이 인형한테 밥을 먹이고, 양치를 시키고, 배변을 도와주고, 재우는 역할에 충실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유튜브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10대에서 유튜브 이용자는 91.3%로 나타났다. 그만큼 미래 세대의 미디어로 인식되는 유튜브다. 그곳에서는 ‘돌봄노동’이 ‘여성-엄마의 일’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동영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한국 사회의 미래란 어떤 모습일까. 젠더 갈등 문제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유튜브 채널에 대한 진단과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돌봄·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인가?
유튜브 키즈 콘텐츠 채널에 대한 성역할 고정관념 및 외모지상주의, 성정체성, 성폭력 등 성차별 유형을 분석한 결과,1) 여러 고민 지점을 남겼다. 한 채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성차별인데…’라고 인지하기 어려운 문제적(?) 콘텐츠들도 여럿 등장했다. 사실 그런 것들이 더 위험하다.
유튜브 키즈 콘텐츠 모니터 과정에서 가장 크게 눈에 들어온 부분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비단 돌봄노동의 문제는 아니었다. '가사노동' 또한 다르지 않았다.
<서은이야기>에서 서은은 청소와 빨래하는 법을 배운다. 가르치는 주체는 엄마였다. 엄마는 서은에게 “얼룩이 있을 때에는 수도를 틀고 얼룩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등 구체적으로 가사노동의 방법들을 알려준다. 서은은 어지럽혀 있는 거실을 보고는 “누가 이렇게 해놓은 거야”라며 푸념하며 자연스럽게 청소기를 돌린다. <보람튜브>에서 보람은 할머니를 대신해 설거지를 한다. 놀이를 통해 여아들이 배우는 것은 가사노동이었다. 남자 아동들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생경한 장면이기도 했다.
‘요리=여성’의 공식도 그대로였다. <제이제이튜브>에서는 배가 고픈 이는 늘 남동생인 서준이었고 그 배고픔을 해소해주는 역할은 누나인 지우가 맡고 있었다. 혹자는 ‘나이 한 살 더 많은 사람이 챙길 수 있는 거 아니냐’고 성차별이라는 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설계다. 유튜브 영상을 찍을 때 아이들은 짜인 구성에 맞춰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같은 구성에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 배가 고픈 사람은 늘 남성이고 그것을 해소해주는 건 여성이란 말인가. 지우와 서준의 역할을 바꿀 수 있었다. 아니면, 서준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있지 않은가.
남아라고 해서 요리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위드키즈>에서 예준 역시 ‘요리’를 하는 동영상이 업로드돼 있긴 하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아빠의 생일이라는 ‘특별한 날’에 요리를 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것은 평상시에 진행되는 여성의 가사노동과 대비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례로 지우가 요리를 하는 날은 ‘특별한 날’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유튜브 채널의 색도 서로 다르다. 여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튜브 채널은 핑크색으로 가득했다. 반면, 남아의 채널은 파랑-초록색으로 확연한 구분을 보여줬다. 여아의 경우 분홍색을 비롯한 붉은 색 계열의 옷, 장난감, 장신구, 침대 등 가구들이 즐비했다. 우리나라에서 ‘핑크=여성’이라는 공식은 이렇듯 더욱 공고화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가 큰 부분이었다. 물론, 여아와 남아의 것으로 구분해 생산하고 있는 장난감 업체의 문제와도 결부되는 문제다.
여성의 몸은 누구의 것일까?
유튜브 키즈 콘텐츠에서 드러난 여아들의 ‘외모지상주의’ 또한 심각했다. <보람튜브>, <서은이야기>, <라임튜브>, <리원세상> 등 여아 유튜브 채널에서 ‘화장’은 반복되고 있었다. 이것은 ‘탈코르셋 운동’, ‘파운데이션프리 운동’ 등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 현상과도 반대 위치에 놓여 있다. 화장하는 것이 곧 “예뻐진다”라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는 콘텐츠 그리고 ‘나’가 아닌 ‘타인(=남성)’의 기준에 따른 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보람튜브>에서 보람은 거울에 앉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라고 묻는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는 만족한 모습을 보이는 보람. 하지만 삼촌에게 아름답다는 평가를 갈구하듯 “삼촌, 나 이쁘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삼촌의 “안 예뻐”라는 반응에 보람은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걸친다. 보람 본인은 만족스러운데 왜 타인의 ‘미’의 기준에 맞춰 나를 바꿔야만 하는가. <라임튜브>와 <리원세상>에서 라임과 리원은 화장을 하고 드레스를 갖춰 입고 왕자님을 만나기 위한 파티장으로 떠난다. 유튜브 속 여아들은 여전히 신데렐라를 꿈꾼다. 현실에 없는 왕자를 찾아서….
<서은이야기>에서 엄마는 서은에게 차를 따라주며 “소리 내 먹으면 안 된다”고 ‘여성스러운 행동’을 교육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헤이지니>에서 지니는 유령공주로 변신하고 나서는 “지니가 늙어보여요”라며 우는 장면을 연출한다. 늙은 것이 슬픈 것인가. 과연,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젊고 아름다운 것”으로 강요받아온 시절이 있었다. 그에 맞춰 여성들은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을 하고 젊게 꾸며 트로피로서 존재하기를 요구받아왔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그러나 유튜브 세상은 여전히 그 틀에 여아들을 가두고 있다.
가부장 사회에서 남성들 또한 ‘성차별’의 또 다른 피해자다. 유튜브 키즈 콘텐츠에서도 그대로 노출됐다. <마리앤친구들>에서 좀비로 분장한 사람을 보고 놀란 로기가 기겁을 하자 등장한 자막은 “사내녀석이… 뚝 그쳐!”였다. <보람튜브>에서 삼촌들은 ‘웃음’ 코드로 등장하고 있다. 영화 <나홀로집에> 케빈을 괴롭히는 두 명의 도둑 역할인 셈이다.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힘이 세지 못한 남성은 열등한 존재가 된다. 힘든 일이 있어도 견뎌야 하고 참아야 한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철지난 편견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가.
유튜브의 사회적 책임
유튜브는 해외 사업자이고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공적 책임에서는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이번 모니터를 진행하면서 그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최근 유명한 유튜버들의 언행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다. 공인은 아니지만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확장되고 있다.
유튜브는 또한 ‘아동·청소년의 보호’라는 명목으로 댓글 차단 및 보호자 동반 없이 실시간 방송을 제한하는 등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키즈 콘텐츠가 선정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렇지만 아쉽다. 그런 정책들이 크리에이터들 그리고 시민들과의 소통이 아닌 일방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결과는 어땠나. 웹툰 <파괴왕> 작가 주호민 씨의 댓글 차단 아닌가.2) 아동에 대한 ‘보호주의’ 담론에만 치우친 결과였다. 이제 플랫폼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보호와 표현의 자유 등 권리 사이의 적정한 선을 찾아야 한다. 그 시작은 ‘소통’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1) 언론개혁시민연대.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토론회 자료집.2019.5.15.
2) 유튜브에서는 정책상 어린이를 나쁜 목적으로 이용하려는시도를막기위해 어린이가 나오는 동영상에 댓글을 달 수 없다. 이에 평소 머리카락이 없던 웹툰 작가 주호민 씨를 유튜브에서 어린이로 인식하여 그의 채널 댓글기능을 차단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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