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22. 09:10ㆍ포럼
세이브더칠드런 포럼 - ‘뉴키즈 온 유튜브’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순위가 ‘유튜버’이고, 초등학생들이 검색할 때 네이버의 녹색창보다
유튜브 동영상을 더 선호한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의 세상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더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아동들의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세이브더칠드런’이 아동·청소년의 디지털 미디어 이용과 관련해 포럼을 개최한 배경이기도 하다.
글 고우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1팀)
아동복지법상 ‘아동’은 만 18세 미만으로, 2019년 기준 2001년 이후 태어난 사람들이다. 2001년이면 싸이월드가 미니홈피 서비스를 시작한 해다. 그러니까 요즘 아이들에게 온라인 세상이란 태어날 때부터 있던 디폴트 값이다. 언론 단체도 아니고 IT 교육 단체도 아닌 아동 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디지털 미디어 포럼을 꾸린 이유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사명 중 하나가 ‘세상이 아동을 대하는 방식에 획기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인데 더 이상 세상은 오프라인으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정받고 싶은 아이들
10월 18일 아동·청소년의 미디어 이용에 대한 포럼 ‘뉴 키즈 온 유튜브’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타가 된 10대 소년을 다룬 다큐멘터리 상영으로 시작했다. 요즘 아이들이 디지털 미디어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지, 그 갈증을 미디어 산업은 어떻게 이용하는지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큐 <좋아요, 스타>는 또래로부터 환영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미디어 산업에서 어떻게 착취되는지 잘 보여주었다.
이어서 ‘랩하는 교사’, ‘유튜버 교사’로 유명한 달지쌤 이현지 교사(경기 광명 충현초)의 랩 공연이 무대 위에 올랐다.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아/ 잔소리로 들릴 걸 알아/ 마치 나 어릴 적 선생님께서 / 해주셨던 말처럼 말이야.”라는 랩가사처럼 유튜브라는 채널을 통해 어떻게 초등학교 교사와 아이들이 뜨겁게 소통할 수 있는지 보여준 랩 공연이었다. 또 유해 콘텐츠가 유튜브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겁을 먹은 어른들의 마음에 채워진 빗장을 허무는 순간이기도 했다.
본격적인 포럼이 시작됐다. 발제는 ‘초등학생 유튜브 문화와 교육적 대응’(2018) 연구를 진행한 경기도교육연구원의 김아미 부연구위원과 《유튜브 쫌 하는 10대》(2019)의 저자이자 언론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의 금준경 기자가 맡았다. 김아미 부연구위원은 “아이들은 유튜브를 재미와 소통의 매체, 배움의 공간만이 아닌, 정체성을 구현하고 실험하는 자리로 인식”하고 있으며, “괜찮으면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괜찮은 것 이상으로 좋으면 댓글을 남기고, 정말 정말 좋다면 그 채널을 구독”하는 등 나름의 문화 규범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아이들은 온라인 활동에서 자신을 얼마나 드러낼 것인지 고민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친구들 사이의 평판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금준경 기자는 아이들이 디지털 미디어에서 위험에 대처하는 문제도 언급했다. 아이들이 나름대로의 위험 대처법을 익혀가고는 있으나 모든 아이들이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유튜브를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에서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고 있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말할 수 있고, 그것을 함께 성찰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금 기자는 강조했다.
금준경 기자는 기존 미디어가 수용하지 않던 어린이, 장애인, 노인 등 다양한 사람의 목소리가 유튜브에서는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심의 절차 없이 누구나 콘텐츠를 올릴 수 있기에 허위정보와 혐오표현, 자극적인 콘텐츠가 추천 알고리즘과 맞물려 일어나는 문제도 함께 짚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규제를 해법으로 내세우지만 거짓과 진실이, 유해와 건전이 칼처럼 재단할 수 있지 않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금 기자는 말했다. 유튜브 콘텐츠에 대한 별도 심의나 규제가 필요하기보다는 개별법으로 대응할 수 있는 부분들을 유튜브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동시에 시민들과 광고주들이 유튜브에 적극적 의견을 개진하고 압박할 것을 주문했다.
유튜브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있다
토론자로는 어린이·청소년과 미디어를 함께 만들어오거나, 어린이·청소년들이 등장하는 미디어 콘텐츠와 관련하여 발언해왔던 이들이 참여했다. ‘문제없는 스튜디오’의 이준택 PD는 기존 미디어에서 청소년 문제를 다룰 때조차 청소년들의 진짜 목소리를 듣기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청소년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의 기회를 소개했다. ‘문제없는 스튜디오’는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가 운영하는 것으로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성인의 시각에서 ‘엇나간’ 청소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어른들에게 알려지면 곤란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유튜브만으로는 청소년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딸과 함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송태민 ‘루루체체TV’ 운영자는 키즈 채널을 통해 가족과의 시간이 늘고 깊어졌다고 말했다.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가 채널 운영 목적이기 때문에 영상의 조회 수를 올릴 수 없더라도 아이들의 의지와 안전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축하공연을 했던 달지쌤 이현지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유튜브를 배운 뒤 아이들과 더 친해지고, 자연스럽게 온라인에서 지켜야 할 원칙을 교육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아이들은 집,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만큼 온라인에 머문다.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혼자 생활한다. 어른들과 만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온라인 장이 열리니 교실에서도 아이들에게 온라인 태도 교육을 할 수 있게 됐다.”
제충만 아동권리옹호 활동가는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지 않고 부모가 기획한 틀 안에서 아이들의 반응을 촬영하는 경우의 문제점을 짚었다. 즉, 평범한 놀이처럼 보이는 콘텐츠일지라도 아이의 주도성과 자발성이 결여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키즈 채널 제작 과정에는 부모와 자녀 둘밖에 없기 때문에 아동노동이 은폐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한 TV 칼럼니스트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굳이 담아내지 않아도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익을 거두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TV에서 아동의 이야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한 뒤, “성인들의 욕망만 과도하게 재현된 기존 미디어 환경이 유튜브 생태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의 문제는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기존 미디어가 갖고 있던 문제가 유튜브라는 공간에서 변종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아동친화적 디지털 환경
세이브더칠드런이 키즈 채널을 아동학대로 신고한 지 2년이 지났다. 그사이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아동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은 제법 알려진 것 같다. 그러나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고, 배우고, 참여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놀고, 사교를 맺고, 정치적 의제에 참여하고, 구직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평가한 디지털 미디어의 기회와 효용은 ‘유튜버가 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아주 단편적인 형태로만 소비되어 왔다.
‘뉴 키즈 온 유튜브’는 유해 콘텐츠를 차단하는 것을 넘어 더 넓은 시각에서 아동친화적인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고민해보려 준비한 자리였다. 아이들이 유튜브를 비롯한 디지털 미디어에서 다양한 기회를 발견하는 동시에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은 토론과 고민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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