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회복 위한 ‘공동 팩트체크센터’, 내일이면 늦으리

2020. 3. 2. 11:00포럼

‘지상파방송 뉴스 신뢰도 향상을 위한 협력 방안’ 토론회

 

지난 1023일 방송회관에서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방송기자연합회, KBS, MBC

공동 주최로 지상파방송 뉴스 신뢰도 향상을 위한 협력 방안-팩트체크 저널리즘

강화를 중심으로란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노조가 제안한

지상파 공동 팩트체크센터설립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송현준 (전국언론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기자연 합회, KBS, MBC가 공동 주최한 ‘지상파방송 뉴스 신뢰도 향상 을 위한 협력 방안 - 팩트체크 저널리즘 강화를 중심으로’ 토 론회. <사진 출처: 필자 제공>

 

 


 

 

‘지상파 공동 팩트체크센터’를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많은 정보가 생산되는 상황에서 언론의 기사 작성을 위한 ‘사실 확인’은
더욱 세밀해지고, 단단해져야 합니다. 특히,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상파는
더욱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언론사 내부의 갈등이야 늘 있어왔지만, 요즘처럼 극심한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저널리즘 원칙과 기자 업무의 본질, 그리고 책임의 한계에 대한 견해차에서 생긴 갈등이기 때문에 더욱 무겁습니다. 바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증 보도에 대한 평가를 두고, 언론사 내에 갈등을 빚고 있는 겁니다. 서초동에 모인 100만 명의 국민들이 검찰개혁에 이어 언론개혁을 외치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놓고 이젠 얘기 자체를 꺼려할 정도입니다.

54개 국내 주요 언론사가 참여하는 뉴스 분석 서비스인 빅카인즈에서 9월 한 달 동안 조국 전 장관 기사가 15,929개였으니 많은 주간지와 인터넷언론까지 포함하면 사실상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이 이른바 조국 보도를 쏟아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1) 

 

 

문제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그런데 그 수많은 기사 가운데 사실 확인이 없는 받아쓰기 기사’, ‘자세하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소문에 근거한 기사가 상당수 있었으니 많은 국민들이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각 언론사마다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포털과 SNS로 기사를 소비하는 환경에서 미디어 이용자에게 그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 차이를 느꼈더라도 일부 언론들이 의도적으로 쏟아내는 기사에 다른 언론들이 끌려가는 모양새에 큰 반감을 가진 이용자들도 많을 겁니다.

 

과연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조국 보도에 관여한 기자들과 그렇지 않은 기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있는 겁니다. 불만을 제기하는 기자들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우리 기사가 완벽하지 않은 것은 안다. 하지만, 고위공직자에게 의혹이 제기되면 당연히 보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처음 의혹이 제기됐을 때 그 근거가 명확하지 않고, 정황 근거만 있더라도 보도해오지 않았나? 매일 기사를 써야 하는 한계를 알면서, 모든 것을 확인할 시간과 인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왜 우리만 탓하나?” 정도입니다. 좀 더 거칠게 줄이자면, “지금까지 해 온 대로 했는데 왜 우리만 탓하나?”입니다.

 

하지만, 이제 지금까지 해 온 대로만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앞으로 제2조국 보도와 같은 갈등이 생길 게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시면 알 겁니다. 대한민국의 정보 유통구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엔 기자가 대한민국 정보 유통의 길목에 있었습니다. 정부와 국회·관공서·기업체 등에 접근할 수 있는 민간은 기자들이 유일했고, 자료도 기자들만이 독점했습니다. 그래서 보도자료를 거의 베껴 쓰더라도 보도자료를 볼 수 없었던 이용자들에게는 새로운 정보가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각 기관의 홈페이지마다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자료가 공개되고,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통해 관심있는 시민들은 어지간한 자료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다 더 큰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언론이 아니더라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스피커가 등장을 하게 된 거죠. 과거엔 정부의 입장만을 담은 보도자료를 근거로 기사가 작성되고 보도되더라도 잘못을 지적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알려지기 힘들었습니다. 언론이 의도적으로 이들을 철저히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언론 장악을 통한 여론조작입니다. 그러니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 또 이명박 정권에서 다수의 언론 해직자가 발생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특정 언론사가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왜곡된 기사를 썼을 때, 팟캐스트·유튜브 채널·블로그·SNS 등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시민들이 잘못을 지적할 수 있고, 기성 언론사만큼의 막강한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조국 보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 언론이 정보여론 형성기능을 독점하고 있던 시대의 방식대로, 해왔던 대로 기사를 생산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용자들이 그 기사가 충분히 설명력이 있다고 느낄까요?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용자 개개인이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사라고 여길까요?

 

 

단독 보도의 출처는 ‘검찰’

 

그래서입니다. ‘지상파 공동 팩트체크센터를 제안하고 논의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많은 정보가 생산되는 상황에서 언론의 기사 작성을 위한 사실 확인은 더욱 세밀해져야 하고, 단단해져야 합니다. 특히,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상파는 더욱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취지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방송기자연합회, KBSMBC가 지난 1023지상파방송 뉴스 신뢰도 향상을 위한 협력 방안-팩트체크 저널리즘 강화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토론회에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먼저 험난한 과정을 거쳐 정상화된 KBSMBC를 비롯한 지상파의 보도가 타 언론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 점에 대해 안타까움과 불편함을 내비치며 지상파의 오보 논란사례를 설명했습니다. 김 처장은 지상파의 조국 보도에서도 이른바 검찰 받아쓰기가 여전했다며 910일부터 24일까지 15일간 조국 의혹 단독 보도의 출처결과를 밝혔습니다.

 

KBS는 전체 조국 의혹 단독 보도’ 7건 가운데 출처가 검찰인 보도가 3건으로 43%, SBS는 전체 조국 의혹 단독 보도’ 10건 가운데 출처가 검찰인 보도가 6건으로 60%에 이른 점을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숫자뿐 아니라 보도의 형식이 검찰(관계자)에 따르면~”, “검찰에서 ~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라고 보고 있다라는 형태로 반론이나 추가 취재가 없어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표1] 6개 방송사 조국 의혹 ‘단독 보도’ 출처(9.10~9.24)   단위: 명

*자료 출처: ⓒ민주언론시민연합 **MBC는 ‘의혹’을 다룬 단독이 없어 제외

김 처장은 또한 KBS의 김경록 프라이빗 뱅커(PB) 인터뷰 논란에서도 검찰 의존성을 볼 수 있다며, 검찰이 확인하면 사실이라 전제하는 언론의 관습을 성찰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언경 처장은 팩트체크의 부재를 지상파 보도의 문제점으로 지적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표창장 위조 의혹 보도입니다. 실제 봉사활동 여부부터 표창장 위조 의혹까지 일방적인 주장이 보도된 반면, 이에 대한 반박은 101수첩> ‘장관과 표창장이 나올 때까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김 처장은 조국 보도에서 양적 불균형도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조국 보도에서 전문성 검증보다는 가족 관련 의혹도덕성 검증에만 치중했다는 겁니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뉴스 총 923건 중 고작 20, 2.2%만이 개각 발표 및 전문성 검증에 할애했을 뿐입니다.

 

[표2] 조국 전 법무부장관 관련 방송사 저녁종합뉴스 보도량(8.9~9.4)

*자료 출처: ⓒ민주언론시민연합 **0.5건은 단신

조국 보도뿐만 아니라 다른 보도에서도 나타난 지상파의 사실 확인 미흡 사례도 지적됐습니다. MBC의 경우 지난해 말 보도됐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중동특사 방문 관련 오보 논란이나 SBS손혜원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 논란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습니다.

 

 

보도의 다양성 훼손 우려

 

이어서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이 협력 팩트체크: 국내·외 사례와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SNU팩트체크센터는 국내 27개 신문·방송·인터넷 언론사가 참여해 각 사별로 실시한 팩트체크 결과를 게시하고 팩트체크 가이드라인 등을 정하는 기관입니다. 다수 언론사가 참여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팩트체크 기관이죠. 정은령 센터장은 SNU팩트체크를 비롯해 프랑스의 크로스체크(Crosscheck), 팩트체크 EU(Factcheck EU) 등 해외의 협업 팩트체크 사례를 소개하며, ‘지상파 공동 팩트체크센터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이 ‘ 협 력 팩트체크: 국내·외 사례와 시사점’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필자 제공>

 

전문가 인터뷰나 관련 논문, 관련 문서, 과거 인터뷰 등 객관적 자료를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팩트체크를 하려는 발언이나 명제와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합니다. 사람이 내리는 판단인 만큼 선입견이나 편견’, 그리고 착오는 늘 상존할 수밖에 없으니 지상파 공동 팩트체크센터를 통해 사실에 가장 가까운 부분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더 근거 있는 토론을 위한 문을 여는 과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 방송사들 또한 반론을 충분히 싣지 못하는 문제를 공동 팩트체크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이는 이용자들과 관계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정은령 센터장이 지상파 방송사들의 협력 팩트체크에서 고려해야 할 12가지 조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실행까지 오랜 시간의 논의가 필요하다.

2. 기록에 기반해 토의를 하고, 구체적인 규칙에 합의를 해야 한다.

3. 참여사들이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렀을 때 조언할 수 있는 전문가 자문위가 필요하다.

4. 본격적인 협력 이전에 실무진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5. 특정사에 일이 편중되지 않도록 각자의 몫을 나눠야 한다.

6. 실무자 커뮤니케이션 소통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7. 검증 대상과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에 대비해 변호사가 필요하다.

8. 내용 공유만 하는 언론사도 협력 파트너로 참여시켜 다층화해야 한다.

9. 선거처럼 시간제한이 있는 검증은 신속한 팩트체크 확산이 중요하다.

10. 콘텐츠를 다양한 경로로 유통시켜야 한다.

11. 한시적인 사령탑 역할을 할 팝업뉴스룸(pop-up newsroom) 운영이 필요하다.

12. 성과를 이어갈 것인지, 목표를 다시 설정할 것인지 협력, 그 후를 생각해야 한다.

 

지상파 보도 현업자들은 조심스런 입장입니다. 지금까지 경쟁해왔던 타 방송사와 상시적으로 협력을 해 보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꺼림칙하기도 하고, 오히려 지상파 방송사들이 같은 견해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보도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상파 공동 팩트체크센터를 상시 운영하는 것은 어렵고, 내년 총선부터 시작해 선거에 맞춰 해보자는 의견이 절충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토론회에서 결정이 나지 않았지만, 지상파 방송사 보도 현업자들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상파 공동 팩트체크센터운영의 이유와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이용자들에게 우리 언론인의 어려움과 한계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방송 독립’을 요구하며 싸웠던, 또 싸우고 있는 지상파 언론인들이면
더욱 이용자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보도를 해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그게 맞는 길입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론조사 결과의 수수께끼

 

조국 사태를 가장 공정하게 보도한 방송사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미디어오늘·리서치뷰가 1027~30일 공동 여론조사를 했는데요, MBC19%로 가장 앞섰고, TV조선이 17%로 뒤를 이었습니다. ‘조국 보도에 관해 단독 보도를 하지 않은 방송사가 가장 공정하다고 평가받고, ‘검찰 받아쓰기근거와 반론이 약한조국 보도를 쏟아냈던 방송사가 다음으로 공정하다고 평가받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일부 방송사 기자들은 진영 논리를 핑계로 이용자들의 합당한 요구를 폄훼해버리면 끝나는 문제에 불과할까요? 감히 단언컨대, 아닙니다. 이용자들에게 우리 언론인의 어려움과 한계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방송 독립을 요구하며 싸웠던, 또 싸우고 있는 지상파 언론인들이면 더욱 이용자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보도를 해야 합니다. 힘들더라도 그게 맞는 길입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1) 빅카인즈에 집계된 조국 전 장관에 대한 검증기사가 1만 5,929건일 때, 다른 인사청문회 대상자의 보도량과 비교해보면 그동안 한국 언론이 얼마나 조국이란 인물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김현수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674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13건,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84건,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166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206건으로 비교 자체가 불가할 정도입니다. 상당수 국민들이 ‘조국 보도’에 불만을 표시하는 이유도 언론사의 기사 내용과 함께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는 보도량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언론의 감시 기능까지 휩쓸어간 ‘보도량 홍수’”(정재관. 신문과방송. 2019년 11월호)를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