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 가치에 합당한 뉴스는 인정머리가 없다?

2011. 4. 27. 09:2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대신 형미한테 부탁하면 유정면 쇄석기 설치반대 대책위원회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질 계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고 전화를 했다. 명색이 그래도 시사잡지 기자가 아닌가. 사연을 이야기했더니, 형미 왈,
“언니, 그게 그러니까 말야, 무엇을 반대한다고 하는 싸움이 유정면에만 있는 게 아냐. 전국이 다 그래, 다. 내 말은 그러니까, 유정면 주민들의 투쟁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란 거지.”
“그래, 그렇다고 쳐. 그러면, 특별하지 않으면 기사로 쓸 가치도 세상에 알릴 이유도 없다는 거야, 뭐야?”
“요는, 그러니까, 그런 시시콜콜한 동네 이야기까지 기삿거리로 다루기엔 대한민국이 그리 한가한 나라가 아니란 말이지. 물불 안가리잖아? 불만해도 봐봐. 남대문에서, 이천에서, 광화문에서, 용산에서. 물은 또 어디야? 당장에 사대강이 있네. 언니, 근데, 사대강 중에 섬진강도 들어가나?” (공선옥, 2011, 91쪽)


시골마을 유정면에 들어선 쇄석공장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투쟁’을 그린 공선옥씨의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의 한 대목입니다. 공선옥의 소설은 지난해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한 작품을 묶은 것인데요,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횟집을 하다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영희 부부는 살 집을 찾아 시골마을에 흘러들지만, 마을 인근에 불법 쇄석공장이 들어서면서 벌어지는 할머니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집니다. 외지인 영희는 떼밀리다시피 시위 현장에서 가고 할머니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점차 ‘투사’로 변해갑니다.

제시된 대목은 영희의 부탁을 받은 작가 서해정이 친구로 알고 지내는 시사잡지 기자 형미에게 유정면 투쟁 소식을 기사화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기자 형미는 뉴스 게재에 난색을 표시하면서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시골마을에 들어선 쇄석공장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의 ‘투쟁’을 그린
공선옥씨의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 창비 제공>


저널리즘과 현실적인 접근

형미가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에 대해 ‘특별하지 않는 이야기’라거나, 나중에 언급되지만, ‘시끄러운 순서에서 밀린다’고 지적한 것은 다소 애매한 말이지만, 저널리즘이나 학술적으로 풀어서 설명한다면 중요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또는 흥미롭지 않는 이야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즉 형미의 견해는 기본적으로 저널리즘, 신문학 등에서 뉴스를 보도할 때 작용하는 뉴스 가치(news values) 기본 개념에 매우 부합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크리스 맥두걸(Macdogall, C.)은 뉴스 가치로 적시성(timeliness), 근접성(proximity), 저명성(prominence), 영향성(consequence), 흥미성(human interest) 등을 제시했고, 존 갈퉁(Galtung, J.)은 어떤 사건사고, 현상 등이 뉴스로 보도되는 이유에 대해 빈도, 진폭, 명확성, 친밀성, 일치성, 경악성, 계속성, 조화성 등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이준우, 2002). 이에 따라 많은 국내 학자들은 시의성, 근접성, 저명성, 영향성을 중요성으로 묶고, 인간적 흥미에는 갈등, 이상성, 로맨스, 영웅 등의 세부 요소를 제시하기도 합니다(임영호, 2000; 이준우, 2002).

저널리즘에서 강조되는 이 같은 뉴스 가치는 언론 제작과정에서 주요한 기제로 작동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이 기사화되지 않는 소설과 달리, 이승만 전 대통령의 유족이 4.19혁명 51주년인 지난 4월19일 서울 수유리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하려다 희생자단체 회원들의 저지로 무산된 내용은 모든 언론에서 뉴스로 처리했습니다. 이는 4.19혁명과 이승만 정권간의 역사적 평가와 화해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유정면 할머니들의 투쟁 소식이 뉴스로 보도되지 못한 것과 관련, 저널리즘 원론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적인 문제도 있어 보입니다. 즉 한국에서는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다뤄야 할 기사는 많지만 이에 비해 기자들은 턱없이 적어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기자가 하루에도 서너개 정도의 기사를 처리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입니다. 인력과 시간, 비용 등에서 모든 지역의 사건사고를 커버할 수 없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사건사고의 경우 현실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얘깁니다.


공정한 뉴스란 무엇인가

저널리즘 원칙과 한국 언론의 현실론적 차원에서 검토해봤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신문과 기사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거나 진실을 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널리즘과 한국 언론의 현실에만 집착하면서 정작 ‘지금 여기’ 우리 이웃들의 땀과 눈물, 고통을 외면하고 있지 않느냐는 시각도 분명이 존재한다는 얘기죠. 아마 공선옥의 <꽃피는 시절>의 대목도 바로 이 같은 사회적인 또는 역사적인 진실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시끄러운 것도 다아 순서가 있단 말....”
    욱, 하고 치밀어오르는 어떤 기운 때문에 형미 말을 가로챘다.
   “순서? 순서 좋아하지 마라. 여기 지금 애기 낳고 다음날 바로 논밭에 일하러 나가야 했던 할머니들이...
    할머니들이...”

    이것이 무슨 조홧속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이영희한테서 전염된 게 분명했다.
    이영희가 할머니들이라는 말만 발음하면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그 증세가 자기한테 옮겨올 줄이야.
    (92쪽)


뉴스 가치 개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뉴스가치 또한 영원불멸하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나라와 사회 등에 따라 변화한다는 사실입니다. 순박한 유정면 할머니들이 길거리에 나오게 된 게 비록 ‘뻔한’ 중요하지 않는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다시 들여다볼 여지는 없는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죠. 더구나 불법 탈법의 가능성이 있거나 가능성이 농후하다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와 증언이 있다면, 파고들어 조명해볼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사회의 총체적 진실을 담아내는 언론이 되기 위해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뉴스 가치의 공정성 회복도 필요해 보입니다. 이준웅과 김경모(2008)은 ‘바람직한 뉴스’의 구성 조건으로 공정성, 타당성, 진정성 3가지를 제시한 뒤, 공정한 뉴스 보도를 위해서는 다양성과 담론적 공정성뿐만 아니라 약자를 배려하는 ‘외연적인 공정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즉 그들은 “언론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뉴스 이용자를 가정하고 있으며, 언론이 다루는 주제는 해당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에 위협을 주거나 핵심 가치나 규범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내용을 다룬다는 전제와 절차적 합의”(29쪽)가 있다면 담론은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갈등적 사안에 대한 논쟁이 첨예한 공공영역에서 언론이 최소 권력자의 주장을 따로 전달하지 않는다면, 즉 언론의 담론적 조정을 위한 관여가 없다면, 바로 그 최소 권력자의 목소리는 더욱 약화돼 사회적 숙의나 정책 결정과정에 그 주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 요컨대, 담론 권력의 차별적 강화 가능성 또는 공론권의 의사소통 구조의 왜곡 가능성을 사전 조정하고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일이 뉴스의 외연적 공정성이 추구하는 가치가 된다. 소수 의견의 보호와 조절을 통해 공정성의 외연을 확장해 간다는 것이다.”(이준웅 김경모, 2008, 29쪽)   

물론 저널리즘 현장으로 돌아올 때 판단은 다시 쉽지 않습니다. 저널리즘의 뉴스 가치는 여전히 뉴스 판단에서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외연적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어려움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기자들이 저널리즘 뉴스가치와 공정성의 확장 속에서 끊임 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이유입니다.

공선옥 소설 <꽃피는 시절>의 서해정이 기자들에게 보내는 의심은 무척 아픕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해정처럼 기자들에게 의심의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기자들의 이 같은 입장도 조금 고려해주길 부탁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기자들이 이런 고민을 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실을 위해 뛰고 있으니까요. 아울러 기자들도 혹시 현실에 둔감하거나 미래를 잊어버린 기자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고민과 반성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서해정의 기운이 매섭고 또 매섭습니다.


<참고문헌>
공선옥(2011). 『꽃피는 시절』. 서울: 창비.
이준우(2002). 신문 취재보도론. 서정우 편(2002). 『현대신문학』(191-27). 서울: 나남.
이준웅 김경모(2008). ‘바람직한 뉴스’의 구성조건: 공정성, 타당성, 진정성. 『방송연구』, 67호, 9-44.
임영호(2000). 『신문원론』. 서울: 연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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