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25. 18:11ㆍ포럼
서양 외신 의존하는 후진적 취재 시스템 바꿔야
국제 분쟁·전쟁 보도와 피부색에 따른 차별
‘글로벌’이란 단어가 새삼스러울 것 없는 요즘이지만
소위 글로벌 표준에 가장 못 미치는 분야를 꼽으라면 국내 언론사의 ‘국제 뉴스 취재 보도’일 성싶다.
해외 특파원 규모가 턱없이 부족함은 물론, 이슈 또한 특정 국가,
특정 지역에 치우쳐 있어 균형 잡힌 보도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국제 전쟁 보도와 관련한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국제 뉴스를 해외 언론을 거쳐 전해 듣다 보면,
외국의 관점이나 이해관계가 부지불식간 우리 뉴스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독자들은 우리의 주체적 시선으로 세계를 해석하지 못하고 서구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지난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우리나라가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 된 것이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에 세계 6위 군사강국, K팝과 영화 ‘기생충’으로 유명한 대중문화 선도국이 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평가다. 다만 이쯤에서 ‘선진국’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선진국다운 성숙한 의식과 역량을 갖추었는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제 사회 일원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 만큼 글로벌 이슈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갖추고 충분한 관심을 보내고 있는지는 중요한 점검 포인트 가운데 하나이다.
대륙별·인종별 불균형
아쉽지만 그간 국제 이슈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은 국내 이슈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특히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 제3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설령 관심을 갖더라도 세계 자본주의의 위계질서라는 편협한 렌즈를 통해 경제적 투자와 이익을 위한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다. 물론 식민과 압축 성장을 경험한 한국은 제국을 경영했던 서구 국가들과 비교할 때 나라 밖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의 책임도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시민이 직접 세계를 누비며 취재를 할 수 없다면 결국 언론이 세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국내 언론은 해외 언론 못지않은 비상한 관심 속에 전황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전투 경과와 양국의 전략, 피해 정도가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주변 국가들에 주재하던 특파원들이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가서 피난민을 취재했고, 제한적이나마 정부 허가를 받아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현지 취재에 나서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집중적 보도는 그 자체로 박수 받을 만한 일이다. 전쟁의 야만적 참상을 생생히 전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기자들의 노고도 돋보였다.
그러나 모든 전쟁이 언론으로부터 우크라이나와 같은 수준의 관심을 받는 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구촌 한쪽에서 벌어지는 비극에는 관심이 집중되지만, 다른 쪽에서 벌어지는 어떤 고통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잊히고 있다. 가령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는 2020년부터 내전이 이어져 지금까지 1만 명이 죽고 1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12년부터 내전을 벌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선 인구의 4분의 1이 난민이 됐다. 영화 ‘모가디슈’로 화제가 된 소말리아는 30년 넘게 내전을 벌이고 있다. 남수단은 가뭄과 내전으로 전체 인구의 70%가 기아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는 대체로 아프리카의 비극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별다른 관심이 없다.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생명의 가치가 다르지 않다는 소박한 관점에서 본다면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대륙과 인종에 따른 선별적 관심과 보도의 불균형은 언론의 국제 뉴스 제작 현실과 관련지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 한국 언론사는 국내 정치·경제·사회 뉴스에 비해 국제 뉴스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국제 뉴스는 양적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질적 수준도 낮다. 국제 질서의 흐름을 읽어낼 안목과 지성을 길러주는 양질의 기획 보도를 찾기 어렵다. 국제 이슈를 분석하는 심층적 기사가 종종 1면 톱에 배치되는 프랑스의 <르몽드>(제호 자체가 ‘세계’라는 뜻이다)와 대조되는 점이다.
‘찬밥 신세’ 국제부
한국 언론이 생산하는 국제 뉴스의 상당수는 포털 사이트에서 클릭을 유도할 목적으로 자극적 제목을 단 선정적 기사다. 깜짝 놀랄 만한 제목을 보고 클릭했더니 중국이나 미국에서 벌어진 엽기적 사건을 다룬 함량 미달의 기사에 황당했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국제 뉴스가 종합지로서 외양을 갖추거나 눈앞의 푼돈을 챙기는 수단에 불과하다 보니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국제 뉴스를 생산하는 부서는 ‘비주류’ 취급을 받는다. 국제부는 늘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용되고 자원도 적게 할당된다. 해외에 주재하는 특파원 수도 필요에 비해 너무 적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20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해외 주재 특파원은 모든 언론사를 다 합쳐도 137명에 불과하다. <연합뉴스>가 19개국에 33명으로 그나마 가장 많은 특파원을 보내고 있다. 공영방송 <KBS>조차 8개국에 17명을 운용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종합일간지는 미국·중국·일본 등에 1명씩 겨우 5명 안팎의 특파원을 보낼 뿐이다.
250개 국가에 300명 넘는 기자를 보내는 미국 <AP통신>이나 50개 국가에 200명 넘는 기자를 보내는 영국 <BBC>와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 하더라도, 한국 정도의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국가 중에 이렇게 해외 취재·보도 인력이 적은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언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너무 적은 수의 기자들이 너무 많은 기사를 쓰고 있다 보니, 재정과 인력이 모두 부족한 상황에서 해외에 많은 특파원을 보낼 여건이 안 되는 것이다.
국제 뉴스를 취재하고 제작할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부끄럽게도 한국 언론은 해외 언론에 의존해서 국제 뉴스를 만들고 있다. 현장에 직접 가서 발로 뛰며 취재하는 게 아니라 외신 기사를 번역하거나 인용해 ‘옮겨 적는’ 방식으로 기사를 만든다. 이러한 관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그간 국내 언론사 내에서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이처럼 국제 뉴스를 해외 언론을 거쳐 전해 듣다 보면, 외국의 관점이나 이해관계가 부지불식간 우리 뉴스에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중동 이슈와 관련해 미국 언론을 인용할 경우 미국 기자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기사에 녹여낸 미국 패권주의나 오리엔탈리즘이 우리 기사에도 여과 없이 스며들게 된다. 독자들은 우리의 주체적 시선으로 세계를 해석하지 못하고 서구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주체적 시각이 부족하다
우리 국익과 직결되는 사안임에도 외국 기자에게 취재를 맡겨야 하거나 충분한 보도가 이뤄지지 않을 위험성도 있다. 대만과 중국 간의 군사적 긴장은 한반도 안보와 긴밀히 연관된 이슈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관련 보도는 턱없이 부족했고 분석도 외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안보와 직결된 양안 간 긴장이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더 비중 있게 보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우리 언론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중요하게 다루는 데에도 서구 언론의 판단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서구 강대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전략적으로 깊은 이해관계를 갖는 지역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여부가 전쟁의 도화선이 된 것만 봐도 그렇다. 서구 언론이 각별한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게다가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인종적 동질성을 지녔다. 미국 <CBS> 기자는 우크라이나가 이란·아프가니스탄과 달리 “유럽과 가깝고 비교적 문명화된 곳”이기 때문에 전쟁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다. 다른 지역의 전쟁, 다른 인종의 난민에 비해 우크라이나에 쏟는 서구 언론의 차별적 관심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보도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주체적 시각에 따른 독립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국의 위상이 바뀌었고, 시민 사회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미얀마 민중이나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고통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관점에서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는 시민들이 많아진 건 시민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더 이상 서구의 시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세계를 해석하는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하지만 국내 언론은 국제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 여전히 개발도상국 시절의 낡은 뉴스 생산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언론의 의식과 관행이 시민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양적으로 부족했을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시민 사회의 관심보다 한발 늦었다.
공영 언론사 솔선수범 필요해
후진적 국제 뉴스 생산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언론계 내부의 인식 변화와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물론 열악한 경영 환경에 처해 있는 언론사들이 지금 당장 해외에 많은 특파원을 보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공영 언론사가 물꼬를 터야 한다. 연간 300억 원이 넘는 공적 지원금을 받는 <연합뉴스>는 지금보다 특파원을 대거 늘려 국가기간 뉴스통신사의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KBS>도 지금보다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양질의 국제 뉴스를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해외 취재에 대한 법적 족쇄도 풀어줄 필요가 있다. 외교부는 자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여권법을 통해 분쟁 지역에 대한 취재를 제한하고 있다. 중요한 국제 이슈를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우리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분쟁 지역 취재 활동 역시 언론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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