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맛집, 피맛골은 사라져도 미진은 남았네

2012. 1. 4. 09:40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치밀한 분석과 화려한 언변으로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들, 기자. 하지만 그들 역시 매일매일 점심메뉴를 고민하고,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요 언론사가 모여 있는 광화문 일대는 맛집의 천국이기도 합니다. 다독다독에서는 기자들 사이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광화문과 종로 일대의 맛집을 찾아 맛있는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사람들이라는 ‘기자가 찾는 맛집’은 어떤 곳일까요?


주요 공공기관과 언론사가 모여 있는 광화문. 이곳은 예로부터 서울의 중심이었습니다. 궁궐로 들어가는 정문인 광화문 앞으로는 고관대작이 다니는 길인 육조거리가 있었고, 그리고 그 뒤로는 서민의 거리라 불리는 피맛골이 있었습니다.

서울 중심가 숨겨진 맛집촌, 피맛골


피맛골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조선 시대 이곳은 궁궐과 가까워 가마나 말을 탄 고관대작의 왕래가 잦은 큰길이었습니다. 그 시절 하급관료나 서민들은 큰길을 가다가 고관대작을 만나면 길가에 엎드려 예의를 표해야 했는데요. 이런 일이 빈번하자 번거로웠던 서민들은 아예 큰길 양쪽 뒤편의 좁은 골목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 목로주점, 모주집, 장국밥집이 들어서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고, 말을 피하는 골목이라 하여 피맛골(避馬골) 또는 피마길이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터만 남은 교보생명빌딩 뒤 피맛골>

지금은 사라졌지만, 지금의 교보생명빌딩 뒤편에 있던 피맛골은 서울을 대표하는 서민 음식점이 몰려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이면 고소한 생선 굽는 냄새가 풍겨와 퇴근하는 직장인을 유혹하곤 했는데요. 하지만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목조건물은 화재에 취약했고, 도시 재개발 정책에 따라 피맛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피맛골의 정취를 사랑하던 많은 사람들은 아쉬워했지만, 이곳을 대표하던 맛집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옛맛을 그대로 살리고 있습니다. 지금 공사 중인 피맛골 거리 바로 뒤에는 르메이에르 빌딩에는 피맛골의 맛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요. 오늘 소개해드릴 미진도 그 중 하나입니다.


 


                                                 <피맛골 맛집들이 옮겨 간 르메이에르 빌딩>


                                         <건물 통로에 ‘피맛골’이라는 입간판이 걸려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메밀국수집 미진>

피맛골의 터줏대감, 메밀국수집 미진


르메이에르 빌딩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맛집이 바로 미진입니다. 그전부터 피맛골 맛집의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었기에 1층 좋은 터에 자리하고 있네요.

이곳의 대표메뉴는 모두 짐작하시겠지만 냉메밀입니다. 실제로 손님들의 절반 이상은 냉메밀을 먹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구요. 냉메밀은 국물을 차게 식혀 먹는 대표적인 여름 음식이지만, 미진의 냉메밀은 계절을 타지 않는 듯, 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날도 많은 손님들이 찾고 있었어요.




상차림은 조촐한 편입니다. 주문을 하면 기본반찬으로 열무김치와 깍두기, 단무지를 깔아주고, 주전자에 가득 담은 육수가 나옵니다. 테이블에는 채 썬 파와 무, 그리고 김이 있는데요. 식성에 맞게 그릇에 담은 다음, 육수를 부어 국수를 말아 먹으면 됩니다. 매콤한 맛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겨자를 풀어도 좋구요.

2단 찬합에 담겨 나오는 면은 4덩이인데요. 양은 넉넉한 편이기 때문에 성인 남성이 한 끼로 식사로 먹기 적당합니다. 이날은 남자 둘이서 찾았기 때문에 메밀김치전도 함께 시켜보았는데요.




미진에서는 냉메밀 말고도, 메밀을 주재료로 하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메밀로 만든 전병에 돼지고기, 두부, 무말랭이와 갖가지 채소를 돌돌 말아 나오는 메밀전병, 고단백 저칼로리의 건강식 메밀묵밥을 비롯해 이날 맛본 메밀김치전, 낙지파전과 같은 안주류도 맛볼 수 있답니다.


소화가 잘 되는 메밀의 효능




<동의보감>에 따르면 메밀은 비위장의 습기와 열기를 없애주며 소화가 잘 되게 하는 효능이 있어 1년 동안 쌓인 체기가 있어도 메밀을 먹으면 낫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이나 체질적으로 열기와 습기가 많은 사람이 메밀을 먹으면 몸 속에 쌓여있던 열기와 습기가 빠져나가면서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을 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예로부터 여름철에 메밀로 만든 국수나 냉면을 먹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다만 메밀이 차가운 기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메밀로 된 음식을 먹을 때는 고기를 얹거나 무를 함께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밀의 서늘한 기운을 따뜻한 음식으로 보완해 음식의 조화를 이룬 것이죠. (참고: 네이버캐스트)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이효석의 작품처럼, 메밀은 예로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식재료였습니다. 그렇기에 미진의 메밀국수도 특별하다기보다는 편안하고, 또 익숙한 맛이 느껴지는데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피맛골 맛집으로 50년을 이어온 미진의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자들이 찾는 맛집이라고 해서 모두 독특하거나 특색있는 집은 아니랍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대중성, 그리고 친숙함이야 말로 맛집으로 꼽는 첫째 조건이 아닐까요? 광화문 대표 맛집 미진. 이번 주말에 한 번 들러보시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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