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5. 10:00ㆍ웹진<미디어리터러시>

|글. 신우열 (전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기록적인 폭우와 홍수,
수 많은 사상자를 냈던 지진,
도로가 녹아내릴 듯한 폭염을
차례로 겪으며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기후위기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에 등장하는
기후위기 보도, 즉 ‘기후 저널리즘’ 형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다소 평면적이다.
본고에서는 한국 기후위기
언론 보도 현황과 한계점을 살펴보고,
바람직한 기후 저널리즘에 대해
생각해본다.
올바른 기후 저널리즘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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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는 1970년대 말부터 기후변화가 인간의 탓인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에 온실가스와 지구 온난화의 상관관계가 과학적으로 규명되었고, 1992년에 리우선언이 있었고, 1997년에 교토의정서가, 2018년에 지구온난화 1.5°C 특별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이런 흐름이 무색하게도 2024년 현재 우리는 기후 변화 수준이 위기를 넘어 재앙 수준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한국 사회는 태풍, 가뭄, 폭염, 폭우 등의 대형 자연재해는 물론, 기후 변화가 초래한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까지 경험하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지고,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영역에서 대응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언론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는 그 영향력이 광범위하고 장기적·복합적이어서 모든 영역에서의 동시다발적이고도 장기적인 협력으로만 대응할 수 있는데, 언론은 이 과정에서 각 대응 주체를 뉴스로 잇는 역할을 한다. 국민은 뉴스를 통해 정부와 경제권의 기후위기 대응 방향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태도를 형성한다. 여론을 다룬 뉴스는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 뉴스에서 대형 재난이 어떻게 분석되느냐는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 기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언론이 기후를 어떻게 취재하여 보도하는지, 즉 ‘기후 저널리즘’은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태도,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 언론은 2018년 전후로 기후위기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여러 언론사가 기후위기 전담팀을 구성하고, 기상·환경 분야 전문기자를 채용하였다. 기후위기 보도량은 폭증했고, 뉴스 이용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한국 언론의 기후위기 보도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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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기후위기 보도는 양적으로 팽창하긴 했지만 여전히 단발성 내지 현장성 기사에 그쳐 제도적·일상적 변화를 촉진하는 방향과는 거리가 있다. 기후위기는 주로 환경 기사나 사회성 기사로 다뤄지고 있는데, 국내외에서 발생한 폭염, 태풍, 폭우, 산불, 가뭄 등 재난이 초래한 피해를 다루는 기사들이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 이에스지(ESG;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등급을 신경쓰는 기업 경영 기조와 맞물려 기업발 보도자료에 기반한 경제면 기사도 급증하고 있다.
물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기후위기 관련 기획 보도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긴 호흡이 필요한 사안이어서 기자가 단기간에 생활밀착형 소재를 발굴하기가 어렵다. 플라스틱 폐기물, 해양 쓰레기, 미세먼지, 일회용품, 육식문화, 전기요금, 야외노동 등 수많은 이슈가 기후변화와 연관되어 있지만, 이를 하나의 현상으로 통합해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해석이 필요한 사안이 대부분으로, 기자들이 기사화할 만큼 이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요구된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대부분 언론사가 기후위기를 극소수의 기자들에게 전담시키고 있다. 개인의 역량과 관심에 하나의 보도 영역의 성패를 맡긴다는 것은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기후위기처럼 전 영역에 걸쳐 있는 거대한 이슈를 소수가 지속적으로 끌고 나가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인 혹은 소수 집단이 이 이슈를 짊어지게 된다면 이슈의 획일화, 파편화가 불가피하고 심층적 보도물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기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자 개인의 심리, 정서, 육체에 소진의 위험이 크다.
한편 오늘날 뉴스 유통 구조, 특히 대중의 뉴스 이용 방식도 기후위기 보도의 다양성과 심층성 하락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언론 환경에서는 딱딱한 주제이면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모바일을 활용하여 포털 사이트나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뉴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짧은 뉴스에 익숙해져 있는데, 기후위기 같은 복합적인 주제를 짧은 뉴스로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뉴스 이용자들은 기후위기 보도에 ‘내성’이 생겨 웬만한 기사에는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잘 팔리는’ 형식과 소재에 욱여넣다보니 기후위기는 주로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모양으로 뉴스 피드에 나타나기 일쑤다. 이는 결국 기후위기를 장기적으로 취재하는 데 필요한 기자들의 내적 동기를 낮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모두의 기후 저널리즘을 위한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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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보도 영역이기보다는 ‘세계관’ 혹은 ‘가치관’에 가깝다. 기후위기는 확장성, 연결성 측면에서 다른 보도 영역과 차이를 갖는다. 기존 언론사 조직이 집중해 온 영역 중 기후위기와 관련이 없는 곳이 없다. 기후변화의 촉진과 완화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관련이 있다. 기후위기는 환경, 기상, 교육, 일상, 노동, 예술, 스포츠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전통적인 언론사의 직제와 편제는 기후위기를 담기에 부적합하다.
그러므로 기후위기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나 언론에게 있어서 기후위기는 새로운 영역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기자라면 누구나 기후 저널리즘을 자기 일로 여겨야 한다. 기후위기 보도를 하는 정치부 기자, 기후위기 보도를 하는 사회부 기자가 필요하다. 기후 저널리즘은 출입처를 가로질러야만 하고, 각 조직 내 기후변화 전담팀이나 전문 기자는 ‘커맨드 센터’가 돼야 한다. 그럼으로써 정치 뉴스를 본 시청자가 기후변화에 위기감을 느끼게 해야 하고, 노동 기사를 읽은 독자가 엉겁결에 기후행동 실천을 고민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The Wall Street Journal》의 2018년 기획 시리즈 ‘기후의 대가 The price of climate’는 ‘경제 X 기후위기’ 보도의 모범적인 선례다. 이 시리즈는 농업, 보험, 부동산 등 여러 경제 관련 지표들이 기후의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다뤘는데, ‘현재가치’와 ‘미래가치’ 등의 경제 상식에 착안하여 시작된 기획이었다. 취재진은 기후변화가 세계에 실제로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 영향이 결국 보험 비용과 자산 가격에 반영이 될 것이라고 보고, 이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기사화한 것이다. 이 시리즈를 주도한 파이낸셜 에디터(기후변화 에디터가 아니다) 찰스 포헬르(Charls Forelle)는 “《월스트리트저널》은 주요 독자들인 비즈니스 및 금융 리더들을 관심사 측면에서 잡식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특히 경제 리더 입장에서는 기후변화가 ‘리스크’이기 때문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1] 요컨대,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 전문지로서 쌓아 온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함으로써 타깃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기후변화에 관심을 두게 만들었다.

국내에서는 2024년 《한국일보》의 기획 시리즈 ‘추적: 지옥이 된 바다’가 눈에 띈다. 《한국일보》의 탐사기획부 격인 엑설런스랩이 주도한 프로젝트로, 기후위기 전담 기자나 환경 전문 기자가 아닌 탐사보도 기자들이 3개월간 국내외 해양 쓰레기를 추적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해양 쓰레기 자체는 뉴스 주제로서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기자가 8일 동안 조업선을 타고 제주 먼바다에 나가는 등 탐사기획팀 특유의 끈질긴 취재로 입수한 방대하고 깊이 있는 자료에 ‘추적’이라는, 기사에서 보기 힘든 내러티브를 입힘으로써 독자들에게는 물론 동료 기자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기자 개개인이 기후위기적 세계관을 갖추더라도 리더십이 그렇지 않다면 기후 저널리즘의 실천은 요원하다. 위계적인 한국 언론 조직 문화상 큰 권한과 책임을 진 이들의 변화가 더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아무리 세계관이라 하더라도 그 세계관이 보도에 반영될 수 있도록 돕는 구조와 체계 없이는 보존되기가 쉽지 않다. 전사적인 변화가 없다면 의지와 관심을 가진 개인은 희생되고 저질 기후 저널리즘만 남을 것이다.
기후위기 관련 뉴스는 지금도 많지만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신문의 모든 면, 언론사 웹사이트의 모든 섹션이 기후위기를 담을 테니. 따라서 뉴스 이용자는 정치면에서는 정파성이, 경제면에서는 상업주의가, 국제면에서는 패권 경쟁이나 문화 사대주의가 기후위기에 묻어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난 수년 동안 한국 언론이 정쟁을 틀로 삼아 대체 에너지 논쟁을 다뤄 온 것이 일례다. 결국 기후위기 뉴스를 제대로 읽으려면 뉴스 이용자는 기후 위기 세계관을 바탕에 두고 종합적인 미디어 리터러시를 길러야 한다.
[1] https://www.storybench.org/how-the-wall-street-journal-reportedon-the-price-of-cli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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