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적 지원 이외에 기술적 환경 조성도 필요해

2025. 7. 24. 14:26웹진<미디어리터러시>

 

|글. 김선호(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장)|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결정에는 크게 사회심리적 요인과 정보 요인, 두 가지가 작용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사회심리적 요인과 달리 정보 요인은 뉴스나 시사 정보가 큰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 발달이 불러온 정보의 홍수 속에서

민주 시민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되새겨본다.


오늘날 미디어 리터러시는 민주주의 위기 극복에 중요한 요소로 재설정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건전한 고품질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잘못된 의사결정을 했을 때 그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심각한 갈등과 위기를 겪을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정보량이 폭증하고 건전한 정보와 불건전한 정보가 혼재하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돕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결정, 즉 선거에서 투표 결정에 작용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사회심리적 요인과 정보 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회심리적 요인이라 하면 유권자 개인의 정치 성향과 이념, 사회 경제적 계층 의식, 지역이나 단체에 대한 집단 소속 의식을 일컫는다. 사회심리적 요인은 형성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한 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고 장기 지속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지역색은 투표 결과를 예측하는 데 매우 유의미한 변인인데, 해당 유권자가 거주지를 이전하더라도 잘 변하지 않는다.

정보 요인은 선거나 정치 관련해 유권자들이 어떤 경로로 어떤 내용의 뉴스나 시사 정보를 접하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일컫는다. 사회심리적 요인과 달리 정보 요인은 투표 결정에 가변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보 공급 측면에서 얼마나 많은 고품질 정보가 유권자들에게 제공되는가, 정보 수용 측면에서 유권자들이 고품질 정보와 저품질 정보를 얼마나 잘 판별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가에 따라 투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는 이 중 정보 수용과 관련되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미디어 리터러시가 유권자의 ‘민주 시민 역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미디어가 복잡다단해지고 동시에 정치가 미디어화되면서 유권자의 미디어 리터러시 향상은 중차대한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 시민 역량으로는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는 의사소통 역량,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적 태도, 투표 등 정치적 참여,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이해와 공동체 의식 등을 들 수 있다.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일방향적 미디어와 달리 양방향적 미디어인 인터넷이 등장했던 1990년대 시점에서 많은 학자가 ‘텔레데모크라시’나 ‘인터넷 공론장’ 실현을 낙관적으로 예측했다. 인터넷을 통해 시민과 정부가 직접 소통하고, 시민들이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접하고, 시민들 사이에 자유로운 토론이 활성화되면 민주 시민 역량도 자연스럽게 증진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인터넷과 모바일 미디어의 발달은 이러한 민주 시민 역량을 증진하는 데 오히려 위협이 되고 있다.

 

인터넷이 가져온 정보 과부하

 

오늘날 유권자들은 인터넷 등장 이후 정보 과부하(information overload)를 겪고 있으며, 이는 정보 수용 과정에서 혼란을 일으킨다. 인간이 지출할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 혹은 시선(attention)은 한정적인데 반해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정보 중 무엇을 선택·수용할지 방향 상실감을 겪게 된다. 과거 유권자들이 접했던 정치 정보는 뉴스가 주를 이뤘고, 선거 시기에는 토론이나 정치광고 정도가 정치 정보 범주에 추가됐고 신문 지면이나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전달됐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외에도 소셜미디어, 정치 인플루언서 동영상이나 팟캐스트, 블로그, 메신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댓글, 숏폼 동영상 등이 정치 정보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최근 공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5>에서 나타나듯, 주요 국가에서 뉴스 출처로서 텔레비전을 이용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감소 추세에 있으며,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는 비율은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한 추세는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더욱 심화된다. 그런데 텔레비전과 달리 소셜미디어에는 뉴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인 정치 정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상의 대안적 정치 정보는 언론사가 제공하는 뉴스와 달리 사실 검증과 같은 게이트키핑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내용의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

공하는 뉴스와 달리 사실 검증과 같은 게이트키핑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내용의 진위를 가리기 어렵다.

[그림 1] 주요 뉴스 출처: 소셜미디어 vs 텔레비전 (출처: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Digital News Report 2025>, 13쪽)

최근 대안적 정치 정보의 이용률과 영향력이 주요 언론사가 제공하는 뉴스의 이용률과 영향력에 근접해가고 있다. 대안적 정치 정보는 흥미성, 단순성, 인지 일관성을 무기로 유권자에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정보 과부하 환경에서 유권자들은 수많은 정보 중에서 지루한 정보보다는 흥미로운 정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해하는 데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많은 텍스트보다는 오디오나 동영상으로 구성되어 귀와 눈을 즐겁게 하는 콘텐츠, 정숙하고 감정이 절제된 콘텐츠보다는 웃음을 선사하고 감정을 유발하는 콘텐츠가 유권자의 시선을 끌기 쉽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정책에 관련된 심층적이고 복잡한 분석보다는 최근 논란거리에 대한 단순명료한 의견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마지막으로 정보 과부하 환경에서 유권자들은 다량의 정보 중에서 자신의 정치 성향이나 후보 지지 성향에 부합하여 인지일관성을 유지시키는 정보를 선택하고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정보는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유튜브에서 뉴스 이용률이 높은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 정치에서도 이런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조 로건(Joe Rogan)이나 터커 칼슨(Tucker Carlson)과 같은 정치 인플루언서가 유튜브와 X 같은 소셜 플랫폼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 이용자층의 인구학적 특징을 보면 여성보다 남성이 많고, 연령대는 35세 이하 MZ 세대가 많으며, 정치적으로는 보수 성향을 띤다. 이들은 미국의 기성 언론이 전달하는 사실적인 뉴스보다는 인플루언서가 펼치는 그럴듯한 주장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선거 시기에 양당 후보가 경합을 벌이는 선거 토론을 시청하기보다는 특정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인플루언서의 발언을 듣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트럼프 후보와 민주당 해리스 후보 간 1차 토론 이후 2·3차 토론이 트럼프 후보 측의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림 2] 미국의 정치 인플루언서 이용률 (출처: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Digital News Report 2025>, 12쪽)

[그림 3] 뉴스 리터러시 교육 이수 경험 (출처: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Digital News Report 2025>, 24쪽)

민주 시민 역량을 증진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감소시킬 우려가 큰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유권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 데 미디어 리터러시는 핵심적 요소다. 특히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다양한 플랫폼에서 접하게 되는 정보들이 생성되는 과정이나 내용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습관을 배양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는 앞으로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당위적 차원에서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지만, 아직 미디어 리터러시는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했다.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5>에서 “뉴스 관련 교육이나 연수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미디어 리터러시가 가장 활성화되었다고 평가받는 핀란드가 34%였고, 미국 23%, 영국 16%, 프랑스 11%에 불과했다. [그림 3]에는 없지만 한국은 20%였다. 다만, 소셜미디어 이용률이 높은 35세 이하 연령대에서는 뉴스 리터러시 교육 이수 경험이 약간 높게 나타나, 미디어 리터러시가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미디어 리터러시가 실질적으로 유권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대상이 전 연령대로 확대되고, 리터러시 프로그램이 민주 시민 역량 관점에서 좀 더 체계화되어야 하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림 4] 팩트체크를 위해 이용하는 사이트 (출처: Reuters Institute for the Study of Journalism, <Digital News Report 2025>, 23쪽)

미디어 리터러시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 이외에 기술적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단순히 개인의 역량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미디어 리터러시 자원, 특히 미디어 환경 자원의 가용성으로 확대하여 개념화시킬 필요가 있다. 여기서 미디어 리터러시 자원이라 함은 개인이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계발을 촉진하고 수월하게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는 기술적 요소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가령, 개인이 허위로 의심되는 정보에 대해 팩트체크하고 싶을 때 이를 얼마나 수월하게 잘 수행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갖춰져 있는가 같은 것을 미디어 리터러시 자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팩트체크 관련하여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5> 결과를 보면, 신뢰하는 언론사, 공식적 정보 출처, 검색 엔진, 팩트체크 전문 사이트, 위키피디아 등이 미디어 리터러시 자원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들을 개인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려 역시 앞으로 중요한 논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특히,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미디어 리터러시 자원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같은 새로운 논의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