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3. 09:28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얼마 전 공개된 ‘직업별 위험 등급표’에 따르면 가장 위험도가 높은 1등급 직업으로 남성 무직자, 종군기자, 스턴트맨, 헬기 조종사 등이 꼽혔다고 합니다. 직업별 위험 등급표는 보험사들이 상해사고 통계 등을 기초로 만들어 고객을 유치할 때 참고자료로 활용하는데요. 등급이 높을수록 보험사의 입원, 수술, 상해특약 상품 등의 가입이 제한된답니다. 즉 사고가 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보험사가 기피하는 직종이라는 뜻인데요. (왜 1등급에 남성 무직자가 포함되어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이미 많은 보도가 나갔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중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기자가 위험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5월 3일 오늘은 UN총회가 제정한 ‘세계언론자유의 날’인데요. 이날은 취재현장에서 희생된 언론인들을 기리고, 표현의 자유와 그 가치에 대해 기념하는 많은 행사를 치른답니다. 가장 극적인 현장을 고발하는 종군기자. 언론자유의 날을 맞이해 역사를 빛낸 대표적인 종군기자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전설의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
로버트 카파는 헝가리에서 태어난 보도사진작가로 종군기자의 ‘전설’과도 같은 인물입니다. 유태인이었던 그는 젊은 시절, 고향인 헝가리를 떠나 사진기자로 활동하며 유럽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는데요. 그러던 중, 1936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에 보도사진기가로 참가해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공화군 병사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찍게 됩니다.
<포토 저널리즘을 태동시킨 ‘공화군 병사의 죽음’ ⓒ라이프>
참호를 박차고 돌진하려던 찰나, 총에 맞고 쓰러지는 병사의 극적인 모습을 촬영한 이 작품은 미국의 화보잡지 <라이프>에 실렸고, 이후 ‘포토 저널리즘’이라는 장르를 태동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는데요. 미국의 화보잡지 <라이프>지에서 활동하게 된 카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본격적인 종군기자로 참전,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독일 등 전쟁의 전환점이 된 장면마다 함께해 수많은 독자에게 생생한 현장을 전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의 긴박한 모습이 남아 있는 ‘그 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라이프>
참고로 로버트 카파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해 수십 장의 사진으로 역사적 현장을 담았지만, 인화 당시 실수로 인해 모든 사진이 날아가고 단 한장만 남았다고 합니다. 죽을 고생을 하고 찍었던 사진인 만큼 아쉬움이 크지만 그렇기에 딱 한장만 남은 이 사진의 가치는 더해졌는데요. <라이프>지가 ‘그 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라는 캡션을 달아 소개한 이 사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사진으로 남게 되었답니다.
<매그넘 소속 작가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전시한 ‘매그넘이 본 한국 사진전’>
종군기자로 명성을 떨친 카파는 전쟁이 끝난 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조지 로저, 데이비드 심 시모어 등 뜻이 맞는 사진작가들과 함께 ‘매그넘’이라는 포토 에이전시를 설립했는데요. 편집장으로부터의 독립, 촬영물에 대한 저작권, 작업을 선택할 자유를 표방한 매그넘은 설립 이래 반세기가 넘도록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수준 높은 사진작가들의 집단으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매그넘 소속 작가 20명이 한국을 방문해 직접 사진을 찍고, 그 작품들을 모은 ‘매그넘이 본 한국 사진전’ 전시를 가졌답니다.
‘대동강 철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막스 데스퍼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을 촬영한 많은 사진 중에, 교과서에 실릴 만큼 유명한 사진이 있습니다. 흔히 ‘한강 철교’를 찍은 사진이라고 잘 못 알려진 이 작품은 실은 대동강 철교를 찍은 사진인데요. 1950년 12월 4일 촬영된 이 사진은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에 <파괴된 다리를 건너는 피란민>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고, 목숨을 걸고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넘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의 비극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답니다.
<지난해 국내 퓰리처 사진전 행사에 초대된 막스 데스퍼>
“철교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피란민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선 사람들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 찍는 일 뿐이었다. 어찌나 추운지 군용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이 얼어 셔터를 누르기 힘들었다” 데스퍼는 이듬해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는데요. 지난해에는 국내에서 개최된 퓰리처 사진전 행사에 초대되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답니다.
‘추악한 전쟁’을 고발한 닉 우트
비록 한 장의 사진이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수십 매의 기사보다 강렬할 수 있는데요.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닉 우트의 사진이 그런 경우입니다. 미국 공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불바다로 변한 마을에서 알몸으로 뛰쳐나오는 소녀. 베트남 전쟁의 처참한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은 전 세계에 알려졌고, 이후 미국에서는 대대적인 반전시위가 일어나 전쟁을 종결 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AP통신>
사진 속의 알몸 소녀는 당시 9살이었던 킴 푹 판 타이였는데요. 네이팜탄으로 전신 화상을 입은 그녀는 옷에 불이 붙자 이를 벗어던지고 울부짓으며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이를 목격한 AP통신 종군기자 닉 우트가 그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고, 우트 기자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옮겨진 킴 푹은 17번의 대수술 끝에 극적으로 살아남았답니다. 그녀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미국의 한 방송에 출연해 다시 한번 전쟁의 비참함을 전하고, 수많은 청중들에게 반전 메시지를 전했답니다.
한반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리처드 엥겔
미국 NBC방송국 기자인 리처드 엥겔은 분쟁지역 전문 종군기자로 유명한데요. 2003년 이라크전을 비롯해 바그다드, 카불, 예루살렘, 베이루트 등 주로 최근 벌어진 굵직굵직한 분쟁 지역을 취재한 베테랑 기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리처드 엥겔이 분쟁지역을 방문할 때마다 마치 필연처럼 전쟁이 시작돼, 네티즌들은 그에게 ‘전쟁 개시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붙여주었는데요. 이런 징크스 때문인지 해당 국가 사람들은 그의 방문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 넣은 리처드 엥겔의 광화문 리포트. 이미지출처:미국 NBC 캡처>
특히 지난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온국민이 공포에 휩싸인 가운데 '전쟁 개시자가 한국에 왔다'는 소문이 국내 온라인 포털 사이트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는데요. 문제의 발단은 연평도 사건 직후 한국을 방문한 리처드 엥겔이 광화문 앞에서 리포트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온라인 상에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급기야 12월 1일 리처드 엥겔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now back up in korea. Something is going on - 한국에서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남겨 한국인들의 불안감에 확신(?)을 더해주었는데요. 다행히 연평도 사태는 전쟁으로 발전되지 않았고, 며칠 후 리처드 엥겔은 한국을 떠났다고 합니다.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종군기자가 아니었을까요?
역사를 장식한 종군기자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현장을 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닌, 전쟁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점인데요. 그들의 눈과 입을 통해 전해진 메시지는 전쟁을 그치게 하고, 사람들을 돕게 만들고, 잘못을 반성하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위험을 무릎쓰고 매번 또 다시 현장을 찾는 종군기자들의 마음 속에는 이런 사명감이 깃들어 있지 않을까요? 세계언론자유의 날을 맞아 그들의 희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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