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7. 15:23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저는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입사해서 인적역량강화팀에 근무 중입니다. 부서 명칭이 얼핏 사내 교육을 담당하는 곳 같지만 실은 언론인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입니다. 수습기자 교육, 경력 언론인들의 재교육 및 해외연수 지원 등 교육과 관련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지요. 숱한 언론인들과 함께하는 부서인 만큼 업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들도 많겠으나, 이제 막 입사한 저로선 풀어놓을 이야기 밑천이 아직 부족합니다. 정신없이 일을 배우며 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자문 하는 중이죠.
소년이 목빠지게 기다렸던 신문은..
돌이켜보면 제가 신문을 제일 열심히 읽었던 때는 중학교 1,2학년 무렵이었던 듯합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스포츠, 연예, 4컷만화 등 흥미로운 기사들을 대충 뒤적이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일간지의 연재소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좀 민망하지만 그게 수준 높은 본격문학 작품은 아니었고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무협지였는데, 그중에서도 빈번히 등장하는 성애 묘사에 혹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이었으니 조악한 삽화와 빈약한 스토리에도 그야말로 성적 상상력이 나래를 폈던 거죠. 새벽이면 부모님보다도 먼저 깨서 신문을 훑어본 뒤 가지런히 제 자리에 놓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소설이 연재되지 않는 주말에는 월요일을 목빠지게 기다릴 정도였지요. 뭐든 궁금한 게 많은 시기였으니 새벽에 일어나 세상 구경하는 게 퍽이나 재밌었을 겁니다. 무협지 연재가 끝나자 그렇게 한껏 발동했던 호기심은 곧 정치, 경제, 사회면 등으로도 옮겨갔거든요.
'기다리는 독자'에 달린 언론의 미래
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재단의 목표인 두 마리 토끼 잡기-신문산업의 발전과 저널리즘제고-가 결국은 ‘기다리는 독자’에 달렸다는 생각에서입니다.매체 환경과 산업구조가 급변하더라도 기다리는 독자들이 있다면 신문쟁이들은 언제 어디서고 신문을 찍어낼 테고, 기자들은 신나서 현장을 누빌 테니까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신문이 한 사회가 보유한 정보와 읽기문화의 총체였던 만큼 그 방대한 콘텐츠들로 중학생 시절의 저처럼 다양한(?) 욕구를 지닌 독자들을 아우를 수 있었죠. 그러나 지금처럼 전체 정보의 총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콘텐츠들이 유통되는 창구가 다양화된 시대에 신문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은 불가피한 일일 겁니다. 이런 신문의 위기에는 악순환이라 불릴 만큼 구조적인 문제들이 엮여 있지만, 여론의 다양성과 민주주의의 정상 운영을 위해 신문이 존재해야 한다는 당위 명제를 괄호로 묶고 나면, 결국 어떻게 독자들의 사랑을 되찾을 것인가라는 과제가 남습니다.
'매력적인 언론인', '매력적인 담당자'
가장 중요한 열쇠는 일선 언론인들이 쥐고 있겠지요. 독자가 손꼽아 기다리는 매력적인 기사를 써내는 겁니다.정확한 사실관계와 신뢰도는 물론 기본일 테고요.제가 인적역량강화팀에서 잠시 경험한 바로는 선진적인 탐사보도 기법이나 내러티브 기사쓰기 등을 교육하는 것이 무척 인상적으로 느껴졌지요. 향후 신문만이 수행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을 엿본 느낌이랄까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요? 피 말리는 취재 경쟁에 일분일초를 다투는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요? 맞습니다. 저야 현장의 어려움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들을 들었을 따름이지요. 그런데 그런 거리 감각이 언론인들의 인적 역량 계발을 지원하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업계의 현실과 관행을 넘어 현재 언론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거지요. 누구 못지않은 애정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대표해서요.
이전에 무협소설이 소년의 성적 호기심을 발동시켰듯, 좋은 기사들이 독자들의 정치적 상상력을 고무하길 기대합니다. 상생의 공동체를 향해서 말이지요. 그러자면 저부터 공부할 것들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장 필요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보다 먼저 애정을 지닌 독자로서 한결같은 지지를 보낼 것을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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