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20. 15:21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지난 16일, 언론계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인터넷 신문 <허핑턴 포스트>의 데이비드 우드 기자가 ‘2012년 퓰리처상-미국 국내 보도 부문’의 수상자가 된 것입니다. 지면을 발행하지 않는 온라인 매체가 국내 보도 부문에서 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군요. 뿐만 아니라 정치전문 인터넷 언론인 <폴리티코>의 시사만화가 매트 우에커 작가는 시사만화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허핑턴 포스트의 수상을 두고 ‘오프라인 정론지가 독점했던 퓰리처상의 구도가 깨지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물음표가 하나 떠오릅니다. 도대체 퓰리처상이 어떤 상이기에 이렇게 화제가 되고 있을까요? 이름은 익숙하지만, 막상 설명하기는 힘든 상이 퓰리처상입니다. 오늘은 퓰리처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황색저널리즘에 지친 신문왕의 100만 달러로 시작한 ‘퓰리처상’
‘퓰리처상’은 저널리스트이자 신문 발행인이었던 ‘조셉 퓰리처’의 이름을 본떠 1917년 탄생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보도, 문학, 음악상으로 꼽히고 있죠. 매년 4월, 미국 콜롬비아대학 퓰리처상 위원회에서 직전 해에 나온 작품 중 추천받은 후보작을 대상으로 저널리즘 14개 부문, 문학•음악 7개 부문 등 총 21개 부문에서 수상작을 발표합니다. 문학•음악 부문은 미국시민만, 저널리즘 부문은 미국 신문사에서 활동한 기자들만 후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수상자는 상금 7500달러를 받게 되는데, ‘공공보도’ 부문 수상자는 특별히 금메달을 받습니다.
퓰리처는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이민자입니다.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해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던 퓰리처는 <베스틀리헤 포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매일 16시간씩 일에 몰두하며 승승장구한 퓰리처는 기자에서 발행인으로 고속 승진한 뒤, 1883년 뉴욕의 일간지 <월드>를 인수하였습니다. <월드>는 발행부수가 100만 부를 넘는 인기지로 거듭났습니다.
하지만 퓰리처의 선정적인 보도방식은 비판대상이었습니다. 라이벌 언론인 W.R.허스트의 <뉴욕저널>과 펼쳤던 치열하면서도 지저분한 공방이나 1898년 메인호 사건 당시 보여주었던 안보상업주의적 태도로 많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 때 생긴 말이 ‘옐로우 저널리즘(황색 저널리즘)’입니다. 언론의 과도한 선정주의를 일컫는 말이죠.
말년의 퓰리처는 끔찍한 두통, 노이로제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시력을 잃게 됩니다.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퓰리처는 그 동안의 인생을 돌아보며 회한을 느끼게 되죠. 그는 “공공에 대한 봉사, 문학, 교육 발전 등에 써 달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191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6년 뒤, 마침내 퓰리처상이 탄생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자에 한국인이 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퓰리처상 저널리즘 부문에는 ‘미국 신문사에서 활동한 기자’가 후보에 오를 수 있습니다. 즉 해외 국적을 가진 기자라도 미국 언론에서 활동한다면 퓰리처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폭탄이 투하된 마을을 뒤로 하고 울부짖으며 달려 나오는 베트남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전쟁의 공포’를 찍은 후잉 콩 우트(Huynh Cong Ut) AP통신 기자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 중에 한국인 기자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지금까지 3명의 한국인 기자가 퓰리처상 수상자가 되었죠.
첫 번째 수상자는 2000년 탐사보도 부문에서 상을 받은 AP통신의 최상훈 기자입니다. 최 기자는 ‘노근리사건’을 집중 취재하여 미군의 노근리 학살을 밝힌 공로로 영예의 수상자가 되었죠. 그는 이 후 뉴욕타임스의 국제판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으로 자리를 옮겨 한국 관련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2002년에는 뉴욕타임스에서 근무하는 이장욱 기자가 2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그 것도 2개 부문의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죠. 이 기자는 9•11테러 당시의 처참함을 담은 ‘테러리스트의 뉴욕 공격과 그 후’로 ‘속보뉴스 사진부문’에서,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현장에서 찍은 사진으로 ‘기획 사진 부문’의 수상자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
<이장욱 기자가 찍은 9.11 테러 사진>
그리고 작년에 시카고 선타임스의 사진기자 존 김(한국명 김주호) 기자가 ‘지역보도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김 기자는 동료기자들과 함께 시카고에서 발생한 총격 살인사건을 토대로 시카고 지역 총기사건을 1년 간 심층 취재했습니다. 시카고 선타임스 저널리즘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는 김 기자 팀이 처음이라는군요.
한국인 기자는 아니지만 한국과 관련된 퓰리처상 수상자가 있습니다. 1951년 ‘사진 부문’에서 상을 받은 막스 데스퍼 기자입니다. 당시 AP통신 사진기자였던 막스 기자는 철골 잔해만 남은 대동강 철교를 넘는 피난민들을 담은 ‘대동강 철교를 지나는 사람들’을 찍었습니다. 이 사진은 6•25전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아직까지 우리들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막스 데스퍼 기자의 '대동강 철교를 지나는 사람들'>
시대와 함께 퓰리처상도 변한다
처음 제정되었던 1917년 당시 퓰리처상은 저널리즘 3개 부문, 기타 7개 부문 총 10개 부문이 있었습니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저널리즘에서만 11개 부문이 추가되었네요. 언론 환경이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퓰리처상의 선정기준인 ‘탁월함’만은 그대로지만요.
가장 큰 변화는 2006년에 있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인터렉티브 그래픽, 동영상 등 온라인 물을 시상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신문사 웹페이지에 반드시 출판된 작품’에 한정했지만요. 미디어의 지각변동에 대응하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한 퓰리처상은 마침내 2009년, 온라인 매체에도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또한 이번 퓰리처상 ‘속보뉴스 사진부문’에 미국이 아닌 프랑스 AFP통신사의 작품이 선정되었습니다.
퓰리처상 이사회는 언론인과 학자, 예술가 등 18명으로 구상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중요한 저널리즘 환경의 변화를 주시하며, 필요에 따라 수상 규정을 개정해 현실 저널리즘을 선도했습니다. 2010년에는 ① 멀티미디어적 기사 양식을 장려하고 ② 한 기사에 대한 수상 가능 기자 수를 5명으로 늘린다는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다양한 표현양식을 권장한다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개정이죠.
해외 언론에게는 좀처럼 개방하지 않는 보수적인 모습이 아쉽긴 하지만, 퓰리처상은 꾸준히 미디어계의 지각변동을 흡수하면서 권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록 해외 언론이어서 퓰리처상을 직접 받을 순 없으나, 우리 언론도 퓰리처상을 받을 만큼 심층적이고 다양한 결과물을 많이 내 놓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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