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이어진 미국 신문들의 '소설쓰기'

2012. 5. 7. 16:2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지난 포스팅(http://www.dadoc.or.kr/452)에서 다독다독은 세상을 뒤흔든 특종보도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바람직한 보도로 세상을 바꾼 특종의 이면에는 사실과 다른 ‘오보’가 있습니다. 그 오보 때문에 애꿎은 피해자가 생기는 것은 물론, 전쟁이 일어나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죠.

 

오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듭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는 오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용이 그릇되거나 틀린 보도기사. 좁은 의미로는 사실과 다른 보도, 부정확한 보도, 잘못된 예측보도, 신빙성 없는 보도 등을 지칭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허위·날조·과장·불공정·윤색 보도, 기자의 판단이나 해석상의 착오에 따른 오도보도(misleading report), 그리고 조판·교정과정에서의 단순한 실수(objective mistake)에 따른 틀린 보도 등을 모두 포함한다.


많은 보도가 오보에 포함되는 만큼, 그 개수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수많은 오보 중, 꼭 알아둘 필요가 있는 오보 몇 가지를 추려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전쟁으로 이어진 신문들의 이구동성

 

라디오도, TV도 없던 시절, 즉 뉴스를 전할 수 있는 미디어가 신문뿐이던 시절이 있습니다. 그만큼 신문의 파급력이 막강했는데요, 이런 힘을 이용해 신문이 전쟁을 주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것도 정당한 보도가 아닌 오보, 정확히 말하면 ‘조작보도’를 통해서 말이죠.

 

1898년 2월,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해군 전함 메인 호가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침몰했습니다. 미 해군 266명이 사망한 이 폭발 사고를 두고, 미국 언론은 “쿠바 주둔 스페인군의 소행”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스페인은 쿠바 영유권을 놓고 다투는 중이었거든요.

 

 

 

<미국 해군 전함 메인 호의 오보 사건>

 

 


미국 언론을 장악한 두 거두, 다독다독에서 소개해드린 바 있는(http://www.dadoc.or.kr/438) W.R.허스트와 조지프 퓰리처는 전쟁기사가 신문 판매부수를 경이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습니다. 이들은 전쟁을 만들기 위해 스페인이 강압적인 식민통치를 통해 쿠바인들을 핍박한다는 내용의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메인 호 폭발사고가 일어나자 “메인 호를 기억하라!”라는 노래까지 만들며 복수를 부추겼습니다.

 

결국 미국정부는 여론에 따라 두 달 뒤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했고, 4개월에 걸친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4달 간 이어진 전쟁 기간 중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후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메인 호는 보일러실 사고에 의해 폭발했습니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지 않고 자극적인 보도를 쏟아낸 언론의 오보가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결과를 낳은 것이죠.

 

 

‘보도’ 대신 ‘소설’을 쓴 기자들

 

신문 독자라면 기자가 취재를 통해 사실에 입각해서 기사를 쓴다고 믿으시겠죠? 그런데 기자가 허위로 취재하거나 아예 취재하지 않고 기사를 쓴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언론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을 깜짝 놀라게 했던 사건, ‘지미의 세계 사건’과 ‘제이슨 블레어 사건’입니다.

 

1980년 9월, 워싱턴포스트에 <지미의 세계>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자넷 쿠크 기자가 헤로인에 중독된 8살 흑인소녀 지미를 주인공으로 쓴 탐사보도였습니다. 쿠크 기자는 지미와 지미의 가족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생생함이 살아있는 문장으로 기사를 썼고, 기사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녀는 이 보도로 198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완벽한 오보였습니다. 지미를 보호해야 한다며 소재지를 알려달라는 부탁을 자넷 기자가 거부한 점을 이상하게 여긴 워싱턴포스트가 자체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냈죠. ‘헤로인에 중독된 8살 지미’라는 인물 자체가 허구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퓰리처상 발표 이틀 뒤에 4개 면에 걸쳐 사과와 함께 진상을 밝히는 기사를 썼지만, 미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허위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자넷 쿠크 기자>

 

 


2003년, 또 하나의 사건이 미국 언론계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2003년 3월, 이라크 파병 미군 제시카 린치 일병이 납치되었다가 구출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 제이슨 블레어 기자는 제시카 일병의 아버지를 인터뷰 한 기사를 썼습니다. 전 세계의 폭발적인 관심에 맞물려 이 기사는 엄청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보도 역시 오보였습니다. 애초에 제이슨 기자는 아버지를 인터뷰 한 사실이 없었던 겁니다. 깜짝 놀란 뉴욕타임스는 제이슨 기자가 지금까지 쓴 기사들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가 2002년 10월 이 후 쓴 70여 건의 기사 중 절반이 허위보도인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제이슨 기자는 물론, 편집장과 부국장이 모두 뉴욕타임스를 떠나야 했습니다. 기자 개인뿐만 아니라 언론에게 큰 상처를 입힌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뉴욕타임스 제이슨 블레어 기자>

 

 

 

‘대통령 듀이’ 기사를 보며 박장대소 한 트루먼 대통령

 

선거보도, 그 중에서도 여론조사보도는 ‘오보를 부르는 보도’라는 말이 있을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보가 많았습니다. 이 문제만 다루는 논문이나 단행본도 수십 권에 이를 정도라는군요.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면서, 과학적 여론조사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보도입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는 공화당의 토머스 듀이와 민주당의 해리 트루먼이었습니다. 뉴욕 주지사로서 많은 인기를 얻었고, 4년 전에는 근소한 표 차이로 루즈벨트에게 패했던 듀이는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또 다른 증거도 있었습니다. 당시 활동하던 유력 정치부 기자들이 모두 듀이의 승리를 예측했고, 여론조사에서도 듀이가 15% 포인트 정도 앞서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거든요.

 

이제는 모두 예측하셨겠죠? 승자는 트루먼이었습니다. 정확한 여론조사로 명성 높았던 ‘갤럽’이 처음으로 예측에 실패한 것입니다. 난감한 건 신문사였습니다. 듀이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했던 시카고 트리뷴지는 아예 ‘듀이가 트루먼을 누르다(DEWEY DEFEATS TRUMAN)’라는 보도를 1면 머리기사로 미리 쓸 정도였죠. 이 신문을 들고 트루먼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은 역사적인 신문오보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길이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오보를 들고 박장대소하는 트루먼 대통령>

 

 

 

신문 특성 상, 오보를 전혀 내지 않을 순 없습니다. 최대한 오보를 줄이도록 사실에 기반을 두어 취재해야 하고, 오보를 했다면 솔직하고 확실하게 사과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책이겠죠. 독자 입장에서는 신문에 실린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지 말고 비판적으로 사고(http://www.dadoc.or.kr/446 )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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