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에서 '박종철'까지, 세상을 뒤흔든 신문보도

2012.05.04 12:4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잠에서 깬 뒤, 하품을 하며 식탁에 앉아 신문을 폈다. 순간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이 번쩍 떠졌다. 1면 톱기사는 순식간에 주변 사람,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나라가 발칵 뒤집히고, 결국 기사의 가해자는 응분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목소리에 정치권은 새로운 입법안을 만들기 시작한다...”

 

어떤가요? 신문에 실린 기사 하나가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그 기사를 쓴 기자는 물론 독자 여러분께도 쾌감을 안겨 줄 것 같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기는 힘들지만 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대표적 사례가 언론, 그 중에서도 신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특정 언론에서만 다룬 중요한 기사를 ‘특종기사’라고 합니다. 특종기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도 하지만, 나아가 한 나라를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세상을 바꾼 특종 보도’ 몇 가지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대통령을 바꾸고, 전쟁을 종식시킨 특종 보도

 

신문에 큰 관심이 없는 분들이더라도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서는 한 번 쯤 들어보셨겠죠? 1972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의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소에 불법 침입한 죄로 남자 5명이 체포당했습니다. 단순 범죄인 줄 알았던 이 사건을 주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 기자와 칼 번스타인 기자입니다. 두 사람은 끈질긴 추적 끝에, 이 사건이 닉슨 행정부가 대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을 도청한 사실이라는 점을 밝혀내는 데에 성공합니다. 결국 닉슨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임기 중 사퇴하게 되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통령을 끌어내렸다면, ‘미라이 사건 특종 보도’는 베트남전 종식을 앞당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68년 3월 중순, 베트남 남부 미라이마을에서 미군이 주민 수 백 명을 학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철저하게 은폐된 이 사실을 이듬 해 11월, 세이모어 허쉬 기자가 <디스패치 뉴스>를 통해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그의 보도는 당시 서서히 타오르던 반전 여론에 불을 지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937년생인 허쉬 기자는 아직도 <뉴요커>기자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고 하네요.

 

 

 

 

 


세상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스캔들 특종 기사도 한 편 소개시켜드릴게요. 1998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아넣었던 ‘르윈스키 스캔들’을 터뜨린 매체가 있습니다. 선물가게 점원 매트 드러지가 만든 <드러지 리포트>였죠. 주목할 만 한 점은 <드러지 리포트>가 인터넷신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이지만, 미디어 환경이 바뀌리란 사실을 예견 해 준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는답니다.

 

 

속도보다는 질! 세상을 움직인 탐사보도

 

특종 보도는 속도 경쟁입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신문과, 그 보다 더 많은 기자가 있는 상황에서, 타사가 모르는 정보를 입수했다면 빨리 터뜨려야 했죠. 그런데 최근에는 속도에서 뒤처지더라도 깊이 있게 파고든다면, 그 역시 특종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이렇게 ‘속도 대신 깊이’를 표방한 보도가 바로 탐사보도입니다.

 

탐사보도의 서막을 연 사건은 한 기자의 죽음입니다. 1976년 2월, <애리조나 리퍼블릭>지의 기자 돈 볼레스가 자신의 자동차에 설치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면서 사망했습니다. 그는 지역 마피아를 취재하고 있었죠. 돈 기자는 차를 타기 직전 주차장에 “그들이 날 죽일 것이다. 존(John)을 찾아라”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지역 동료기자들과 예비 언론인들은 이를 토대로 추격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범인을 밝혀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77년에 ‘미국 탐사보도협회(IRE)’가 창립되었습니다.

 

 

 

 

 

 

하지만 돈 볼레스 사건 이 전에 탐사보도를 선보였고, 거대기업을 무너뜨린 기자가 있습니다. <매클루어 매거진>에서 활약한 여기자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입니다. 당시 미국 석유 산업을 독점하던 회사가 석유재벌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입니다. 타벨은 1만 2천 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읽고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하며 1902년부터 2년에 걸쳐 스탠더드 오일과 독과점의 폐해를 폭로합니다. 어마어마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온 이 보도 때문에 스탠더드 오일은 ‘기업 해체 명령’을 받게 되었고, 반독과점법이 제정되었답니다.

 

 

 

 

 


우리나라 기자들의 활약은 없었을까?

 

지금까지 해외 기자들의 활약상 5가지를 살펴보았는데요. 우리나라 언론인의 활약은 없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우리나라 신문도 많은 특종을 발굴해냈습니다. 그 중에는 큰 변화를 이끌어 낸 보도도 있었고요.

 

2년 전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은 수많은 특종 기사를 쓴 베테랑 기자였습니다. 특히 <합동통신> 기자 시절인 1961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케네디 대통령이 공식 회담 외에 조용히 협상을 맺었다는 ‘박정희-케네디 밀약’을 특종 보도했습니다. 비록 이 보도가 신군부 등장을 막진 못했지만, 우리 근대사를 복원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군요.

 

 

 

 

 

 

반면 1987년 ‘박종철 치사 사건’ 보도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도화선 역할을 했습니다. 공안 당국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입니다. 한 검찰 간부의 “경찰, 큰일 났네” 한 마디를 들은 신 기자는 김두우, 허상천 기자와 함께 이 사건을 기사화했습니다. 이어 동아일보가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전모를 상세히 파헤쳤습니다. 두 신문사의 활약은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골자로 한 6.29선언이 나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문이 예전같지 않다고 합니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숨겨지고 잊혀진 진실을 발굴하기 위해 발로 뛰는 기자들이 있는 한, 신문은 세상을 바꾸는 기폭제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문과 함께 바꾸어 나가는 세상은 이 전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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