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해 목숨까지 던진 기자들 살펴보니

2012. 5. 29. 10:12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의회의 브리핑실 이름은 ‘안나 폴리콥스카야 룸’입니다. 짧고 쉬운 이름도 많은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안나 폴리콥스카야는 2006년 괴한의 총에 피살된 러시아 기자입니다. 그녀가 러시아 군의 고문 실태를 폭로하는 기사를 송고하기 며칠 전이었죠. 청부 살인이 명백해 보였지만, 당국은 배후를 밝히는 데 소홀했습니다.

 

전세게의 기자와 지식인이 성명을 발표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그녀의 죽음을 기리고, 러시아 정부에 항의했습니다. 2008년 6월 4일, 유럽연합 출입기자단 격인 국제기자협회(API)와 유럽 의회 의원들은 브리핑실 이름을 ‘안나 폴리콥스카야 룸’으로 붙이는 데 합의했습니다. “언론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기자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입니다.

 

 

 

[유럽의회의 브리핑실 ‘안나 폴리콥스카야 룸']

 

 

기자는 진실과 마주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기 위해 때때로 죽음을 불사합니다. 진실을 숨기려는 이들에게 기자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취재 과정에서 정말 목숨을 잃는 기자가 적지 않습니다. 오늘 다독다독에서는 취재를 위해 목숨을 던진 기자들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목숨을 잃은 기자들

 

기자들의 희생이 가장 큰 장소는 역시 전쟁터입니다. <런던 타임스>의 W.H.러셀이 크림전쟁을 취재한 이래 ‘종군기자’ 라는 이름으로 전쟁터를 누빈 기자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사망한 기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언론인은 총 69명입니다. 그동안 한국전쟁 중 목숨을 잃은 기자는 18명이라고 알려졌는데요, 지난 2006년 중국 신화통신 기자 5명의 사망이 공식 확인되면서 총 23명으로 정정되었습니다. 베트남전에서는 기자 63명 죽었다는군요.

 

베트남전보다 큰 규모의 충돌은 이 후 없었지만, 국지전에서 기자들의 희생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1991~1995)에서 49명, 알제리 내전(1993~1996)에서 5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보다 많은 기자들이 죽은 전쟁 현장이 바로 이라크입니다. 2003년 이 후 이라크에서 죽은 기자들의 숫자는 약 100명에 이릅니다.

 

 

 

 

[시리아에서 사망한 마리 콜빈 기자와 레미 오클리크 기자]

 

 

최근에는 시리아에서 기자들의 사망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도 ‘애꾸눈 종군기자’로 유명한 마리 콜빈 기자와 ‘2011 올해의 세계보도사진 일반뉴스부문’에서 상을 받은 레미 오클리크 기자가 시리아 정부군의 로켓포에 숨졌습니다. “시리아 땅을 밟은 기자는 누구든 죽이고 테러집단과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처럼 하라“고 시리아군 장교들이 명령했다고 하니, 시리아 내전 사태가 완전히 끝나기 전까지 안타까운 죽음은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명과 맞바꾼 진실 보도

 

전쟁 현장이 아닌 곳에서도 목숨을 잃은 기자가 있습니다. 특히 언론 자유가 보장되지 않은 나라일수록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죠.

 

 

 

 

[안나 폴리콥스카야 기자]

 


안나 폴리콥스카야 기자의 모국인 러시아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푸틴 대통령 집권 이 후 러시아 기자 21명이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안나 기자는 죽기 전에도 몇 차례 체포 당하는가 하면 독극물에 중독된 적도 있다는군요.

 

마약 문제가 심각한 중남미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국제 마약 거래 소굴로 알려진 콜롬비아에서는 1980년대에만 46명이 갱단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도 기자 21명이 납치당하거나 죽었다고 합니다. 멕시코는 더 합니다. 지난 해에만 11명의 기자가 살해돼 국제기자연맹으로부터 ‘가장 많은 언론인이 희생된 국가’라는 달갑잖은 타이틀을 받았습니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서도 기자들은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시에라리온에서 기자 11명이 학살당하는가 하면, 중국에서는 폐식용유사건을 보도한 기자가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미얀마 사태 때는 나가이 겐지 AFP 기자가 정부군이 쏜 총탄에 맞았죠.

 

 

 


[2007년 미얀마 사태 당시 총에 맞고 숨진 나가이 겐지 AFP 기자]

 

 

기자의 죽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해외 언론에 비해 우리나라 언론인은 위험 지역 취재를 기피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무력 분쟁이나 자연재해 현장을 취재하다가 목숨을 잃은 기자가 적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중 목숨을 잃은 기자 23명 중 한국인으로는 서울신문의 한규호 기자가 있습니다. 한 기자는 여수․순천 사건, 4․3사건, 지리산 토벌작전 등을 취재한 베테랑 기자입니다. 그는 6월 25일 개성과 임진강을 연결하는 서부전선으로 나가 “개성 전방 80km에 긍한 지역에  소위 인민군 2개 사단과 경비대 2개 여단의 병력을 투입시킨 괴뢰집단은…”으로 시작한 기사를 마지막으로 의정부 근처에서 사살되었습니다.

 

 

 

 

[파주 통일공원에서 열린 종군기자 추념행사에서 헌화하는 원로 언론인]

 

 

판문점 휴전회담을 생생히 취재하며 명성을 떨친 최병우 기자도 분쟁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최 기자는 <조선일보>와 <한국일보>를 거쳐 1958년 <코리안타임스> 편집국장으로 부임했습니다. 당시 중국과 대만 간에 무력분쟁이 한창이었는데요, 최 기자는 최전방인 금문도에서 취재하던 중 동료 외국인 기자 6명과 함께 실종되었습니다.

 

 

 

 

[최병우 기자의 죽음을 기리는 경향신문 기사(1958년 10월 10일)]

 

 

언론이 권력에 부합하는 기사만 쓴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켠에는 그러한 권력에 맞서기 위해 목숨을 던지고 취재에 열중하는 기자가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들을 따라갈 언론인이 있기에, 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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