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을 인터뷰하니

2012. 6. 5. 13:4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작년 10월 24일 스티브 잡스 전기가 나오자마자 허겁지겁 읽었다. 925쪽에 이르는 두꺼운 책을 읽는데 전혀 지루하거나 막힘이 없었다. 왜 아이폰은 배터리를 꺼내서 충전할 수 없는가, 아이팟은 왜 아이튠스를 통해서만 음악을 넣거나 지울 수 있는가, 왜 애플의 모든 기기 이어폰은 흰색인가.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스티브 잡스가 되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 그 책 안에 모두 있었다.





1시간 만남 위해 비행기로 13시간 이동


그의 히피적인 생각과 생활방식이 어떻게 최첨단의 IT 테크놀로지와 만나 세계 최고의 기업,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를 인터뷰해야만 해결되는 궁금증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어느 누구와도 인터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 인터뷰였다. 그는 그렇게 까다롭다는 스티브 잡스로부터 전기 집필을 직접 요청받은 인물이며, 잡스 생전에 50번 가까운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썼다. 잡스와 관련있는 인물 100여명과의 인터뷰도 이 책 안에 녹아 들어있다.


월터 아이작슨은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된 작년 11월 초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 언론사 특파원들과 기자간담회를 열었었다. 이때 국내 신문 방송사에 아이작슨의 인터뷰가 모두 실렸다. 그러나 당시의 아이작슨 인터뷰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충분히 풀어주지 못했다. 아이작슨을 직접 만나 스티브 잡스는 물론이고, 전기 작가로서 아이작슨 본인에 대해 묻고 싶었다.


 아이작슨은 신문기자로 시작해 타임지 편집장과 CNN의 CEO까지 지낸 인물이다. 현재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아스펜 연구소(The Aspen Institute)의 소장이다. 스티브 잡스 전기 한국판을 펴낸 민음사에 저자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 지난 2월 초였다. 그러나 워낙 아이작슨이 바쁜 사람이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인터뷰가 성사될지도 모르고 성사된다 한들 언제 이뤄질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작슨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우선 그가 쓴 책들을 구해서 읽어야 했는데, 벤저민 프랭클린 전기인 <인생의 발견: 벤저민 프랭클린>은 품절되어 구할 수 없었고 키신저 전기는 아예 국내 번역 출판되지 않았다. 프랭클린 전기는 국내 번역 출판사인 21세기북스에 연락해 어렵사리 구할 수 있었다. 프랭클린 전기와 아인슈타인 전기, 스티브 잡스까지 아이작슨이 쓴 전기들은 모두 700쪽이 넘는 육중한 볼륨을 갖고 있었으나, 어렵지 않게 술술 읽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쉬운 단어들로 복잡한 현상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아이작슨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작슨이 쓴 세 권의 전기를 읽었으나 아이작슨에 대한 공부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잡스 전기가 나온 직후 쏟아진 수많은 외신 인터뷰 기사들이 있었고, 아이작슨 본인이 타임지나 뉴욕타임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등에 기고한 글들이 있었다. 인터넷에서 이런 자료들을 찾아 인쇄하니 거의 1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 됐다.


민음사에서 연락이 온 건 인터뷰를 요청한지 거의 두 달이 다 된 3월 말의 일이었다. ‘4월 10일 오후 2시부터 1시간’이었다. 최소 2시간을 요청했으나 아이작슨 쪽은 1시간 밖에 허락하지 않았다. 출판사측은 “간곡하게 1시간30분이라도 달라고 설득했으나 지금 어느 나라 언론과도 인터뷰를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고 모든 스케줄을 30분 단위로 소화하고 있어서 최대 1시간 밖에 내줄 수 없다고 한다”고 전해왔다.  


월터 아이작슨과 1시간 인터뷰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13시간을 날아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그만큼 기사 가치가 있는가? 1시간 만에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대답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놓고 부 회의에서 논의한 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터 아이작슨 인터뷰는 할 만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스티브 잡스 전기가 국내에서만 55만부 팔린 초 베스트셀러이며, 아직도 잡스는 뉴스에서 사라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그렇게 복합적이고 다혈질인 잡스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 전기를 쓴 아이작슨이란 인물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1시간 밖에 안되는 미국 현지 인터뷰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보다 더 크게 작용했다.


인터뷰에 주어진 시간이 1시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통역은 쓸 수 없었다. 통역을 쓰면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진은 현지에 있는 프리랜서 사진가를 고용해 촬영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아이작슨 외신 인터뷰 자료를 읽기 시작했는데, 그 어마어마한 양에 비해서 읽는 데 든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 전기를 쓴 인물’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이 외신들도 비슷비슷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터뷰들을 읽다보니 한 편으로는 아이작슨 인터뷰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이미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한 사람으로부터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숱한 아이작슨 인터뷰 기사 중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뉴올리언스 지역 신문인 ‘더 타임스 피커윤(The Times Picayune)’의 인터뷰였다. 작년 11월 아이작슨이 그의 고향인 뉴올리언스를 방문해 연설하는 장면 스케치로 시작하는 이 기사엔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작가는 우리 고장의 아들 월터 아이작슨”이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이 기사는 아이작슨의 아버지 어윈 아이작슨의 코멘트부터, 그의 어렸을 적 친구들과 사촌들의 코멘트가 다양하게 붙어 있었다. 아이작슨 개인에 대한 궁금증을 꽤 해소해주는 기사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아이작슨은 어렸을 적 아파트 창문에서 낚싯대에 생굴을 매달아 관광객들 머리 위로 던지며 놀았던 장난꾸러기였다. 이 신문은 또 그의 고향 단골 식당과 방문지, 즐겨 찾는 장소, 가장 최근에 읽은 책들까지 소상하게 소개했다. 이런 내용들에서도 물어볼 것을 찾아 정리하니, 질문이 40개 가까이나 됐다. 이 질문들을 중요한 순서대로 정리했다. 미처 다 묻기 전에 “이제 그만 합시다”라고 말해버리면 끝이니까.

 

10분이나 늦게 나타난 아이작슨


아이작슨이 근무하는 아스펜 연구소는 워싱턴 DC 한 가운데의 듀퐁 서클(Dupont Circle) 근처에 있었다. 이 건물 7층에 있는 연구소에 올라가니 그의 비서 패트리샤 진둘카가 우리 일행을 맞아줬다(이름으로 보아 그녀 역시 아이작슨과 같은 유대인인 듯 했다).


비서는 우리를 건물 남쪽 끝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에 들어선 나와 사진작가는 동시에 얼굴을 쳐다보며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벽의 두개 면이 모두 통유리로 된 회의실에는 테이블과 의자, 칠판이 전부였고 아무런 장식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 촬영에는 최악의 장소였다.


게다가 아이작슨은 10분이나 늦게 나타났다. 조선일보 주말 섹션 <Why?> 1면을 계획하고 간 나로서는 입이 바짝 마르는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보통 <Why?> 1면 인터뷰는 2면의 3분의 2까지 이어지며, 원고 길이는 200자 원고지 40~42매나 된다. 이 정도의 원고를 쓰려면 보통 인터뷰 상대가 100매 이상의 이야기를 해주어야 그것을 압축할 수 있다. 그런데 13시간을 날아온 내 앞에 놓인 시간은 이제 달랑 50분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이 거물 저널리스트와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나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오른손을 바지춤에 쓱 닦고 아이작슨과 악수를 나눴다.


아이작슨은 키가 5피트 7인치, 즉 170cm로 서양인 치고 작은 편이었다. 올해 만 60세인 그는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만 봐도 매우 신중하고 보수적인 인물로 느껴졌다. 그는 끈을 묶는 구두를 신었고, 목이 긴 검정 양말과 감색 정장, 푸른색 셔츠에 스트라이프 무늬가 있는 청색 넥타이를 맸다. 멋지게 센 머리는 얌전하게 빗어넘겼다.

 




50분간의 인터뷰는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미국 남부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남부 억양을 거의 쓰지 않았고, 나를 배려해서인지 정확한 발음으로 비교적 천천히 말했다. 인터뷰를 모두 녹음하긴 했으나 대화를 알아듣고 질문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었다.


마지막 5분 열변 “잡스에게 배우라”


와이드 인터뷰를 할 때 상대방이 ‘제목이 될 만한 말’을 다섯 번 정도 하면 속으로 안심이 된다. 인터뷰가 나쁘지 않게 진행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작슨은 인터뷰 중반까지 별로 감동적인 코멘트를 주지 않았다.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 수없이 반복된 단어들, 이를테면 creative, ingenious, imaginative, intensely focused, brutally honest 같은 단어들이 여러 번 그의 입에서 나왔다. 그의 대답은 길지 않았고, 나의 질문이 길어지고 있었다.


인터뷰는 내가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어땠는가”라는 질문을 했을 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경험상 동양인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인생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고, 서양인들은 매우 현실적으로 말한다. 아이작슨 역시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대답했다. 그런 대답을 원했던 것이 아니어서 “인생무상 같은 것을 느꼈는가”라고 물어야 했는데, ‘인생무상’을 영어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Did you feel like life is nothing?”이라고 물었는데 그가 용케 알아듣고 “우리는 모두 세상에 잠깐 머물다 갈 뿐이다. 우리는 선대의 사람들이 이뤄놓은 것을 거저 얻었다. 우리도 후대를 위해서 무언가 이 세상에 기여해야 한다”는 대답을 했다. 비로소 인터뷰가 풀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어느덧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마지막 질문을 해야 했다. 나는 “한국에서만 책이 55만권이나 팔렸는데 너무 두꺼워서인지 다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책을 사고 읽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그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겠나”고 대답하고 말았다. 다급해진 나는 ‘please’라는 단어를 써가며 재차 물었다. 그러자 아이작슨은 약 5분간 열변을 토했다.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그가 얼마나 독창적인 길을 개척한 사람인지, 우리는 그의 삶으로부터 어떤 것을 배울 수 있는지 쉼 없이 그리고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그가 말을 마친 뒤 일어서는 순간, 이 인터뷰가 화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작슨이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실감했다. “내가 들을 준비가 돼있다면, 사람들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 방송> 6월호 중 조선일보 기획취재부 기자 한현우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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