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작가가 살펴본 종이책과 전자책의 미래

2012. 6. 8. 10:58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타임머신을 타고 10년 후 미래를 잠시 탐방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 번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얼굴도 궁금할 테고, 가족의 미래도 알고 싶고, 친구들의 생활도 엿보고 싶겠지요. 그런데 그것들만큼이나 궁금한 것은 바로 책의 미래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종이책의 소멸을 예고하는 무시무시한(제 입장에서는요) 예언들이 과연 적중했을까 여부가 심히 궁금하네요.


인터넷 덕분에 다시 시작된 활자 시대?

여러분은 종이책의 미래를 어떻게 예견하시나요? 환경 문제 등을 거론하며 전자책이 완전히 종이책을 대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래학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전자책 시장의 성장세에 관한 기사를 내보내지요. 실제로 전자책 이용자는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대기업까지 전자책시장에 뛰어드는 걸로 봐서 전자책의 미래는 상당히 낙관적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 의견도 만만치가 않네요. ‘현존하는 천재 작가’라 불리는 움베르토 에코는 <책의 우주>라는 대담집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동안 우리는 이미지의 문명으로 진입했다고 믿고 있었지만 오히려 인터넷 덕분에 알파벳의 시대로 되돌아왔다고. 컴퓨터로 인해 우리는 다시 구텐베르크의 우주로 들어왔으며, 따라서 이제 모든 사람이 글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이지요. 에코는 계속해서 주장합니다. 컴퓨터로 글을 읽으려면 전기가 필요하고 따라서 욕조 안에서나 침대에 누워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종이책은 여전히 글을 읽기 위한 가장 유연한 도구라고요. 책은 수저나 망치, 바퀴, 가위처럼 일단 발명되고 나면 더 나은 것을 발명할 수 없는 그런 물건 중 하나라고 말이지요. 




저 역시 종이책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읽기’를 실현하는데 가장 유연한 도구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지만 한 권의 책은 단순한 하나의 상품이 아니거든요. 한 권의 책에는 하나의 추억과 사연이 담겨있습니다. 서점을 서성이며 그 책을 선택하고 구입하여 집에 돌아 온 뒤 은은한 스탠드 조명에 기대 한 장 한 장 책을 넘겼을 때의 작은 설렘이 깃들어 있습니다. 행간의 의미를 곱씹으며 여백에 나만의 느낌을 갈무리해두었을 때의 진솔한 손때가 묻어 있습니다. 각각의 책에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친구의 추천평이, 나만의 비밀 글귀가 새겨져 있어 그 자체로 삶의 역사조각이기도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종이책 읽기를 권함>의 저자 김무곤 교수는 종이책 읽는 과정을 한 편의 ‘연애’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렇고말고요.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지요. 한 권의 책을 읽는 과정은 낯선 이를 처음 만나 서로 알아 가고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너무도 흡사하니까요. 책의 서론, 본론, 결론을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듯 한 사람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대의 내면을 서서히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한 평생 책을 사랑하고 탐닉했다 고백하는 김무곤 교수는 같은 책에서 이어 고백합니다. 


양손으로 책 한 권을 들고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때 느끼는 손맛의 짜릿함은 경험해 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안다. 책장이 스르륵 넘어갈 때 들리는 소리에 청각이 동원되고, 향긋한 종이 냄새까지 맡을 수 있으니 후각이 동원된다. 이토록 다양하게 감각을 자극하는 매체는 흔하지 않다.


역시나 그렇고말고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책은 모든 감각기관을 활짝 열고, 심지어 심장과 가슴까지 쫙 펴고 읽어야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일 것입니다. 


전자책의 편리함 VS 종이책의 정감

물론 수 백 권의 책이 하나의 단말기 안에 쏙 들어가고 가격도 저렴하며 찢어지거나 물에 젖을 걱정 없는 전자책은 분명 ‘신 구텐베르크 혁명’이 분명할 것입니다. 구텐베르크도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디지털시대의 위대한 선물이지요. 전자책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종이책은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다만 프랜차이즈 분식집이 학교 앞 떡볶이 집의 정감을 온전히 대신할 수 없듯이, 아파트의 편리함이 한옥의 아름다움과 고유성을 대체할 수 없듯이 종이책도 그만의 장점을 지닌 채 그대로 살아남아주길 바라는 개인적인 마음일 뿐입니다. 




책의 미래를 알고자 많은 책과 신문을 뒤적였으나 어느 누구도 ‘책의 미래는 이러할 것이다’는 또렷한 답변을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는 양자택일 식 질문 자체가 너무 조급한 궁금증이 아닐까 의문도 드네요. 생태계와 우주의 법칙에 따라 종이책은 생존하거나 아니면 서서히 소멸해가겠지요. 

여전히 일부에서는 전자책과 종이책의 전망을 성급히 진단하길 멈추지 않습니다. 15세기 활판 인쇄술이 발명되어 현재까지 524년간 종이책은 인류와 함께 그 역사를 걸어왔습니다. 역사의 흥망성쇠와 한 인간의 생로병사, 그 밖의 모든 가치와 지식과 지혜들이 종이책에 그득히 담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너무나 충실히 수행해 왔던 셈이지요. 전자책과 종이책의 지형도가 어떻게 그려질지는 알 수 없으나 바라는 것은 모두가 책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잊지 말고 넉넉히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사라진다 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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