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탄생한 시대의 대박 소설 살펴보니

2012. 6. 13. 13:06다독다독, 다시보기/지식창고




신문은 다양한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정치, 사회, 국제, 경제 파트뿐 아니라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들을 수록하고 있지요. 하루의 주요 소식을  넘기고 넘겨 우리의 시선이 마지막 페이지 즈음에 도착하면 각계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사설과 칼럼이 독자를 맞는데요. 그런데 과거에는 이 마지막을 유명한 문학 작품이 장식했었다는 사실, 다들 알고 계셨나요?


100년의 동거동락, 신문과 문학

신문과 문학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 근대문학은 신문과 역사적 궤적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신문이 없었다면 근대문학이 대중에게 알려질 수 없었기 때문이죠. 우리가 학창시절 읽고, 배웠던 수많은 근대문학작품은 신문에 연재됐던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 문학인이 가졌던 기자의식은 특기할 만한 것이었어요. 근대기의 문학인들은 오늘날과 같은 문학인이라기보다 기자(writer)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이인직, 이해조, 최남선, 이광수, 홍명희 등 유명한 문학가들은 문학을 하는 사람이자, 신문을 만드는 편집자였던 것이죠.


▲이인직의 <혈의 누>는 1906년에 창간한 <만세보> 신문에 연재된 작품입니다. [이미지 출처-yes24]



한국 최초의 신소설로 불리는 작품 <혈의 누>의 작가 이인직(1862~1916)은 <국민신보>(1906~1910), <만세보>(1906~1907) 그리고 <대한신문>(1907~1910)에서 주필이자 편집인으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만세보>의 주필이었던 시절, 이 신문에 작품 <혈의 누>를 연재했습니다. 근대소설 최초의 고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역사와 허구를 접목시켜 대중에게 큰 인기를 받았죠. 또한 신소설 ‘토의 간’으로 유명한 이해조 역시 언론계에 종사한 기자이자 작가였습니다. 그는 <제국신문>(1898~1910)과 <매일신보>(1904~ 현 서울신문)에서 활동했어요.

시대를 조금 옮겨 일제 중반기로 가봅시다. 당시에도 신문은 문학작품이 대중에게 널리 읽힐 수 있게 해주었던 유용한 수단이었습니다. 이광수의 <무정>은 남녀의 애정문제를 작품의 주제로 구성하여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죠. 이 작품은 1917년 1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중이 항상 신문에 실린 작품들에 열광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재미있는 사례가 있는데요.


▲[이미지 출처-yes24]



신문 문학, 독자들의 사랑과 항의를 한몸에

문학 교과서에 실려 많은 학생에게 ‘멘탈 붕괴’ 경험을 하게 만들었던 작가 이상의 <오감도>를 기억하시나요? ‘13인이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오’라는 암호 같은 문구로 시작하는 이 ‘괴상한’ 시 연작은 당시 <오감도>가 연재되었던 <조선중앙일보>(1931~1937)의 독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근대인들의 눈에도 이상의 시는 괴상해보였기 때문이죠. 신문에 이상의 시가 매회 연재될 때마다 독자들의 엄청난 항의가 빗발쳤습니다. 한국근대소설계의 이단아, 이상의 <오감도> 연작은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연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들이 신문에 실려 독자들에게 사랑과 항의를 받았습니다. 이렇듯 신문이 근대문학의 디딤돌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요. 현대로 넘어와서도 전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많은 신문들이 신문 속에 문학 연재란(欄)을 따로 만들어 능력 있는 작가들을 배출했거든요.

정비석의 <자유부인>과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역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자유부인>은 1954년 1월 1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입니다. 작품이 연재되는 동안 신문의 부수가 엄청나게 늘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죠. <자유부인>은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도 하였는데, 단행본 역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영화 <별들의 고향> 포스터(좌), 영화의 한장면(우) [출처-영화진흥위원회]



여전히 이어오고 있는 신문과 문학의 인연

영화 <별들의 고향>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 원작입니다. <별들의 고향>은 1972년 9월 5일부터 1973년 9월 14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소설입니다. 제목이 매우 눈에 익지 않으신가요? 바로 영화 <별들의 고향>의 원작이기 때문인데요. 배우 신성일 주연의 영화 <별들의 고향>은 당시 한국영화 최다 흥행관객인 46만 5,000명이 봤다고 하죠. 지금은 뮤지컬로도 만나볼 수 있다고 하네요.

이처럼 과거에 문학과 미디어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일화들은 지금 우리에게 머나먼 얘기처럼 들립니다. 문학 작품이 신문에 연재되는 사례가 이제는 매우 드문 일이 되었기 때문이죠. 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와 고정 독자층의 감소, 출판시장의 침체 등으로 신문사 역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문학을 다룰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신문에서 점차 문학 연재가 사라지면서 문학인이 자신의 실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는 무대 역시 좁아졌지요. 지금은 신춘문예가 거의 유일무이하게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요. 1925년, <동아일보>가 문학작품을 공모한 것이 시발점이 된 신춘문예 제도는 현재에도 여러 신문사에서 시행하고 있어요. 신문 속의 문학은 거의 그 모습을 감추었지만, 신문과 문학의 뗄 수 없는 관계는 여전히 이어져오고 있는 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