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 25. 12:19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2012 서울 국제 도서전이 지난 20일 삼성역 코엑스에서 성황리에 개막했습니다. 국제도서전답게 각양각지의 국적을 가진 ‘물 건너온’ 책들 뿐 아니라 ‘노벨상 작가 특별전’, 평소 비싼 가격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도서할인행사까지 다양한 볼거리와 행사가 넘쳐났는데요. 그중 인문학 아카데미는 문학, 역사, 고전,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강의를 통해 독자들이 인문학에 친숙해질 수 있게 마련된 행사입니다. 첫날의 인문학 아카데미를 꾸며준 저자들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의 이어령, <다윈지능>의 최재천, <도대체, 사랑>의 곽금주. 총 세 분이었는데요. 이름만 들어도 어마어마하신 분들이죠. 각계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대중에게 반드시 필요한 저자들이기도 한 세 명사(名士)를 만나러 가보실까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이어령,
‘시인은 생명가치를 이야기하는 사람’
이어령은 이 시대 최고의 석학이라도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죠. 평론가, 소설가, 수필가뿐 아니라 언론인, 교수, 장관이라는 직함이 그의 이름 뒤에 따라옵니다. 이어령은 1956년 <한국일보>에 김동리 황순원 등 당대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해 문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22세! 그는 지금도 시와 소설을 이야기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합니다.
[책표지 출처-yes24]
경제학에서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가장 중요하죠. 그렇다면 문화경제학에서는 어떨까요? 이어령은 생명가치라는 개념을 언급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 것과 같은 행위들은 물질 개념으로 환원할 수 없어 GDP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들이죠. 문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학은 생명에 대한 수요를 공급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양적가치로 취급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어령에 따르면, 시인이란 바로 생명가치를 이야기할 수 있고 그것을 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시적유전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아이패드를 만지며 좋아합니다. 아기는 매우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이패드를 작동합니다. 그리고 아기의 아버지는 아기에게 책을 쥐어주는데, 아기는 책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꾹꾹 눌러보기만 합니다. 하지만 책은 아이패드와는 달리 화면이 바뀌지 않습니다. 아기는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출처-유투브]
우리 세대는 종이지면이 아닌 전자기기에 콘텐츠가 담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어령은 이러한 풍토에서는 시적유전자가 등장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시적유전자란 생명공간을 바탕으로 합니다. 생명이 뛰놀 수 있어야 생생한 시적유전자가 뒤따라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것은 그가 언급한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장소에 대한 사랑과 직결됩니다. 이어령은 아이들이 아이패드가 아닌 책과 시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을 직접 만져보며 종이의 촉감을 익히고, 냄새를 맡고, 그 안에 담긴 시의 생명가치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생명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다윈지능> 최재천,
‘과학자에게도 글쓰기 능력은 필요하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이라는 글을 기억하시나요? 토종개구리를 몰아내고 우리 생태계를 교란시킨 황소개구리를 빗대어 우리말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할 경우 다가올 불행한 사태를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글이에요. 이 글의 저자가 바로 <다윈지능>의 최재천입니다. 누구보다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 섰던 그는 199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89년 미국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 2000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책표지 출처-yes24]
그는 ‘모든 것은 글쓰기다’라고 운을 띄우며 강의를 시작했는데요. 시인을 꿈꾸던 어린 시절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지금도 글을 쓰는 과학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과학 분야를 다루는 최고 권위의 잡지 <네이처> 아시죠? 과학을 다루는 잡지이다 보니 내용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생각하시겠지만 일반인 구독률도 높대요. 흔히 생각하는 과학 논문과 달리 제목도 내용도 정리가 잘 돼 있기 때문이라네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글은 <네이처>에 실릴 수 없대요. 즉, 과학자에게도 글을 잘 쓰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대자연은 무궁무진한 글쓰기 소재’
최재천은 13년 동안 모두 55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던 이유를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자연에는 소재의 빈곤함이 없습니다. 대자연이 품고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그는 자연에서 발견한 것들을 소재로 물어다가 글을 쓴다고 합니다.
▲일상 통섭의 사례인 비빔밥
‘계획 독서는 통섭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 과정’
스티브 잡스의 위대함은 테크놀로지와 인문학을 융합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어떤 CEO보다 강조했는데요. 과거에도 아리스토텔레스,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지원, 정약용 등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은 있었지만 오늘날의 천재는 좀 달라요. 지식의 총량보다는 지식의 전문성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최재천은 여기서 ‘통섭’을 제안합니다. 그는 갖가지 나물과 고추장, 밥 등을 비벼먹는 비빔밥이 통섭의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어요. 비비기 전에는 조화롭지 못한 내용물들이 뒤섞이면서 환상적인 비빔밥 맛을 창조해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통섭의 과정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능력이 요구됩니다. 서로의 분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죠. 그는 통섭에 이어 ‘계획 독서’를 제안합니다. 책이란, 모르는 분야를 알기 위해 읽는 것이니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철저한 계획을 통해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알지 못하고 있던 분야에 대한 도서를 하나씩 공략하다보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도대체, 사랑> 곽금주,
‘사랑은 왼쪽 귀에 속삭여라’
프로이트는 ‘가장 성공적인 삶이란 사랑하고 일하는 것’이라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만큼 사랑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숙제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곽금주는 사랑 전반에 관한 심리학 연구 결과를 재미있게 풀어 책 한 권에 담았습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흔들리는 20대’는 이 시대 최고 명강의라 불리고 있어요.
[책표지 출처-yes24]
사랑은 어떻게 시작될까요? 혈기왕성한 20~30대들은 언제나 사랑을 갈망하고 꿈꿉니다. 곽금주는 사랑은 왼쪽 귀에 속삭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왼쪽 귀와 오른쪽 귀에 동일한 말을 들려주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 기억나는 단어나 문구를 떠올려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연구 결과, 오른쪽 귀로 들은 사람의 경우 58%의 단어를 기억해낸 것에 반해 왼쪽 귀로 들은 사람의 경우 64%의 단어를 기억해냈다고 합니다. 앞으로 사랑은 연인의 왼쪽 귀에 속삭여야 한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
사랑하려면 제대로 하라!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
성숙한 사랑이란 친밀감과 열정, 결심이 합쳐져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결심이 없는 사랑은 낭만성이 가득한 사랑입니다. 낭만적 사랑은 친밀감과 열정만 앞서고 있기 때문에 성숙하지 못한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책임이 수반돼야 하는데 낭만적 사랑은 이러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곽금주의 <도대체, 사랑>은 사랑을 심리학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영화와 소설, 시, 노래 등이 더해져 더욱 흥미롭게 다가오는 곽금주의 책을 펼쳐보시는 건 어떨까요?
세 명의 명사와 함께 진행된 강의는 열정과 활기가 넘쳤습니다. 2012 서울국제도서전의 인문학 아카데미는 24일 일요일까지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양한 저자와 다양한 인문학이 살아 숨 쉬는 곳, 2012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도심 속 책과 인문학의 향기를 마음껏 맡아보시길 바랍니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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