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도서전 '저자와의 대화' 다녀와보니

2012. 6. 21. 13:37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2012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린 첫 날인 2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는데요. 이중에서도 작가의 작품세계와 문학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저자와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이 유독 많은 이의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두 작가와 40 명 안팎의 소수 인원만 함께 할 수 있었던 생생한 현장을 <다독다독> 가족 여러분께 소개할게요.




첫 번째 시간은 <정호승의 인생 동화 울지 말고 꽃을 보라>라는 작품의 저자인 정호승 작가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은 더위도 잊게 했는데요. 정호승 작가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두의 기억에 각인될 가치 있는 이야기를 속속들이 전해줬습니다. 강연을 들으며 정호승 작가의 인생사와 문학적 세계관을 들여다 볼 수 있었는데요. 정호승 작가의 생생한 이야기 전해 드릴게요. ^^


정호승 작가의 이야기


시와 동시 그리고 소설까지! 다재다능한 등단 3관왕

요즘은 40대에 작품을 보내 등단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요. 등단의 연령층이 높아진 것이죠. 하지만 제가 등단하던 1970년대 초에는 20대 초중반의 나이면 신춘문예에 등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세 장르 모두 등단할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인이 돼야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그때 문학을 소설과 동시에 접했기 때문에 시를 쓰면서도 언젠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82년에 단편소설을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이 바빠서 계속 소설을 쓸 수 없었기에 얼마 뒤 소설을 써보겠다는 결심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작품에 몰두했었는데. 그때 사람마다 문학적 기질에 맞는 한 장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시간적, 경제적으로 많은 대가를 치르고 40대 중반이 넘어서야 나의 문학적 기질은 소설가가 아닌 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셈입니다. 저는 한 번도 소설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언제나 시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모국어와 현시대 언어의 자각

모국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시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930~40년대의 시를 보면 한자어도 많고 표현이 낡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현재 시대에 쓰는 언어들이 100년 뒤에 본다면 얼마나 낡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언어 감각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모국어의 감각을 잃지 않도록 표현하는 것이 나의 몫이라는 신념을 갖고 가능한 많은 이들이 시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일상의 쉬운 언어로 그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등단과 작품의 제도적인 연결고리에 집착하지 마라

‘제가 문단에 들어왔기 때문에 시인이 되었을까요.’ 아니면 ‘제가 열심히 시를 쓰다 보니까 시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을까요,’ 현재 신춘문예에 당선되어도 그 중 1/3 정도만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 언제 등단에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쓰다 보면 분명 등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또한, 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 또한 시 한 편을 쓰는데 수없이 고쳐 쓰기를 반복합니다. 어느 것은 10년째 고쳐 쓰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저는 노력이 천부적 재능이지, 노력하지 않은 재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 되어야 시인이 되는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인 것을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시를 읽으며 쓰는 것을 반복하여야 하며 시를 버리지 않고 얼마나 열심히 끌고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등단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버는 것도 돈이 목적이 아니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행복들이 목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두 번째 작가와의 만남은 <시인의 서랍>이라는 작품의 저자인 이정록 작가와 함께했습니다. 이정록 작가는 넘치는 인간미와 에너지를 보여줬는데요. 본인의 문학 세계관이 무척이나 뚜렷하신 분 같았습니다. 말에 힘이 담겨 있다고 느낄 만큼 강한 인상을 심어준 작가였어요.





이정록 작가의 이야기


시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은 보는 시각에 따른 차이다

마음을 입과 말씀으로 잘 모셔 놓은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제 마음을 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 그리고 사물까지 시속에 담아내고 싶습니다. 창작이라는 생각보다는 조금 강한 표현일 수 있지만 주워 먹는 것이라고 표현할 만큼 주변의 것들에 귀를 잘 기울여서 시를 써야 제대로 된 시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교단에서 바라보는 시의 관점

문예반을 지도하면 문예창작학과에 가려는 학생들이 많은데 정말 쉽지 않은 길이니만큼 대단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이라는 이름이 갖는 가치는 그 이상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건 질문과 약간 빗나간 이야기지만 저는 그동안 교육에 관한 시를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시인들이 본인의 시가 시험문제로 나왔을 때 답을 맞히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제 시가 모의고사에 실렸을 때 풀어봤는데 틀렸었습니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하고 출제자의 의도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특유의 문체는 작품에 새겨지는 나의 체취

산문을 보다가 왜 흩어질 산자를 쓰는 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여러 강줄기를 만들어놓고 결국에는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산문의 구조 속에서 놀라움을 발견하곤 하는데 일단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들이대는 것’이 중요합니다. 흔히 기존의 틀로 학습되어 있는 언어체계로 가지만, 나오는 대로 들이대는 문장들이 독자들이 처음에는 못 쫓아올 것 같아도 계속 쓰다 보면 특유의 색깔과 문체로 읽히게 됩니다. 평론이든 소설이든 자신만의 문장을 갖고 있으면 독자들은 그 호흡을 따라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의미전달에만 신경 쓰면 안 됩니다. 기사문 자체도 고유한 문체가 있는데 창작에 관계된 것들에는 더욱더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어색하더라도 진정성이 보이면 그 문체를 이해해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일단 써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평소 만나기 어려웠던 작가들과 평소에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어 좋았는데요. 저자의 강연이 끝난 뒤에도 많은 이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작가의 서명을 받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무더운 날씨, 시원한 코엑스에서 저자와의 대화에 푹 빠져보시는 건 어떨까요?


 ©다독다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