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벨’ 최후 1인이 된 아들에게 쓴 편지

2012. 7. 2. 09:14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민들레·수선화·철쭉·벚꽃이 지천에 펼쳐진 색의 계절 봄에 아들에게 쓰는 이 편지가 깊은 산속 수줍게 피어나는 진달래 분홍빛 꽃망울처럼 조금은 부끄럽구나. 그래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감정 표현을 좀 더 세련되게 하는 것이란 말에 용기를 얻어 몇 자 써 본다. 이 엄마의 주책이라 해도 상관없고, 치매(는 좀 그렇지?)라고 해도, 혹은 엄마가 왜 이러시냐는 등 뭐라 생각해도 상관없겠다만 이 글을 끝까지 읽어 주었으면 한다.


고3 아들아, 얼마나 힘드니? 그런 힘든 고 3 시절이 엄마한테도 있었지만 어디 엄마에 댈까? 세상도 변해서 공부 양도 많아지고, 유혹도 많아지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또 대학에 간다고 해서, 취직을 한다고 해서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느낄 수 없는 혼돈의 세상에 네가 놓여 있다고 생각할 거야. 충분히 이해한단다.


그래서 네가 그랬을까? 

“엄마 신문 하나 볼게요.”

신문보단 책에, 그리고 시사 내용보단 학교 공부에 더 열심히 해야 하는 학창 시절인 너에게 신문이란 너무 사치스럽고 때가 아닌 듯하여 보던 신문도 엄마가 절독했던 즈음 너의 요구….








대학 진학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삶 전체가 공부란 생각에 신문 읽기부터 할 거라는 네 말에 엄만 무척 당황스러운 한편 뿌듯했단다. 정민의 ‘불광불급’을 읽고 있었을 때여서 더 그랬을 거야. ‘미쳐야 미친다.’ 언어유희가 주는 기쁨도, 그 책이 주는 재미도 같이 느끼고 있을 때 너의 말은 '너도 미치고 싶구나'라는 생각이었지.


그렇게 신문 읽기를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되어 가는구나. 처음엔 네가 물어보는 개념들을 설명해 주느라 엄마도 공부 무지 했다는 거 알아? 중학생인 너보다는 엄마의 지식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옥죄고(?) 있었지. 지금은? 해방감. 그런 옥죔에서 해방! 그리고 인정! 네 지식의 양이 나를 추월했다는 것 인정! 


더더욱 지난 87회 도전 골든벨(전주 동암고등학교)에서 네가 보여 준 지식과 상식의 양은 학교 공부로는 가당치도 않았던 모습이었기에 너의 신문 읽기를 지지한단다. 집에서의 신문과 학교에서의 그것이 네 사고의 양극을 달리는 내용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도 너의 충분한 균형감과 절충. 다시 체화해 낸 결과 아니겠니? 마지막 50번 문제는 풀진 못했지만 최후 1인이 되는 데까지 한 문제도 틀리지 않고 묵묵히 풀어내는 그 방대한 지식과 지식들의 통섭은 매일 신문 읽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거지.


아들, 이 봄날이 좋다. 미치도록 좋다. 엄마도 신문에 미친 너처럼 미쳐 보고 싶단다. 미쳐서 삶에 미치고 싶단다.


수능 점수가 낮게 나와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못 하더라도 난 지금 너의 신문 읽기를 지지한단다. 올바른 모습이라고 자부한단다. 네 행동에 정당성을 확보한 지금의 모습이 아주 멋지단다. 더도 말고 지금처럼 어른으로 커 나가렴.


지천의 개나리, 산천의 진달래, 그리고 하천의 투명한 물까지 모두 좋은 것들 묶어 너에게 보낸다. 든든한 아들, 고마워.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 <2012년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중 학부모부 금상 이란경 님의 '엄마도 미치고 싶단다'를 옮겨온 것입니다.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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