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0. 10:11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짐정리를 하다가 우연찮게 옛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첫 페이지를 펼쳤는데, 다 읽을 때까지 일어나지 못했네요. 그 때 왜 그랬을까 손발 오그라들기도 했고, ‘아 맞아!’ 이러면서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하고, ‘정말 이랬었나?’ 싶은 기록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기장 한 권을 읽고 나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신문은 전문적인 글쟁이들이 쓴 역사책이요 타임머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일어났던 일들을 그대로 보여주거든요. 그 안에서 좁게는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 수 있고, 크게는 한 사회가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신문 기사를 살펴봄으로써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거죠. 오늘 다독다독에서는 지금은 볼 수 없는 시대별 신문기사를 시대상과 함께 살펴볼게요. ‘그 때 그 시절’로 함께 떠나볼까요?
신문에 피임법이 실린다?
60년대 우리나라 인구성장률은 약 3%였습니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성이 평균 6명을 낳았다는 말이죠. 경제 성장의 성패는 폭발적인 인구성장률을 억제하는 데에 있다고 당시에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가족계획’이 등장했습니다.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잘 낳아 기르자’ 같은 표어가 이 때 나왔죠.
신문도 여기에 발맞춰 가족계획을 널리 알렸습니다. 아직 식량난이 해소되기 전이라서 이 문제를 알리는가 하면, 다산을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던 옛 풍습을 ‘고루한 인습’이라며 비난하기도 했죠. 나아가 ‘피임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사 한 대목을 보실까요?
나날이 늘어만 가는 세계 인구는 급기야 "핵폭탄보다 무서운 인구폭탄"이란 신어(신조어)를 낳게 되어 장차 인류의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고래의 동양적인 가족제도라는 고루한 인습에 젖어 이를 외면한 채 자식 많음을 큰 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요즘 각 보건소나 "대한가족계획협회" 등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호텔에서 ‘혼분식’을 하지 않은 이유
7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에는 ‘보릿고개’가 있었습니다. 고기는 고사하고 밥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었다는 이야기 많이 들으셨죠? 그 대책으로 정부가 제시한 대안 중 가장 강력한 방법이 ‘혼분식’입니다. 혼식은 쌀에 보리 같은 잡곡을 섞어 먹는 것이고, 분식은 빵이나 라면 같은 밀가루 음식을 말합니다. 이를 위해 분식만 먹는 ‘무미일’을 지정하기도 했고, 혼분식장려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흰 쌀밥’ 예찬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혼분식 비율을 정해놓고 위반하는 업소에게 영업정지나 고발조치 같은 처벌을 내리기도 했다는군요. 그러다보니 이런 일도 발생했습니다.
서울시는...서울 시내 5개 관광호텔에서 보리혼식을 하지 않은 것을 적발, 행정처분 하겠다고 교통부에 동의 요청했는데
...교통부측은 외국인에게까지 보리를 섞어 먹이기가 어렵대고 난색을 드러내면서 관공호텔만은 보리를 혼식하지 않도록 예외조치 할 길을 구상
작전명은 ‘쥐잡기’!
후다닥 뛰어가는 생쥐 때문에 깜짝 놀란 경험 있으실 겁니다.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쥐 구경하기 힘들죠. 미관상 좋지 않기도 하고 페스트,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의 숙주인 쥐 박멸은 큰 과제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8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쥐 잡는 날’이 있었습니다. 정부에서 공급하는 쥐약을 곳곳에 놓고, 주요 출몰 지역을 청소했죠.
쥐가 쥐약을 먹게 하려면 유인할만한 미끼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빵이나 쌀 아래에 쥐약을 놓곤 했는데요, 사람이나 소 같은 가축이 이를 먹어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신문에서는 ‘쥐잡기 작전’을 개시한다고 표현하면서, 쥐약을 먹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했더군요.
...이번에 공급되는 쥐약 '인화아연제'는 인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독성은 제거했으나 되도록 음식물에 섞여 사람이나 가축이 이를 먹고 괴로움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
제가 소개해드린 기사들은 요즘 신문에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거꾸로 ‘아이 많이 낳기’를 권장하고 있고, 혼분식 대신 잡곡밥을 권하고 있죠. 전국적으로 쥐잡기 운동을 하지도 않구요^^; 반대로 저희가 심각하게 여기는 문제들을 후손들이 “정말 저런 일이 있었어?”라고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신문은 사회의 변화를 소개하는 ‘역사책’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잘 정제되진 않았지만, 신문을 통해 그 시대를 유추해보는 작업은 퍼즐 맞추기처럼 흥미진진하더군요. 지루한 장마철, 옛 신문을 펼치며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떠나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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