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청소년’ 일본의 해결책은?

2011. 5. 18. 15:03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2008년 4월 11일 필자는 일본 요코하마와 신주쿠를 연결하는 JR 신주쿠-쇼오난라인의 열차에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출근 시간이어서 승객들로 복잡한 객실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40대 중반 이후로 보이는 7~8명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얼핏 살펴보니 그림 한 점 없이 문자만 빼곡하게 들어찬 책이더군요. 대부분 문고판 크기로 하차할 때엔 읽던 책을 주머니에 쏙 넣었습니다. 출근길에 요코하마와 신주쿠를 연결하는, 혼잡한 급행 열차를 타고 자투리 시간을 쪼개 독서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지요.그런데 이것과 대비되는 장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젊은 층일수록 독서를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젊은이 10여 명은 손 전화나 휴대용 게임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눈을 감고 음악을 감상했고, 일부는 손 전화로 DMB 방송을 보는 데 빠져 있었습니다.

"일본이 경제 대국이 된 것은 국민들의 왕성한 독서에 힘입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책이나 신문을 별로 보지 않습니다. 인터넷에 정보가 많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해결하죠. 인쇄물을 보더라도 그나마 만화나 그림이 많은 책을 보는 데 그칩니다. 문자로 기록한 매체를 점점 멀리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케다 유키노, 40세, 회사원 이야기)

 


▲ "활자 키웠으니 신문 좀 많이 보셔요."
일본 도쿄 중심가의 한 신문 가판대. 요미우리 신문에서 본문 활자를 키웠다는 내용의 노란색 안내문을 걸어놓은 풍경이 이채롭다. 한 도쿄 시민은 "줄어드는 신문 독자들을 만회하려고 신문사들이 활자를 키우는 등 여러 가지 대책을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젊은 층의 '활자이탈', '문자이탈' 현상이 급증하자 일본 교육계와 출판업계는 위기 의식을 느꼈다고 합니다. 어린이,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도 예전에 비해 책을 멀리하면서 신문과 책 판매량이 계속 감소한 것입니다. 교육 관계자들은 젊은 세대가 독서와 신문 읽기를 기피한다면 지적 역량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 정서적으로도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경제와 과학기술 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일부 교육자들과 시민운동단체들이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발적으로 아침독서운동과 북 스타트 운동을 펼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요미우리 신문>에서는 '21세기 활자문화 프로젝트'를 실시하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일부 정치인들이 힘을 보태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국회 중의원인 이케노보오 야스코 의원(공명당, 현 일본 문부과학성 부대신)과 가와무라 다테오 의원(전 문부과학성 대신), 히다 미요코 의원 등이 주도하여 '활자문화의원연맹'을 만들고 '활자문화진흥법' 제정에 착수했습니다. 정당과 당파를 초월하여 의원 286명이 가입한 이 모임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이 책과 신문을 즐겨 볼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2005년 7월 22일 일본 국회에서 찬성 220표, 반대 1표로, 사실상 만장일치로 가결됐습니다. 반대표 1표는 단추를 잘못 누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7월 15일 중의원 가결을 거쳐 참의원에서도 일주일만에 통과, 7월 29일 공포와 동시에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활자문화진흥법' 제정의 주역인 문부과학성의 이케노보오 야스코 부대신은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의원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의견을 듣고, 마침내 법까지 만들게 되었다"면서 "시행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큰 성과는 없지만 조용한 성과를 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활자문화진흥법'국민들에게 독서문화 환경을 제공하고, 학교에서 읽고 쓰는 능력을 배양해 주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라고 명시했습니다. 또 이 법을 공포한 '7월 29일'을 '활자문화의 날'로 지정한다고 했습니다.

출판업계 지원책으로는 학술출판 지원, 출판물의 외국어 번역과 국제교류 지원, 학교도서관 운영 지원, 독서진흥 민간단체 지원 등이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활자 문화 진흥방안으로는 북 스타트 운동의 보급 지원, 책 읽어주기 사업 지원, 독서 어드바이저의 육성, 공공도서관의 기능 강화 등을 마련했습니다. 또 학교에서도 독서지도 강화, 독서시간 확보, 언어능력 향상교육 지원, 교사 양성과정에서 '도서관' 및 '독서' 과목의 도입, 특수학교의 독서환경 정비, 신문을 이용한 교육활동을 명시했습니다.


▲ 일본 초등학교의 아침독서 현장
일본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인터넷과 텔레비젼에 빠져 책과 신문 읽기를 멀리하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 2005년에 '활자문화진흥법'을 만들었다. 사진은 일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아침독서운동'을 하는 장면.

도쿄 가미히라이 초등학교의 이시카와 히로시 교장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이 '활자문화진흥법' 덕분에 책과 신문 읽기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하고 "상대적으로 예산이 부족한 공립학교에서 이 법을 활용하여 독서교육을 강화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고, 이것이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습니다.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 사고로 위기를 맞은 일본이 활자문화부흥운동과 같은 국민들의 역량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일본의 '활자문화진흥법' 전문>


제1조(목적)
이 법은 문자활자 문화가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축적한 지식과 지혜의 계승 및 향상, 그리고 풍요로운 인간성의 함양과 건전한 민주주의 발달에 필수적이라는 점에 비추어, 문자활자 문화진흥에 관한 기본 이념을 정하고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의 책무를 명확히 함과 아울러 문자활자 문화의 진흥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문자활자문화 진흥정책의 종합적인 추진을 기해 지적이고 풍요로운 국민생활과 활력 있는 사회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문자활자 문화’라 함은, 활자와 기타 문자를 이용해 표현된 것(이하 문장이라 함)을 읽고 쓰는 것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신적 활동, 출판활동 및 문장을 제공하기 위한 활동, 출판물 등 문화적 소산을 말한다.


제3조(기본이념)
<1> 문자활자 문화의 진흥에 관한 정책의 추진은 모든 국민이 자주성을 존중 받으며 평생에 걸쳐 지역,
      학교, 가 정, 기타 다양한 장소에서 거주 지역, 신체적 조건, 기타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동등하게
      풍요로운 문자활자 문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한다는 취지로 시행되어야 한다.


<2> 문자활자 문화의 진흥에 있어서는 국어가 일본 문화의 기반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3> 학교 교육에서는 모든 국민이 문자활자 문화의 혜택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육과정 전반을 
      통해 읽기능력과 쓰기능력,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기초로 언어능력 함양을 충분히 배려해야 한다.

제4조(국가의 책무)
국가는 전조의 기본이념에 따라 문자활자 문화의 진흥에 관한 정책을 종합적으로 책정하고 실시할 책무가 있다.


제5조(지방공공단체의 책무) 
지방공공단체는 기본이념에 따라 국가와의 연계를 도모하면서 지역의 실정에 맞춰 문자활자 문화 진흥에 관한 정책을 책정하여 실시할 책무가 있다.


제6조(관계기관과의 연계 강화)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문자활자 문화의 진흥에 관한 정책이 원활히 실시될 수 있도록 도서관, 교육기관, 기타 관계기관 및 민간단체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등 필요한 체제 정비에 노력해야 한다.


제7조(지역의 문자활자 문화 진흥)
<1> 기초 지방자치단체인 시정촌(市町村)은 도서관 봉사에 대한 주민의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필
      요한 수의 공공도서관을 설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2>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공립도서관이 주민에 대해 적절한 도서관 봉사를 제공할 수 있도록 사서의
      충실 등 인적 체제의 정비, 도서관 자료의 충실화, 정보화의 추진 등 물적 조건의 정비, 기타 공립도서
      관의 운영 개선과 향상에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3>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대학 및 기타 교육기관이 시행하는 도서관의 일반공중 개방, 문자활자 문화에
      관련된 공개강좌의 개설, 기타 지역의 문자활자 문화 진흥에 공헌하는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4> 앞의 제 3항에서 정한 것 이외에 국가와 지방공공단체는 지역에서의 문자활자 문화 진흥을 위해 문자
      활자 문화 진흥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펼치는 민간단체의 지원 및 기타 필요한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제8조(학교교육에서의 언어능력 함양)
<1>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학교교육에서 언어능력의 함양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도록 효과적인 방법의
      보급과 기타 교육방법의 개선에 필요한 정책을 강구함과 아울러, 교원의 양성과 연수 내용의 충실화
      및 기타 자질 향상을 위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2>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학교교육에서의 언어능력 함양에 필요한 환경 정비를 충실히 하기 위해 사서
      교사 및 학교 도서관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여타 직원의 충실화 등 인적 체계의 정비, 학교도서관
      자료의 충실화와 정보화 추진 등 물적 조건 정비에 관해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제9조(문자활자 문화의 국제교류)
국가는 가능한 다양한 나라의 문자활자 문화가 국민에게 제공되도록 함과 아울러 우리나라 문자활자 문화의 해외 발신을 촉진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그 문화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외국 출판물의 일본어 번역을 지원하고, 일본어 출판물의 외국어 번역을 지원하며, 기타 문자활자 문화의 국제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제10조(학술출판물의 보급)
국가는 학술 출판물의 보급이 일반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학술연구 성과에 대한 출판의 지원, 기타 필요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제11조(문자활자 문화의 날)
<1> 국민 일반에 널리 문자활자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 문자활자 문화의 날을 정한다.
<2> 문자활자 문화의 날은 10월 27일로 한다.
<3>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문자활자 문화의 날에 그 취지에 맞는 행사가 실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12조(재정상의 조치 등)
국가 및 지방공공단체는 문자활자 문화의 진흥에 관한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상의 조치 및 기타 조치를 강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칙
이 법률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출처] 일본 국회 '문자활자 문화진흥법' 작성자 호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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