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스타선수

2012. 8. 8. 14:4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2012 런던올림픽이 어느덧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장기를 달고 출전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제외하고 올해로 16번째 하계올림픽에 참가했는데요.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수많은 올림픽 스타들이 탄생했습니다. 온 국민의 기대와 염원을 담아 함께 울고 웃었던 순간들, 오늘은 신문을 통해 대한민국을 빛낸 올림픽 스타들과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가슴엔 일장기, 하지만 한국의 ‘마라톤 영웅’ 故손기정 옹 


지난 2002년 별세한 손기정 옹은 일제 치하이던 1936년 남승룡(2001년 별세)과 함께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당시 함께 출전한 남승룡 또한 동메달을 따내며 대한민국의 건각들의 능력을 증명해 냈죠. 그러나 당시 금메달과 동메달을 따냈음에도 불구하고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대표로 출전했기 때문에 내 나라를 잃어버린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는데요. 


당시 서방 언론은 모두 기테이 손이라는 일본식 이름의 서양식 어순 표기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를 조명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본인으로 등록이 됐죠. 이에 동아일보에서는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에 사진을 게재하여 우리의 영웅들의 모습을 기록에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내 나라 국기가 아닌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 불모지 출신 손기정 선수가 보여준 투혼은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아픔을 씻고 겨레의 맘 속에 민족의 미래를 보여준 쾌거였죠.



[출처-서울신문]



▶"1948년 런던올림픽 기수는 손기정 선수"[연합뉴스, 2012. 8. 6]

▶'손기정 월계관' 문화재 된다[서울신문, 2012. 2. 10]



한국 탁구계의 아이콘 ‘현정화’ 그녀의 과거는 김연아 뺨치게 대단했다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현정화’ 한국 여자탁구의 전성기는 그녀의 선수생활 시기와 정확히 포개어집니다. 실제 현정화가 은퇴한 뒤 수 년간 한국 여자탁구는 세계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있죠. 탁구가 처음 올림픽 공식종목으로 채택된 88 서울올림픽, 현정화-양영자 조는 중국선수들과의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초대 챔피언 자격의 금메달을 거머줬습니다. 이 후 세계선수권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세계랭킹 3위까지 진출한 바 있는 현정화 선수는 은퇴 시기까지 세계 여자 탁구의 최정상급 기량을 자랑했습니다. 



[출처-서울신문]




이러한 현정화 선수의 업적은 최근 개봉한 영화 '코리아'를 통해 다시 한 번 회자됐는데요. 코리아'의 배경은 올림픽이 아닌 세계선수권대회지만 그만큼 현정화 선수의 실력이 올림픽 이후에도 발휘됐다는 방증이겠죠?^^ 실력과 함께 뛰어난 외모도 갖춘 그녀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중 최초의 CF 모델로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탁구여왕 리분희 "현정화가 보고 싶다"[경향신문, 2012. 7. 13]

▶현정화, 한국인 최고 탁구 명예의 전당 올라[서울경제, 2011. 11. 23]



56년만에 마라톤 신화 재현한 황영조 '몬주익 영웅’의 탄생


한동안 메달을 찾아볼 수 없었던 마라톤 신화가 바르셀로나에서 재현됐습니다. 바로 바르셀로나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영웅 남자마라톤 황영조 선수 이야기인데요. 


당시 마라톤 경기의 뜨거운 감동을 아직까지 기억하시는분들도 상당히 많을텐데요. 황영조와 모리시타의 맞대결.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고이치를 견제하며 그는 이를 악물고 달렸습니다. 결승선 3㎞가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승부는 갈렸죠. 몬주익 언덕에 올라선 황영조가 내리막길에서 스피드를 끌어올리며 내달렸습니다. 고이치는 조금씩 뒤처졌고, 황영조는 몬주익 스타디움에 홀로 들어섰죠. 트랙을 돌고 두 팔 번쩍 들어 올리며 결승선에 들어선 황영조. 8만여 관중은 기립박수로 ‘몬주익 영웅’을 맞았습니다. 



[출처-서울신문]




역대 한국 국가대표 가운데 가장 큰 포상금을 받은 선수도 ‘몬주익의 영웅’ 마라톤 황영조입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고 손기정 선생 이후 56년 만에 마라톤 금메달을 딴 황영조에게는 막대한 부가 뒤따랐는데요. 당시 금메달 포상금만 3억원으로 지금의 물가로 환산하면 10억원을 훨씬 넘는 큰 금액이죠. 뿐만 아니라 각종 후원을 통한 부수입은 물론 황영조의 이름을 딴 기념사업회가 만들어졌고, 연이은 방송 출연 제의와 심지어 그의 고향 강원도 삼척에는 황영조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올림픽 金 시절 언론 무관심에…①편[스포츠서울, 2011. 6. 24]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이봉주와 라이벌? 글쎄요..."②편[스포츠서울, 2011. 6. 30]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한국이 낳은 최고의 레슬링 선수 심권호


바로 어제 열린 런던올림픽에서 레슬링 김현우 선수가 부상투혼 펼치며 한국에 12번째 금메달 선사했는데요. 이러한 레슬링계에도 ‘영웅’으로 군림한 최고의 스타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은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입담(?)을 과시하는 심권호 선수인데요.



[출처-서울신문]




심권호가 레슬링 영웅 중에서도 영웅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가 남긴 전무후무한 업적 때문입니다. 심권호 선수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레슬링 48㎏급을 모두 제패했습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48㎏급이 사라지자 그는 54㎏으로 체급을 올려 다음 올림픽을 포함, 또 다시 그랜드슬램을 기록했죠. 올림픽조직위원회 선정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2인 중 하나입니다. 이후 올림픽 해설위원으로 나서면서 화려한 입담으로 방송에서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죠.



▶[시드니 2000]심권호 '2체급 그랜드슬램' 달성..4일만에 금메달[한국경제, 2000. 9. 26]



수영 볼모지의 자랑 ‘마린보이’ 박태환 


마지막 올림픽 영웅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선수죠.^^ 수영 볼모지에서 갑자기 나타난 영웅 박태환 선수는 2004년 당시 15세 최연소 선수로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많은 관심 속에 남자 자유형 400m에 출전한 소년 박태환은 올림픽 첫 출전이라는 부담감으로 인해 준비 신호를 출발 신호로 착각, 두 차례나 부정출발하며 실격 처리됐죠. 출전에 의의를 뒀다고 하지만 레이스도 펼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기에 아쉬움이 두 배였습니다.

 

이후 박태환은 절치부심하여 2008년 베이징올림픽 남자 수영 400m에서 금메달, 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런던올림픽 남자 수영 400m에서 아쉽게 중국 쑨양에게 패했지만 어설픈 실격 처리의 아픔을 딛고 두 개의 값진 은메달을 획득한 박태환 선수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슈퍼스타임에 틀림없습니다.



[출처-서울신문]




지금까지 역대 올림픽이 낳은 최고의 스타선수들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한국체조 최초의 금메달 ‘양학선’ 양궁여제 ‘기보배’ 등  어린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스포츠의 든든한 기둥들이 될 이 선수들이 역대 대한민국을 빛낸 올림픽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 순간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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