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티아라 사건 속 경마 저널리즘

2012.08.09 13:45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올림픽 축구대표팀, 후반 12분 선제골”, “여자 배구, 1세트 승리”, “펜싱, 8-7로 앞선 채 1세트 종료” 런던 올림픽 시작과 함께 하루 종일 엄청난 올림픽 관련 기사가 쏟아집니다. 심지어 경기가 진행 중인 와중에도 기사가 올라옵니다. 그 때까지의 상황을 짧게 전달하는 단신이죠. 스코어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현재 점수는 알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순 없죠. , “티아라 화영 방출”, “티아라 화영 왜 방출 됐나”, “화영, 스태프를 생각해 방출” 티아라 왕따 의혹 사건이 알려진 후로 비슷비슷한 내용의 기사가 쏟아집니다. 새로운 사실은 별로 없고 추측성 기사만 난무할 뿐입니다.


마치 경마장을 달리는 말을 보는 관중처럼, 우리는 손에 땀을 쥐고 보도를 지켜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알맹이가 없는 속 빈 강정일 뿐이죠. 오늘 다독다독에서는 언론이 지양해야 할 흥미 위주의 보도행태인 ‘경마 저널리즘’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경마장 아나운서가 된 언론


“1번 말, 1번 말 앞서갑니다. 2번 말, 2번 말 뒤따라오고, 5번 말, 5번 말 그 뒤에 있습니다. 다시 2번 말 앞서 갑니다……” 경마장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위와 같은 아나운서의 방송입니다. 시시각각 바뀌는 순위를 특유의 흥분한 어조로 설명해주는데, 몰입해서 듣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별 정보가 없죠.



[출처-스포츠서울]




이런 경마장 아나운서 같은 역할을 때로는 언론이 하기도 합니다. 사건 당사자들은 말과 기수, 아나운서는 언론, 청취자는 독자라고 보면 되겠네요. 이렇게 본분을 잊은 언론의 모습이 바로 경마 저널리즘(horse race journalism)입니다. 사전적으로는 ‘본질적인 내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 자극적인 보도 방식’이라고 정의했더군요.


경마 저널리즘은 선거보도에서 유래했습니다. 1976년 미국은 대통령선거 열기로 뜨거웠습니다. 이 때 패터슨이란 학자가 대통령선거 캠페인에 대한 TV뉴스 보도를 연구했는데요, 미디어가 선거 캠페인을 경마 식으로 보도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즉 후보자들 간의 우열에 대한 여론조사, 유세장의 군중, 정파 간 갈등과 공방전, 후보자 간 합종연횡 같은 게임적 요소를 집중 보도했다고 하는군요. “A후보가 B후보를 제치다”, “B후보가 급추락하다”, “A후보가 지지율을 재탈환하다” 같은 자의적인 표현이 난무했습니다. 시청자들은 객석 대신 집에서 경마를 구경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1976년 패터슨이 연구했던 대통령선거의 두 후보. 왼쪽이 지미 카터, 오른쪽이 제럴드 포드




이런 흥미 위주의 보도 행태는 ‘경마 저널리즘’이라 명명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언론의 자정노력은 일회성에 그쳤습니다. 오히려 선거보도 뿐만 아니라 사회, 스포츠, 연예 등 다양한 분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단순 사건의 나열, 올림픽에서 보는 경마 저널리즘


올림픽 같은 스포츠제전은 경마 저널리즘을 볼 수 있는 시간 중 하나입니다. 사실 매 순간마다 변수가 발생하는 스포츠 경기의 경우 어느 정도 ‘경마식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 대신 단순 흥미 위주 보도가 줄을 이으면서, 정작 좋은 보도는 묻혀버리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메달 순위 현황이 있겠네요. 매일 몇 차례씩 어느 나라가 메달을 땄으며, 어떤 국가의 순위가 바뀌었는지 시시각각 보여줍니다. 처음에 소개해드렸던 것처럼, 매 경기를 잘게 쪼개서 스코어 현황을 알려주는 보도도 볼 수 있습니다.


펜싱 대표팀 신아람 선수의 ‘1초 사건’은 어떨까요? 큰 뉴스이긴 합니다만, 이 문제의 본질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보도를 보긴 힘들었습니다. 대신 국제펜싱협회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대한체육회의 대응은 뭔지, 신아람 선수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만 숨 가쁘게 보여줬습니다. 







일단 알리고 보자? 연예계로 뻗어나간 경마 저널리즘


아이돌그룹 티아라 멤버의 왕따 사건에서도 경마 저널리즘 행태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언론은 ‘멤버-소속사-네티즌’을 오가며 단편적인 사실만 ‘중계’하기에 바빴습니다. 티아라 멤버 화영의 방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수 많은 언론에서는 화영이 직후 날린 트위터 멘션 내용을 알리는 기사만 쏟아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런 트위터 멘션을 화영이 썼는지, 그 후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를 알고 싶었지만 관련 기사는 모두 화영이 “이제 그만 멈춰주세요” 라고 멘션을 썼다는 사실만 나열했을 뿐입니다. 


셀 수도 없는 많은 언론사에서 깊이 있는 고민 없이 똑같은 기사를 ‘찍어’내는 것을 보는 것은 사실 불쾌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요새 이슈인 내용을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것이 빤히 보이기 때문이죠. 티아라 사건에서 단순한 팩트를 그저 다시 언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대형기획사들의 양성시스템이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왕따 문제 등 이번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를 건드리는 심층보도가 중요한 것인데 말이죠. 



[출처-서울신문]




몸에 안 좋은 줄 알면서도 계속 손이 가는 불량과자처럼, 경마 저널리즘도 왠지 모르게 계속 보게 되는 마력이 있습니다. 흥미 있는 보도를 통해 독자들을 붙잡아야하는 언론의 현실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흥미 위주의 선정적인 보도는 결국 독자들을 언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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