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작가의 나만의 독서노트 작성법

2012. 8. 24. 11:21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저에게는 자랑하고픈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독서노트, 즉 서평집을 꼼꼼히 작성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이 버릇은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궁금증에서 시작이 되었지요. 오래 굶주린 사람처럼 닥치는 대로 책을 읽던 스무 살 무렵의 어느 날, 저는 불현듯 궁금증이 일었습니다. '나는 과연 일 년에 몇 권의 책을 읽고 있는 걸까?'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저 자신 컴맹에 가까웠기에 요즘처럼 블로그나 미니홈피로 독서노트를 대신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완독한 책의 제목과 저자를 일기장 한 구석에 적어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시작은 이토록 작고 초라했지요. 


처음에는 이렇듯 일기장 한 구석이 저의 독서노트를 대신했습니다. 다 읽은 책의 제목과 저자를 열심히 기록하고 일 년의 마지막 날에는 그동안 읽었던 책이 과연 몇 권인가에 대한 결산을 시작합니다. 저 나름의 ‘연말정산’인 셈인데요. 한 해에 읽은 책을 분야별로 간추리는 작업을 진행하다보면 지난 일 년 간 자신의 독서이력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참으로 뿌듯했습니다. 


정산은 말처럼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국내소설, 외국소설, 경제·경영서, 외국어원서, 시, 에세이 등으로 나눈 뒤 숫자를 헤아리는 게 전부입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내 독서가 편식을 하는 가 여부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주로 순수문학에만 편향되어 있던 저의 독서가 이 작업을 거친 후에는 점차 균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적으로 취약한 분야의 책들을 골라 읽는 것이지요. 경제·경영서적이나 철학, 역사 등 인문서적이 그 주인공입니다. 



글쓴이의 초창기 독서노트들




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을 위해 고심하던 저는 아예 서평집을 따로 만들어 본격적인 독서기록을 시작합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난 뒤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중히 독서노트를 펼칩니다. 늘 언제나 맨 꼭대기에는 책을 완독한 날짜를 기재하고 그 밑에 작가와(역자가 있다면 함께 기록해 두고요) 제목과 출판사까지도 적어 둡니다. 출판사를 적어두는 이유는 외국소설 같은 경우 각기 다른 출판사에서 각기 다른 역자에 의해 느낌이 상이한 번역서가 출간되는 까닭이지요. 훗날 어떤 출판사에서 어떤 역자에 의해 번역된 작품인지를 한 눈에 알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나만의 비평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별한 분량을 정해두고 의무적으로 작성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한때 저도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것’이라는 나만의 룰을 정해두고 서평을 작성했는데 흥미 면에서도 효율 면에서도 기대 이하였습니다. 모든 책이 딱 한 페이지만큼의 분량으로 요약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가끔 마음을 움직였던 책은 두 장, 세 장 머뭇거림도 없이 써내려가기도 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도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지루했던 책은 달랑 한 줄만 적어 놓은 경우도 있었고요.  


맨 밑에는 언제나 책 속의 명언이나 아름다운 표현의 구절들을 옮겨 갈무리해 둡니다. 후에 워드파일이나 블로그를 이용해서 독서노트를 대신해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손으로 꾹꾹 눌러쓴 노트에 마음이 가게 되더군요.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고, 더 소중하게 여겨지기도 하고요. 이것은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므로 각자가 편한 방법을 택하면 그만입니다.


어느 덧 집에는 수 십 권의 노트가 책꽂이 한 쪽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가끔 그것들을 바라보며 ‘그래도 헛살지는 않은 것 같은’ 우스운 자기합리화에 빠져들기도 하고, 때로는 엿 바꿔 먹을 수도 없는 이것들을 대체 어디다 쓸까를 궁리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사실 저는 이 독서노트의 덕을 정말 톡톡히 보았습니다. 3권의 서평에세이를 출간하면서 엄청난 도움을 받았거든요. 지난 세월동안 읽은 책은 1500여 권이 훌쩍 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 내려갔다 해도 작은 머릿속에 담기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독서에세이를 준비하며 그동안 읽었던 책 속의 구절들을 인용해야 했고, 기억이 흐릿한 책들의 줄거리도 간추려야 했는데 ‘엿도 바꿔 먹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독서노트들이 제 몫을 200% 해낸 것입니다. 지난 세월 공들여 작성한 독서노트는 어느 덧 저에겐 가장 소중한 재산 목록 1호가 되었답니다.




어떻게 쓸 것인가?


그렇다면 독서노트는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써야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대답은 ‘최대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쓰는 것’입니다.  일단 틀에 갇히면 사고는 한풀 꺾이게 마련입니다. 학교나 학원 제출용 서평이 아니라면 서론, 본론, 결론의 형식을 생각하며 쓰기보다 책을 읽고 받은 느낌 그대로를 최대한 솔직하고 자유롭게 작성하시길 권합니다. 특히 저처럼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그 많은 서평을 전부 형식의 틀에 끼워 맞추어 쓰기가 힘들 것입니다. 3개월도 못 가 두 손 두 발 들게 될 지도 모르고요. 다만 서평은 자유로운 형식으로 하되, 앞 서 말씀드렸듯 작가와 제목과 출판사와 출간일, 책 속에서 마음을 움직인 구절 등은 따로 옮겨 적어 놓으시길 바랍니다. 제목 옆에 책의 종류를 적어 놓는 것도 좋고요. ‘연말정산’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거든요. 






독서노트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위대한 메모


저는 감히 독서노트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위대한 메모’라 칭합니다. 실제로 제 삶은 꾸준한 독서노트를 통해 변화되어 왔습니다. 한 권의 책을 마치고 그것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되새김질 하 듯 책을 곱씹는 과정에서 많은 사색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노트를 작성하며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고 다음 번 책이나 강의에 쓰일 좋은 정보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노트를 기록하며 색다른 표현과 생소한 어휘의 한글을 옮겨 적고 우리말을 세심히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국내·외 수많은 전·현직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고(故) 김대중 대통령 역시 지독한 책벌레로 명성을 떨치셨지요. 그런데 고 김대중 대통령의 독서법은 남다른 부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무수한 메모와 함께 하는 독서였다고 하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책을 읽으며 동시에 빽빽하게 밑줄을 긋고, 여백에 자신 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등 한 권의 책을 말 그대로 집어 삼키는 독서를 하셨다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독서노트는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최상의 도구입니다. 


어쩌면 독서노트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각자의 꿈을 닮은 미래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력서를 갱신하듯 해마다 자신만의 독서이력을 정리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꿈과 기회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알파벳이 모여 영어단어를 이루고, 단어의 합이 문장을 이루듯 꾸준한 독서와 그 기록들이 언젠간 꿈에 데려다 줄 티켓으로 쓰일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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