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4. 09:29ㆍ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엄마, 아빠가 신문을 즐겨 보니까 아이들도 신문을 넘겨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아홉 살 큰 아이는 처음에 한 꼭지의 만평을 보느라 신문을 찾다가 조금씩 대문 사진도 보고 이런 저런 기사들 중에 제 관심을 끄는 것이 있나 찾아보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뭐든지 오빠를 따라 하는 다섯 살 여동생도 함께 들여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아이와 함께 신문을 보며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신문을 볼 때면 늘 벽에 세워두고 있는 커다란 세계지도를 곁에 가져다 놓습니다. ‘시리아’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 기사를 읽고 지도에서 시리아의 위치를 찾아 보기 위해서인데요. 세계 지도에는 나라별로 주요 도시까지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세계지리 공부까지 같이 할 수가 있습니다. 신문을 보며 세계지도를 보는 것이 습관이 되다 보니 이젠 자주 등장하는 국가들의 위치 정도는 금방 찾을 수 있게 되었죠.
얼마 전에는 가족이 주로 모이는 거실 한 쪽 벽에 커다란 코르크 판을 붙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신문을 보다가 같이 공부해 보고 싶은 주제를 발견하면 그 내용을 붙여 놓는 곳인데요. 주로 신문에 실린 사진과 기사를 오려서 붙이곤 하지만, 인터넷이나 책을 찾아서 알게 된 내용들도 계속 첨가해 가며 같이 들여다보곤 합니다.
처음 시작은 ‘동일본 대지진’이었습니다. 워낙 크고 중대한 사건이었던데다가 매일 매일 생생한 화보들이 신문에 넘치게 실렸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매일 신문을 스크랩 해가며 일본 지진의 원인과 확산, 영향, 원전 상황 등을 체크하며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큰 아이와 저는 그 공부를 하면서 ‘판 이론’을 새롭게 익혔고, ‘대륙이동설’이니, ‘베게너’같은 학자까지도 찾아 보게 되었죠. 지진에 대해 시작된 공부는 방사능 유출 사고를 거쳐 체르노빌 사태까지 확산되었는데요.
신문을 통해 일상에서 실제로 접하는 사건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공부를 한다는 느낌은 줄어들고 점점 흥미를 가지며 다양한 내용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 가족의 이야기 주제는 ‘무슬림’입니다. 전 세계 인구의 1/4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종교이면서도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종교죠. 게다가 무슬림을 잘 모르는 아이들도 ‘테러 집단’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여겨졌는데 마침 구독하고 있는 신문에서 ‘한국의 무슬림’ 특집을 싣기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신문으로 우리가 모르고 있던 무슬림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공부할 주제가 정해지면 아이들과 함께 그 내용이 실린 신문 기사 내용을 오리는데요. 그 중에서도 코르크 판에 붙이고 제목을 다는 것은 아이들의 몫입니다. 물론 정교한 가위질이나 큰 제목을 만들어 붙이는 것은 부모가 도와 주는데요, 내용을 정리하고 나면 그 내용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큰 아이는 무슬림과 기독교의 반목이 천 년 전에 일어난 십자군 전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내용을 읽고 책에서 읽은 ‘십자군 전쟁’ 이야기를 꺼내기도 합니다. 무슬림 여인들이 입는 전통 의상의 종류가 여러가지인 것도 알아보고 ‘부르카’와 ‘히잡’의 차이도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다섯 살 딸아이와는 놀이방에 있는 보자기들로 부르카와 히잡을 만들어 착용해보기로 했는데요. 무슬림들의 생활을 완전히 이해할 수 는 없다고 해도 존중은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특히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성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무슬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들을 함께 이야기 합니다. 그러다 큰 아이는 만약 제 친구가 무슬림이고 학교에서도 기도할 공간을 필요로 한다면 조용한 장소를 같이 찾아 주고, 그 친구가 기도를 마칠 때까지 그 장소 앞에서 친구를 기다려 주겠다고 합니다. ^^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인종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지금보다 훨씬 다양하고 다변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미 다문화 가정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변화로 퍼지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 역시 더 개방적인 마음으로 우리와 다른 문화와 종교와 삶의 모습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아이들과 신문을 통해 ‘무슬림’에 대해 공부하면서 나와 다르지만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의 마음과 자세를 다져 보는 좋은 시간이기도 하구요. 아직 어리지만 그래서 더 유연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세상 공부가 제게도 퍽 소중하고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일본 지진도 좋고 무슬림도 좋습니다. 한가지 주제가 지나가면 또 다른 주제가 우리를 사로잡을 텐데요. 신문에는 매일 놀랍고 새로운 소식들이 넘쳐나고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것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습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아이들이 신문을 같이 보고 새로운 지식과 사실들을 찾아 가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가족간의 사랑과 이해도 깊어질 텐데요. 학원도, 학습지도 안 하는 아이들이지만 신문을 통해서 더 넓은 세상을 읽어가는 큰 공부를 통해 매일 살아 있는 배움을 쌓아 나가는 우리 가족은 신문이 세상을 전해 주는 가장 고마운 선물입니다.
ⓒ다독다독
'다독다독, 다시보기 > 이슈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해관계 엇갈린 민감한 사안, 기자는 어떻게 쓰나 (2) | 2011.05.25 |
---|---|
파파라치, 네티즌 수사대 ‘비뚤어진 대중의 호기심’ (3) | 2011.05.24 |
보고나면 까먹는 일회성 정보의 시대, 올바른 해법은? (2) | 2011.05.23 |
온라인 뉴스 대신 종이 신문 속에서 균형 찾는 방법은? (7) | 2011.05.20 |
책과 친해지는 절호의 기회 (4) | 2011.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