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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재들의 독서법 3가지 살펴보니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에서 대입과 취업을 앞 둔 학생과 구직자에 이르기까지 독서, 그 가운데서도 효율적인 독서는 많은 이들에게 늘 관심의 대상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후퇴보다 전진을 원하며 어제보다는 내일의 삶이 빛나기를 기대하는 법이니까요.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발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 바로 독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오늘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바로 1392년 건국하여 1910년 멸망하기까지 무려 518년 동안 존속했던 조선시대입니다. 당시의 독서는 매우 특별한 의미였습니다. 오늘날의 독서가 상당수 지식을 얻기 위한 목표 위에서 행해진다면 조선시대의 독서는 자기 자신과 가문과 나라를 올바로 세우기 위한 목표 위에 행해졌습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행위는 과거에 급제하여 개인의 영광을 이루고 가문을 빛내고 나아가 나라에 보탬이 되는 길이었으니까요. 상황이 이러하니 조선 명문가의 엘리트들과 많은 사대부들이 독서에 얼마나 엄청난 피와 땀을 쏟았을지 상상이 갑니다. 오늘은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대표 영재들의 다사다난(?)한 독서이야기를 펼쳐볼까 합니다.



(출처-yes24)





조선의 엘리트는 이런 독서를 해왔다


조선에서는 명문가뿐 아니라 왕실에서도 독서를 가장 중요한 교육덕목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통해 강한 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그의 손자 정조에게 특히나 독서를 강조했다고 기록됩니다. 「권학문」에서 영조는 정조에게 이와 같이 이야기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책을 읽고 밤낮으로 글을 익혀 마땅히 진실과 거짓을 가릴 수 있어야 한다. 참된 공부는 나를 위하는 것이고, 거짓 공부는 남을 위한 것이다. 참된 공부와 거짓 공부는 나라의 일로나 개인적인 일로나 의리나 이익이나 서로 다르기에 가히 두려워해야 한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독서. 참된 공부와 거짓 공부. 그것에 닿을 수 있는 길은 어쩌면 독서를 하는 자신만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열과 성을 다하듯 보여도 거짓 공부일 수 있으며 수묵화의 여백처럼 밋밋해도 참된 공부일 수 있지요. 어쩌면 영조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독서라는 행위 자체보다 그에 임하는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단 3분을 독서해도 세상이 꺼지고 오로지 나와 글자만이 독대하는 심정으로 치열하게 임할 것을 강조한 것이겠지요.





‘타고난 돌머리’ 시인 김득신의 독서법


자신의 아버지에게마저 ‘타고난 돌머리’ 소리를 들었던 김득신은 오늘날은 뛰어난 시인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열 살이 지나 학문을 배우기 시작한 그가 둔재에서 영재로 탈바꿈하게 된 데는 ‘무한 반복’버튼을 누른 듯 끈질기게 파고든 독서에 그 비밀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사실 그는 과거시험에도 끝없는 낙방을 거듭해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60세까지 도전하라’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일찍이 과거에 급제한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포기하지 않기’를 선택합니다. 그 결과 67세에 이르기까지 36년 동안 책을 읽으며 1만 번 이상 읽은 36편의 글 이름과 횟수를 기록할 정도였습니다. 그는《사기(史記)》의 '백이전'을 무려 1억1만3000번, 한유의 '사설(師說)'을 1만3000번, '악어문(鰐魚文)' 1만4000번, '노자전(老子傳)' 2만 번, '능허대기(凌虛臺記)'는 2만500번을 읽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김득신은 59살에 문과에 급제하고 당대 최고 시인이자 문자가로 등극합니다. 훗날 정약용마저 "문자가 만들어진 이래 종횡으로 수천 년과 3만 리를 다 뒤져도 대단한 독서가는 김득신이 으뜸"이라고 평할 정도였습니다. 


김득신의 독서법, 그 비밀은 자신의 부족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한 번 잡은 책은 완전히 자기화하는데 있었습니다. 언뜻 오늘날의 빠르고 효율적인 독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끈질긴 집념과 의지로 나아가면 감히 넘지 못할 산은 없음을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大학자 기대승의 독서법


명조-선조 시대 대학자였던 기대승은 학문에 대한 의욕이 남달리 강하여 임금에게까지 공부하라는 직언을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열아홉 살에는 공부에 좀 더 목숨 걸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나무라는 ‘학습 반성문’까지 짓던 그였습니다. 그런 그가 생각하는 독서는 ‘읽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쓰기와 생각하기’까지 나아가는 행위였습니다. 그는「과정기훈(過庭記訓)」에서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한다. 또 반드시 외워야 하고 슬쩍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읽고 생각한 뒤 글을 짓는 게 순서다. 이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습니다. 기대승의 독서법, 그것은 오감을 전부 활용한 사차원적인 독서법입니다.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며, 손으로 쓰고 가슴으로 다시 글을 짓는 것까지가 완성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독서에 이르렀다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정약용의 다섯가지 독서법


구체적인 독서법을 친절히 일러준 학자도 있습니다. 바로 정약용인데요. 그는 「다산시문집」에서 다섯 가지의 독서법을 설명합니다. 두루 혹은 널리 배운다는 박학(博學), 자세히 묻는 심문(審問), 신중하게 생각하는 신사(愼思), 명백하게 분별하는 명변(明辯),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실천하는 독행(篤行)이 그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독서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오직 독서 이 한 가지가 큰 학자의 길을 좇게 하고, 백성을 교화시키고, 임금의 통치를 도울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짐승과 구별되는 인간다움을 만든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그 창조적이고 개혁적인 힘의 근원은 바로 끝없는 독서에서 비롯된 셈입니다. 그는 또한 ‘일년 공부법’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매 연초면 그 해 일 년간 공부할 과정과 읽을 책을 미리 계획해 놓았다고 합니다. 정약용의 독서, 그것은 일평생 성실하고 진지했으며, 넓고 깊었습니다. 그리고 초인적인 노력이 어우러져있었지요. 



▲다산 정약용(출처-서울신문)





조선 최고 영재들의 독서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그것은 바로 때와 장소와 조건을 무시하고 온전히 빠져들며 읽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누군가는 전쟁 중에도, 또 다른 누군가는 귀양지에서도 책만은 놓지 않았습니다. 


독서를 통해 참된 삶의 가치와 자신의 발전과 백성과 나라의 나아갈 길을 끝없이 물었던 조선 영재들의 독서. 그들이 독서로 자신의 원뜻을 이루었건 실패했건 간에 일평생 절제하고 투쟁했던 그들의 찬란한 노력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지 않습니까?       







 



©다독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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