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자 초년생의 고백 들어보니

2012. 12. 18. 14:28다독다독, 다시보기/이슈연재





입사 후 사건팀에 수습 배치를 받고 회식 후 불쾌하게 취한 얼굴로 방한복이 잔뜩 든 커리어를 끌고 택시에서 내려 경찰서로 들어가던 때가 생각납니다. 기자실에 짐을 내려놓고나서, 주문대로라면 형사계의 문을 ‘당당하게’ 열고 들어가야 하는데, 로비에서 저 철문까지 거리가 왜 저리도 먼지요. 세상에서 제일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욕하고 싸우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틈에서 서니 ‘이런 세상도 있구나’싶었습니다. 입사지원서에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고 썼지만, 결국 ‘내가 아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방부 출입시절. 북한 연평도 포격 후 1년 연평부대 방문 취재 때 모습



 

수습 딱지를 떼고 배치받은 외교통상부를 첫 출입처를 배정받았습니다. 처음 외교부 당국자를 만나러 간 날, 중년의 나이에 고매한(?) 인상을 가질 수도 있구나 짐짓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 역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내가 여태껏 만나온 중년 남성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자면, ‘성공’이란 키워드를 손에 쥐었지만 욕망 혹은 자신감으로 가득찬 얼굴이거나  삶에 지친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품격있는 신사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역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라는 걸 또한번 깨달았죠. (물론 모든 외교관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옆집 아저씨같이 푸근한 인상을 가진 분도 있고, 반대로 비호감 인상을 풍기는 분도 계신 것이 사실입니다.)




▲외교부 출입 시절.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장씬선 주한 중국대사 면담 취재 중 모습




통일부로 갔습니다. 북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다보니 탈북자가 주요 취재원 중의 하나입니다. 북한 사정, 탈북 과정에서 있었던 고생담 등을 듣다보니 분단 상황이 제대로 실감났습니다. 

  

이번에는 국방부를 담당하게 됐습니다. 계급과 병과도 제대로 몰랐던 제가 기사를 써야 합니다. 군대경험이 있고 군사문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근처에 가보지 않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수시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용어부터 문제였습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기호들로 가득한 자료들을 보며 몇 번씩 담당자와 통화를 하며 “○○는 ‘우리말’로 뭐라고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며 상대를 괴롭혔습니다. 상대는 “○○는 원래 그냥 ○○라고 하는데...”라며 난감해했습니다. 그런데도 기사는 하루에도 몇 개씩 썼습니다. 무기 거래, 작전, 북한 군사동향, 해외 군사 동향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비중있는 기사를 썼습니다. 이슈를 파악하기 위해 문헌도 뒤지고 당국자들도 만나고 기자 선배들도 열심히 좇아다녔습니다. 


제가 쓴 기사만 놓고보면 저는 그 분야의 전문가인 것 같지만 사실 저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그 분야에 막 발을 들여놓은 ‘새내기’인 셈입니다. 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것 같아 “이건 기만이야”라며 홀로 킥킥거리거나 고개를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완벽한 기사를 쓰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확인절차를 거치지만, 쩔쩔매며 수차례 확인한 뒤에서 ‘이게 맞는건가?’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합니다. 취재원은 ‘기자가 이런 것도 모르느냐’며 무시할 것 같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떨 땐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기사는 기자의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을 ‘전하는’ 것이니까요. 모르면 모르는 분야 일수록 더 많은 노력을 들이고 절차를 거쳐야겠죠. 어렵고 귀찮은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것, 몰랐던 세상, 몰랐던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합니다. 


회사에 있다보면 여러 가지 전화를 받습니다. 제보, 항의 등 다양한데, 난감할 때가 있다면 기사 내용을 물어보면서 따질 때입니다. 가령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한 부처에서 주관한 공모전의 수상 결과가 기사로 나갔는데, ‘ 내가 낸 작품은 왜 당선이 안됐는지 알고싶다’며 기자에게 문의를 하는 경우가 있죠. 기자가 심사기준 등 어느 수준까지는 알아볼 수 있지만 자세한 건 공모전 심사를 담당한 분에게 여쭤봐야 하는 질문이겠죠.

 

그러니까 이 글은 어느 기자 초년생의 ‘고백’쯤 되겠네요. 하면 할수록 제가 느끼는 건 세상은 넓고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저는 그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짧고 간결한 언어로 잘 정리할 뿐입니다. 다만 더 많이 묻고 배우려 노력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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